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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新 폐암 보고서]

‘표적 치료제’, 폐암 새로운 희망

by한국일보

최창민 대한폐암학회 폐암등록위원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폐암은 국내 사망률 1위 암이다. 폐암 5년 생존율은 32.4%로 매우 낮다. 검사 후 진단까지 받게 된 환자들은 ‘폐암=죽음’이라고 여겨 절망에 빠진다. 환자들은 체념하고 자신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되묻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와 자녀에게 암 진단 사실을 언제쯤 말하는 게 좋을지’ ‘가족 여행을 다녀와도 되는지’ ‘다음 달에 있을 자녀 결혼식을 볼 수 있을지’ 등등. 이런 환자 앞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할 수 없는 것이 의사의 숙명이다.


필자는 진료실에서 환자와 그 가족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알리려고 드라마 의학 자문을 맡기도 한다. 몇 해 전 종영한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에서는 폐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엄마와 이별을 앞둔 가족 이야기를 자문하기도 했다.


질환이나 병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폐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폐암도 새 시대를 맞았다. 국산 3세대 표적 치료제가 새로 개발돼 올해 7월부터 처방이 가능해졌다. 이전 1, 2세대 표적 치료제도 환자의 무진행 생존 기간과 전체 생존 기간을 늘리는 좋은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기존 치료제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1, 2세대 표적 치료제를 사용한 환자의 60%에서 돌연변이로 인한 치료제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또한 EGFR 변이 비소(非小)세포폐암은 뇌 전이가 환자 4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데 1, 2세대 치료제는 이 부분에서 치료 효과가 낮았다.


최근 3세대 표적 치료제들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국산 31호 신약인 ‘렉라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됐다. 렉라자는 1, 2세대 표적 치료제를 사용한 뒤 돌연변이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2차 치료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정상 세포는 그대로 두고 돌연변이만 치료하는 특성 때문에 치료 효과도 좋다. 외국 학술지에도 임상 결과가 발표돼 전 세계 폐암 환자와 석학들의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다.


폐암 신약이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점도 의의가 크다. 폐암은 종류에 따라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이 중 우리나라 폐암의 80~85%가 비소세포폐암이다. 이 폐암은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ㆍ여성ㆍ비흡연자에게 많이 발생한다. 전체 비소세포폐암 중 30~40%는 EGFR 유전자 돌연변이가 원인인데, 돌연변이도 아시아인이 서양인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국내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EGFR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 비율이 38%나 된다.


비소세포폐암은 암세포 성장 속도가 비교적 느리고 초기에 발견하면 수술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폐는 감각 신경이 없고 통증을 느끼지 못해 늦게 발견하기 마련이다. 늦게 발견하면 이미 뇌ㆍ뼈ㆍ간에 전이된 경우가 많고, 수술 후 재발률도 높아 정기검진으로 조기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표적 치료제가 모든 암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호흡기내과ㆍ종양내과ㆍ방사선종양학과 등 다학제적 접근으로 개인별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치료 옵션을 통해 일부 환자는 몇 년 이상 질병 진행을 막기도 한다. 그러니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일지라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포기하지 않고 주치의와 최선책을 찾는다면 폐암 치료도 이제 절망이 아닌 희망의 불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최창민 대한폐암학회 폐암등록위원장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