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삶도]

"조기축구회선 들러리" 이젠 맘껏 '골 때리는' 배우 박선영

by한국일보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66>배우 박선영

‘축구 예능’서 ‘박호나우딩요’로 활약

“50대에 축구해서 인기 얻을 줄이야”

한국일보

TV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독보적인 실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배우 박선영씨를 8월 26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실내 운동 연습장에서 만났다. 한지은 인턴기자

들어선 그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여긴 서울의 한 실내 풋살 연습장. 배우를 인터뷰하기로 해놓고 부른 장소가 골대 앞이다. 게다가 그는 나이 쉰이 넘은 여성 배우다.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박호나우딩요(호나우지뉴)’라는 별칭을 얻은 배우 박선영(51)이다. 다른 선수 셋쯤은 싱겁게 제치며 골대 앞으로 전진하다 마르세유 턴까지 하며 골을 날리는 그를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배우야, 선수야?’.


알고 보니 섭렵한 운동 종목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학창 시절엔 내내 육상 선수로 활약했고, 대학은 농구를 특기로 체육학과에 들어갔다. 골프, 사이클, 검도, 승마, 윈드서핑, 필라테스, 태권도도 배웠다. 이 중 골프는 티칭 프로 자격증까지 딴 수준급이다.


축구는 그에게 이루지 못한 꿈 같은 거였다. “중간에 대학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발시험에 응시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나이 들고도 축구를 하고 싶어 ‘조기축구회’까지 가입했지만, 여자는 선수로 쳐주지 않았다.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날개 단 듯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에서 후련함마저 느껴지는 게 그래서일까.


여자들, 그것도 축구선수가 아닌 배우, 가수, 개그맨, 모델, 방송인들이 모여 하는 이 ‘축구 예능’에 그도 한껏 빠져 있다. “다들 죽기 살기로 하니까요. 열정이 어마어마하죠. 거기다 성장하는 모습까지 옆에서 보잖아요. 혼자 하는 거라면 이렇게 재미있지 않을 거예요. 함께 골을 만들어 나가는 게 매력이에요.” 그라운드의 열정은 보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승부에서 져도 “괜찮아! 이것도 다 경험이야”라며 토닥이고, “뒤에 내가 있어. 자신 있게 차!”라고 외치는 이 언니를 보면 왠지 모르게 든든해진다. 그도 데뷔 31년 만에 연기 아닌 축구로 새삼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영화 ‘가슴 달린 남자’(1993)로 20대의 정점을 찍고, 50대에 축구로 이를 넘어선 그를 8월 26일 서울 은평구의 한 실내 스포츠 연습장에서 만났다. 그는 스포츠 예능 출연은 ‘부캐(서브 캐릭터)’일 뿐 “끝까지 파보고 싶은 일은 여전히 연기”라고 말했다.

30대까지 ‘길거리 농구’, 골프는 ‘티칭 프로’

한국일보

그는 MBC 공채 탤런트 21기 출신이지만 학창 시절 내내 ‘운동부 언니’였다. 한지은 인턴기자

-골프 예능 ‘편먹고 공치리’에도 출연했죠. 소속사(신엔터테인먼트) 담당 이사가 요즘 스케줄을 말하면서 배우인지, 스포츠 선수인지 모르겠다면서 웃더라고요.


“저도 마치 ‘스포테이너(스포츠 선수+엔터테이너)’가 된 느낌이에요. 쉰 살 넘어 축구를 할 줄은 몰랐죠.”


-인기가 대단해요.


“저도 놀랐어요. 축구나 풋살을 시작하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고 하니 뿌듯하기도 하고요. 어느 날은 마트에 갔는데 누가 제 손을 턱 잡더라고요. 놀라서 보니까 중년 여성이 ‘엄지 척’을 하더라고요. 마스크 위로는 눈웃음이 보이고요. ‘아, 축구하는 거 보셨구나’ 싶었죠.”



-다리는 괜찮은가요. 연습에, 경기에 성할 날이 없을 것 같아요.


“온통 멍투성이죠. 시간이 좀 지나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그는 바짓단을 걷어 올려 보였다. 아직 남은 멍자국들이 보였다.


-원래 육상을 했다고요.


“네, 초등학교 때 시작해서 중학교 때는 1,500m 선수였고, 고등학교 때는 400m와 구간마라톤(풀코스를 선수 6명이 릴레이로 나눠 달리는 마라톤)을 뛰었죠.”


-그래서 하체가 다부지군요.


“지금은 많이 빠진 편이죠. 그때는 훨씬 더 두꺼웠어요. 하하.”


-운동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원래는 농구를 좋아했어요. 제가 다닌 초등학교가 농구로 유명했거든요. 지금은 키가 167㎝로 (평균보다) 작지 않은 편이지만, 초등학교 때는 아주 작고 말라서 농구를 하지는 못했죠. 그래도 30대 후반까지 농구를 했어요.”


-어디서요?


“길거리 농구요. 한강 둔치 농구대 같은 곳에서 ‘게임 한번 하실래요’ 해서 하는 거죠.”


-골프도 프로 수준급이라면서요.


“한동안 골프에 빠져 지냈거든요. 티칭 프로 자격증까지 땄어요. 몇 년 전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주관하는 시니어투어 아마추어 부문에 나가려고 자격증은 반납했지만.”


-농구, 축구, 골프 말고 또 배운 운동이 뭔가요?


“헬스 PT(퍼스널트레이닝)는 꾸준히 받고 있고요. 필라테스와 요가도 배웠죠. 사이클도 잘 타고요. 검도는 드라마 때문에 좀 배웠어요. 태권도는 발 차기 정도 할 줄 알고요. 승마랑 윈드서핑도 해요. 그런데 왜 운동이나 액션 관련 배역은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어요. 형사나 검사 같은 역할 잘 할 수 있는데! 하하.”


-스키 국가대표라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온라인에서 왜 그런 말이 퍼졌는지 모르겠어요. 스키는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셨어요. 운동을 두루 잘하셨거든요. 저도 스키를 타긴 하지만 즐기진 않아요.”

대책 없이 합격한 탤런트 공채

한국일보

그는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다고 했다. 돌쟁이가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어 돌 사진이 사진관에 걸렸고, 유아 시절엔 지인이 미끄럼틀 타는 그를 찍어 사진 대회에서 입상했다. 고등학교 때 모델이라는 꿈이 그냥 생긴 게 아닌 거다. 한지은 인턴기자

-그럼 원래 꿈은 운동선수였나요?


“어릴 땐 빵을 하도 좋아해서 빵집 주인을 하고 싶었죠. 간호사가 꿈이었던 적도 있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체육 선생님이 꿈이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체육학과에 간 거군요.


“네, 대학은 농구를 특기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졸업은 하지 않았죠?


“네, 중간에 그만뒀어요. 뭔가 목표를 다 이룬 느낌이었죠.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까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허탈한 기분도 들더라고요. 또 모델 학원에 다니면서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싶기도 했죠.”


-모델을 하게 된 거군요.


“고등학교 때 후배가 제 사진을 ‘하이틴’이라는 잡지에 보내서 고등학생 모델로 뽑힌 적이 있어요. 실제 금, 토, 일 3일간 촬영을 가게 됐는데 아버지가 강하게 반대하시는 거예요. 담임 선생님께 말해서 수업도 빼놨는데 말이죠. 되게 서운하더라고요. 그때 속으로 ‘대학에 가면 모델을 해볼 거야’라고 마음 먹었죠. 나중엔 우연히 영화 오디션에 합격해서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에 출연하게 됐죠.”


-그럼 1992년 MBC 탤런트 공채시험은 그 이후에 본 거예요?


“그것도 아는 언니 따라갔다가 덜컥 합격한 거예요. 모델이었던 언니인데 저한테 ‘너도 같이 갈래’ 한 거죠.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갔어요. 하하.”


-근데 합격한 거군요.


“네, 그 언니는 떨어지고요. 그때 경쟁률이 2,800대 1쯤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연기를 잘 해서 뽑힌 게 아니라 강단이 있어서 된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가요.


“카메라 테스트 때 두 기수 위인 남자 선배가 상대 역으로 응시생들 호흡을 맞춰줬거든요. 그때 제가 받은 대본이 막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야 하는 역할이었어요. 한참 연기를 하는데 앞에서 선배가 웃는 거예요. 물론 연기가 서투르니 웃기긴 했겠지만, 불쾌하더라고요. 그래서 심사위원들에게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하고선 그 선배에게 ‘선배님, 아무리 제가 연기를 못해도 그렇지 화를 내는데 앞에서 웃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대로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했어요.”


-그랬더니요?


“선배 얼굴이 하얘졌죠. 하하. 연기 마치고 나서는 ‘감사합니다. 선배님’ 했죠.”


그렇게 그는 MBC 공채 21기 탤런트로 뽑혔다. 장동건, 김원희, 박주미, 윤동환 같은 배우들이 동기다. 이후 시청률이 60%에 이르렀던 드라마 ‘아들과 딸’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알고 보니 따낸 배역이었다. 주연이었던 배우 김희애(후남 역)를 좋아하는 성소수자 역할이었다.


너무 일찍 만난 ‘인생 영화’

한국일보

데뷔 초 그는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옥자 역할을 맡았다. 원래 캐스팅된 배우가 출연을 못하게 되면서 그가 감독에게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자원해 얻어낸 배역이다. 화면 캡처

-드라마 ‘아들과 딸’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그때 21기들이 단체로 단역으로 출연을 했어요. 행인1, 행인2 같은 역할로요. 근데 어느 날 대본을 보니 제 말투와 비슷한 역할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호기심에 조감독한테 이 역할에 누가 캐스팅 됐는지 물었죠. 그런데 결국 그 분이 출연을 못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요?


“감독을 찾아가서 이 배역을 하고 싶으니 테스트해달라고 했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심지어 나중엔 하도 저를 안 부르기에 또 찾아가서 ‘감독님, 저 테스트해주시기로 했는데요’라고 했다니까요. 대본을 읽었더니 감독이 ‘그래, 너 해라’ 하신 거죠.”


-배역을 얻어낸 거네요. 촬영 때 잘 했어요?


“아니오. 하하. 평생 먹을 욕을 그때 다 먹은 거 같아요. 알고 보니 그 배역이 간단치가 않았어요. 레즈비언 역할이었거든요. 인사말 한마디도 평범하게 해선 안 됐죠. 게다가 상대역이 김희애 선배였고요. 고생했지만, 그때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배웠죠.”


그래도 시도하고 볼 일이다. 이 역할이 계기가 돼 영화 ‘가슴 달린 남자’(1993)의 주연을 맡게 됐으니.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남녀차별을 꼬집는 내용으로 당시엔 파격이었다. 여자에겐 허드렛일만 시키고 성추행까지 난무한 회사에 남자로 성별을 속이고 입사하는 ‘남장여자’ 혜선 역을 그가 맡았다.


-신인 때 주연을 맡았군요.


“드라마 세트장에서 우연히 저를 본 손지창씨가 감독에게 ‘이런 이미지의 배우가 있더라’고 추천을 했나 봐요. 일이라는 게 풀리려면 그렇게도 되더라고요. 게다가 대배우이자 선배인 최민수씨와 연기를 했으니 엄청 큰 행운이죠. 제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작품이죠. 그런 역할을 너무 대책 없이 했죠. 다시 한다면 다르게 해석할 것 같아요.”


-아쉬움이 있나 봐요.


“지금 한다면 무게 있게 눌러서 연기를 할 것 같아요. 당시엔 1차원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나 싶어요.”

골프로 버틴 연기 공백기

한국일보

그는 1993년 주연을 맡은 영화 ‘가슴 달린 남자’를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다만, 그런 작품을 너무 일찍, 대책 없이 맡았다”며 아쉬워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영화 주연까지 맡으면서 데뷔 초에 활동이 왕성했죠.


“일에 치여 지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바빴어요. CF도 많이 찍었고요. 그 시절엔 제 마스크가 독특하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래서인지 들어오는 배역이 한정적이었어요. 워킹우먼이나 차가운 도시 여자 같은 역할이었죠.”


영화 ‘연애는 프로 결혼은 아마츄어’(1994) ‘사랑하기 좋은 날’(1995)에서도 주연을 맡았던 그는 드라마 ‘임꺽정’(1996) 이후 10년간 연기를 쉬었다. 그 뒤에도 2006년(내 사랑 못난이)과 2007년(한성별곡-正) 드라마에 출연한 게 전부다.


-언제부터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기가 어려워졌어요.


“공백기가 있죠. 엄마 역할로 가야 할 나이가 됐는데 제 이미지는 여전히 도회적이고 젊어 보이니 캐스팅이 잘 안 되기도 했고요. 연기를 쉴 때 골프를 했어요. 2000년에 시작해서 한번 빠지니 10여 년이 훅 가더라고요. 하하. 일주일에 4, 5일은 필드에 나갔어요. 6개월 만에 싱글을 했죠.”


-본업을 쉴 때인데 생계는 어떻게 꾸렸나요.


“골프가 돈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티칭 프로 자격증을 땄거든요. 티칭비로 먹고 살 수준이 됐죠. 골프 채널에서 MC를 보기도 했고요. 한때는 동업으로 와인바도 했어요. 연기는 쉬었지만 바쁘게 지냈죠.”


그러던 그에게 TV예능 출연 기회가 왔다. 올드 스타를 한데 불러모은 ‘불타는 청춘’(불청)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을 하게 된 것도 이 프로그램 덕분이다. ‘불청’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탄 것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 출연 섭외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감격스러운 어조로) ‘축구를 한다고? 여자들이!’ 이랬죠. 하하. 자신만만하기도 했어요. 원래 운동을 하기도 했고, 축구도 엄청 좋아했으니까. 대학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발에도 응시했을 거예요.”


‘골 때리는 그녀들’은 설 연휴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가 뜨거운 반응을 얻어 정규 편성됐다. 최고 시청률이 10%를 돌파해 평일 ‘운동 예능’으로는 이례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박선영이 주장인 비혼 스타팀 FC불나방을 비롯해 FC국대패밀리(국가대표 출신 혹은 국가대표 가족), FC구척장신(모델), FC월드클래스(외국인 방송인), FC개벤져스(개그맨), FC액셔니스타(액션 배우)의 6팀이 승부를 겨룬다. 이들의 진심과 열정은 ‘축구는 남자들의 운동’이라는 편견도 깨뜨렸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니들만 했어?”).

룰도 모르던 여자들이 만든 ‘축구 드라마’

한국일보

그는 FC불나방의 주장으로 팀을 이끈다. 그라운드에 선 그에게선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사진은 9월 1일 방영된 FC구척장신과 벌인 4강전의 한 장면. SBS 제공

-전에도 축구를 해본 적이 있나요?


“조기축구회에 가입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회원은 대부분 남자였죠. 여자들은 들러리처럼 세워두기만 하기에 ‘우리는 언제 뛰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여자들이 뛰면 오프사이드도 없는 걸로 하고, 공을 손으로 잡아도 되는 걸로 규정을 완화해서 적용하더라고요. 그러니 재미가 없죠. 그나마 필드에서 뛰는 여자는 저뿐이기도 했고요.”


-그러니 요즘 축구를 하면서 남다른 기분이겠네요.


“정말 좋죠. 여자들이 축구를 이렇게 재미있어 할 줄 몰랐어요. 룰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열정은 최고예요. 승부욕에 불타고요. 게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설레요. 공을 찰 줄도 몰랐던 사람들이 이제 세트 플레이를 하고, 공이 날아오면 피하던 사람들이 트래핑을 하잖아요.”


여자들이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하며, 부상을 당하고도 “경기 뛰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감동적이다. 그런 눈물과 웃음의 그라운드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다. ‘깜짝 일일 코치’로 출연한 잉글랜드 명문 구단 첼시 FC 위민의 지소연 선수도 그의 실력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지소연 선수와 일대일 대결에서도 긴장하지 않더라고요.


“속으론 엄청 떨렸어요. 세계 최고 선수와 무슨 일대일 대결이 되겠어요. 이천수 감독이 갑자기 하라고 하니까 ‘이겨도 그만, 저도 그만’이란 생각으로 했죠. 지소연 선수의 스피디한 볼 컨트롤을 실제 보다니! 최고였어요. 정말 멋있더군요. 내가 일찍이 축구를 했다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하하.”

축구의 짜릿함, 여자들의 근성

한국일보

그는 “배우, 가수, 모델, 개그맨을 하던 사람들이 축구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축구를 할 때 기분은 어떤가요.


“골대 앞에 골키퍼, 그 앞에 또 수비수가 있어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진짜 요만큼 보이는데 거기로 공을 밀어 넣어 골인이 됐을 때 진짜 짜릿해요. 머릿속에서 생각한 플레이를 그대로 구현했을 때 그 기분!”


-노골일 때는요.


“그래도 내가 생각한 대로 공이 가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재미있죠.”


-FC개벤져스와 겨룬 리그전이 화제였어요. 승부차기까지 갔다가 결국 패배했죠. 승부차기에서 골을 막지 못한 골키퍼 안혜경씨에게 “괜찮아, 이게 다 경험이야”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여유는 어디서 나오나 싶어서요.


“게임을 하면 이기는 팀이 있고 지는 팀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게다가 우리 팀은 그간 지는 경험을 안 해봤거든요. 우리도 질 수 있는 거고, 지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생에서도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이건 다 경험이다’라고 체감한 일이 있나요.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여겨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는 일마다 왜 이러지’ 하면 헤어나올 수 없어요. 기왕 닥친 일 ‘어떻게 대처하지’ ‘여기서 최선의 방법은 뭐지’ 하면 빠져나갈 길이 보이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다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보고도 안 되면 미련 없이 돌아서죠.”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저는 오늘을 하루살이처럼 열심히 살아요.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고요. 앞으로 일어날 새로운 일이 얼마나 많을 텐데. 기억력이 좋은 편이지만,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죠. 그러니 과거에 미련이 별로 없어요.”


-FC국대패밀리와 결승전을 앞두고 있죠.


“정말 우승하고 싶지만, 결승전까지 온 것도 감사하고 만족해요. 평균 나이 47.3세인 팀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거든요. 결승전 앞두고 제가 선수들에게 그랬어요. 연습 때 그랬던 것처럼 실전에서도 즐기자고.”


-실제 해보니 축구의 매력은 뭔가요.


“팀플레이죠. 서로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만나서 하나가 돼가는 과정이니까요. 혼자 골을 넣어봤자 뭐가 재미있겠어요. 패스하고 어시스트도 하면서 함께 넣어야 재미있죠. 저로선 축구선수라는 꿈을 이들과 팀이 돼서 함께 이루는 거니까 참 고마워요.”


-그라운드에서 “언니” “괜찮아” “잘했어” 이런 말들이 오가면서 눈물과 웃음이 어우러지는 게 참 인상적이에요.


“그런 게 한 팀이죠. 실수는 나도 할 수 있잖아요. ‘괜찮다’면서 함께 가야죠. 다들 열정이 참 대단해요. 면면을 보면, 자기 분야에서 톱인 이들이잖아요. 최고에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어요. 근성이 있는 거죠.”


-나이 들었다는 게 느껴지진 않나요.


“‘이 정도밖에 안 했는데 왜 아프지, 벌써 나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안 낫지’ 싶죠. 회복력이 떨어지는 걸 느껴요. 그렇다고 우울해하진 않아요. ‘예전처럼 막 하면 안 되겠다’ 하면서 조절을 하죠. 우리 팀 나이를 다 합치면 300살쯤 되더라고요. 하하. FC구척장신 차수민 선수나 김진경 선수는 딸 뻘이에요. 실제 두 사람 엄마 나이가 저보다 각각 한 살, 두 살 많더라고요.”


-축구 말고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는데,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걸 느끼나요.


“진짜 그래요. 우울증도, 불면증도 없죠. 살면서 슬럼프 같은 것도 없었어요. 축구를 할 때도 ‘내가 최고야’라는 자세로 뛰죠. 실제 최고는 아니지만 그런 마인드로 해요. 다른 팀원들에게도 그래요. ‘넌 최고야. 할 수 있어. 실수해도 괜찮아. 내가 뒤에서 다 받쳐줄게. 걱정 말고 해봐’ 하죠. 방송 말고도 소소하게 여러 일을 즐기면서 도전하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는 동업으로 가죽공방을 열었죠. 골프 액세서리 브랜드도 창업했고요.”


그는 들고 온 빅백과 파우치, 지갑을 보여줬다. 모두 직접 만든 거였다.

그래도 운동은 ‘부캐’일 뿐

한국일보

올해 초부터 8개월간 ‘축구인’으로 산 박선영. 그는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을 그라운드에서 정말 뜨겁게 보냈다”며 웃었다. 한지은 인턴기자

-정말 하는 일이 많네요.


“아직 제 정체성에 마침표를 찍지 않은 느낌이에요. 연기라는 길이 열려 있으니까요.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어요. 배우를 시작할 땐 운이 좋아서 하게 됐어요. 이제는 내가 만들어가고 싶죠. 나이 들면서 내면이 단단해지잖아요. 그러니 배우에게 나이는 좋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나이 드는 걸 즐겨요.”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면요.


“배우죠. 예능을 하고 있지만, 그런 모습은 다 ‘부캐’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끝까지 파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해보고 싶어요.”


-연기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초콜릿 같은 거요. 참을 수는 있는데 끊을 수 없는 존재. 먹었을 때 달달하지만, 늘 먹기엔 힘들고 부담스럽죠.”


-지금까지 살면서 지키려고 해온 ‘삶의 도’가 있다면 뭘까요.


“시간은 꼭 지키자는 거요. 시간은 누구한테나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남의 것을 탐내지 말자.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나이 오십 넘어 이렇게 축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연예인으로서 다시 주목받는 것도 감사해요.”


그라운드를 뛰는 그에게선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실제 만난 그도 그랬다. 시종 호탕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자기 전에 누워서 ‘나 오늘 이런 일들을 했구나. 참 잘했다’라고 다독이는 것. 그건 자신감의 원천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박선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필드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걸까.


그를 보면서 한 팬은 온라인 카페에 이렇게 남겼다. “언니의 인성과 배려심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언니를 보면서 40대에서 50대로가는 게 두렵지 않게 됐죠.”


축구라는 드라마를 쓰는 그가 선사한 연기 이상의 감동이다.

한국일보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lun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