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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집 공간 사람]

선자령 노을 맛집, 즈므마을 붉은 벽돌집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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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에 위치한 단독주택 '로사힐'의 뒷마당에서 건축주 자녀와 강아지가 놀고 있다. 왼쪽이 본채, 오른쪽이 별채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강릉 '즈므마을'에 위치한 단독주택 '로사힐(대지면적 700㎡, 연면적 199.77㎡)'은 해가 질 무렵 더 아름다운 집이다. 즈므는 '저무는'의 옛말로, 마을은 노을 명소다. 저녁마다 집 남서쪽으로 크게 난 창에 선자령을 물들이는 노을이 담긴다. 외관의 빨간 벽돌은 석양을 받아 더 붉게 물든다. 집의 또 다른 이름은 그래서 '장밋빛 붉은 벽돌집 사이로 선자령이 노을빛으로 물든다'다.


건축주인 김형석(46), 박상아(40) 부부와 초등학생 아들은 올해 초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강릉 시내 아파트에서 살았다. 아파트는 편리했지만, "강릉에 살면서 좋은 자연 환경을 못 누리고 있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어 집 짓기를 결심했다. 그렇게 단독주택에 살게 된 세 식구와 강아지 한 마리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선자령의 풍경과 노을을 실컷 누리는 중이다.

필로티, 집의 문(門)이자 액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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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입구에 들어서면 필로티 공간에 뒷마당의 풍경이 담긴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로사힐은 본채와 별채 건물 두 채의 2층이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는 형태다. 진입도로에 접한 집의 입구에서 오른쪽이 본채, 왼쪽이 별채다. "집 옆에 창고로 쓸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축주 말에, 설계를 맡은 김성우 공유 건축사사무소 소장이 "방치하지 않고 자주 사용하는 공간이 되도록 다리로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별채는 주 생활공간인 본채와 실내로 이어지면서 사람이 늘 드나드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됐다. 건축주도 "본채와 별채가 완전히 별개도 아니면서 독립적"이라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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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자녀가 구름다리를 통해 별채에서 본채로 건너가고 있다. 한국일보 영상팀 제공

구름다리로 파생된 필로티 공간은 이 집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이기도 하다. 집의 골격 자체가 옛집의 문간채 형태를 띠면서, 필로티 공간은 사실상 문(門)의 역할을 한다. 필로티 공간을 중심으로 본채와 별채로 나눠지고, 실내를 거치지 않고도 앞마당과 뒷마당이 연결된다.


필로티를 액자로 삼아 시야에 담기는 풍경은 또 다른 건축적 경험을 선사한다. "필로티를 통과하면서 시선은 넓은 뒷마당으로 열리며 멀리 선자령으로 확장(김성우)"된다. 필로티 공간은 비와 햇빛을 피해 쉴 수 있는 야외 장소로도 기능한다. 가족은 실제로 건물 사이 통로인 이 '바람길'에 의자를 두고 앉아 종종 더위를 식힌다. 김 소장은 "이 집에서 필로티는 건축미를 보여주는 공간인 동시에 기능적인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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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의 공용 공간인 1층. 단차를 이용해 거실과 주방의 공간을 분리했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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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 2층의 서재. 코너 창을 내고 윈도우시트를 만들어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끔 했다. 서재는 2층 안방과 아이 방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별도의 문이 없다. 자녀와 자유롭게 소통하겠다는 생각에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건물 배치, 집 내부 구조는 넓은 대지를 고려하면 단순한 편이다.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 두 채를 나란히 배치했다. 본채는 거실, 주방이 위치한 1층 공용 공간과 침실, 서재가 자리한 2층 사적 공간으로 나뉜다. 별채는 복층형 원룸 구조다. 실용적인 성향의 건축주가 "가족의 생활 패턴에 맞으면서 하자 없이, 유지·보수가 수월하게 해 달라"며 기본에 충실한 집을 요구해서다. 목구조로 집을 지은 것도 효과적인 단열을 위해서였다. 건축가는 "건축주 요구대로 힘을 빼고 설계했다"며 "건물 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시선이 요란한 건물에 머물러 있지 않고 주변을 보게 되는 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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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 1층은 간이 주방으로, 2층은 아이의 놀이방으로 구성했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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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 1층은 뒷마당 방향으로 폴딩도어를 설치해 필요할 때 마당까지 공간을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다만 별채는 공동주택과 다른, 단독주택만의 묘미를 살리는데 충실했다. 1, 2층을 천장으로 분리하지 않고 터서, 층고를 높였다. 뒷마당 쪽으로 폴딩도어를 달아 때때로 마당까지 확장해 공간을 쓸 수 있도록 했다. 2층 다락은 아이의 놀이방으로 꾸며 구름다리를 건너 본채로 갔을 때 바로 위치한 아이 방과 동선을 연결했다. 김 소장은 "별채는 천장도, 건물 전면도 트여 있어 개방감이 느껴지도록 했다"며 "내부에 갇히지 않고 가변적인 공간이 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앞마당을 지나면... 뒷마당에는 비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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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도로에 접한 집의 입구. 필로티를 중심으로 왼쪽이 별채, 오른쪽이 본채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이 집에서 주택 살이의 경험은 대체로 널찍한 뒷마당에서 이뤄진다. 한국의 단독주택은 대개 건물 앞으로 넓은 앞마당이 있지만, 이 집은 후면에 넓은 뒷마당이 있다. 뒤뜰이 있는 단독주택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건축주 부부에게 익숙한 공간 구조다.


건축주는 아파트에 살 때 층간소음, 흡연과 관련된 안내 방송이 끊임없이 나오는 탓에 집 안에서조차 편히 쉴 수 없다고 느꼈다. 이런 건축주에게 온전히 가족들만 누릴 수 있는 사적인 뒷마당은 무엇보다 반가운 공간이었다. 가족은 뒷마당에 있는 텃밭, 잔디, 조경수 화단, 파이어피트, 본채와 연결된 덱(deck)을 활용해 전원 단독주택 생활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반면 앞마당에는 장미를 심어 '집의 얼굴'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했다. "가족에게 앞마당이 중요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앞마당 쪽으로 창문도 많이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소장님이 아무리 집이 건축주 것이라 해도 마을 전체로 봤을 때 조화로워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이 보는 집의 얼굴이라는 생각에 앞마당에도 창을 내고 꽃을 심고 잘 가꾸고 있죠. (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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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 2층에 위치한 안방. 안방의 창은 열리지 않는 고정 창으로, 채광과 경치를 감상하는 용도로만 쓰인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곳곳에 각기 다른 형태의 창을 배치한 것도 이 집의 특징이다. 건축주가 이 땅을 선택한 이유가 '선자령의 풍경'인 만큼, 집 안 어디서나 쉽게 바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날씨가 좋으면 새파란 하늘 아래 선자령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펼쳐진다. 특히 2층 안방의 창은 아예 선자령을 감상하는 액자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창은 열리지 않고 고정돼 있다. 2층 테라스의 난간도 투명하게 만들어 경치를 바라보는데 방해받지 않도록 했다. 건축가는 "주변 자연 환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창문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덕에 부부가 집 어디서나 아이와 강아지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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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 2층에 자리한 테라스. 난간을 투명하게 설치해 풍경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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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쯤의 로사힐 전경. 윤홍로 사진작가 제공

부부는 이 집이 10년, 20년, 30년 가족과 함께하며 시간의 흔적을 머금기를 바란다. 붉은 벽돌로 마감재를 선택한 것도 그래서다. 남편은 "어렸을 적 부모님이 빨간 벽돌로 집을 지었던 기억이 있었고, 특히 벽돌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아내도 "집이 아이와 함께 나이 들어 가면 좋겠다"며 "아이에게 이 집과 함께 어린 시절 기억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은 선자령이 단풍으로 물들, 이 집에서의 첫 가을을 기다린다. 아파트를 선호했던 아내도 단독주택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다. 아내는 "마당에 앉아 차 마시며 아이 노는 걸 지켜보고, 자연을 바라볼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며 "단독주택으로 온 뒤 사계절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데, 가장 좋아하는 가을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강릉=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