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야산 메아리친 조국愛… 살포시 내려앉은 가을愛

[여행]by 한국일보
한국일보

홍천 내촌면 척야산문화수목원 끝자락의 황금측백나무와 단풍. 척야산문화수목원은 민족정신 함양이라는 비장함으로 시작해 갈수록 짙어지는 가을 서정으로 마무리된다.

빠른 길만 고집하면 자연히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양평에서 양양까지, 강원 홍천군은 동서로 직선거리 90㎞가 넘는 넓은 땅이다. 속초든 양양이든 수도권에서 강원 동해안 북부지역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그나마 길손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홍천 변두리의 지명은 지도에서 지워진 듯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내촌면 두촌면 화촌면 등 이름만 들어도 전형적인 산촌마을, 그 가운데쯤에 내촌면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는 없지만 그래도 강원도라 평범한 마을 풍광도 기본은 하는 곳이다. 가을의 길목, 한가로운 시골길로 차를 몰다 보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뜻밖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감동은 기대에 반비례한다.

비장하게 시작해 가을 서정으로, 척야산문화수목원

서울양양고속도로 내촌IC로 내려서면 바로 동창마을이다. 행정지명은 물걸리이지만 조선 중종 때 대동미 창고가 있었고, 홍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금도 동창마을로 더 많이 불린다. 100호 남짓한 집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고, 마을 앞 하천 변에 넓지 않은 논이 형성된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그래도 한때는 홍천 동부 산간지역의 중심이었다. 마을 중간에 절터가 하나 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물걸리사지’로 불리는데, 남아 있는 유물로 보아 규모가 상당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가와 밭으로 둘러싸인 절터에 삼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통일신라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탑으로 기단과 탑신이 조화롭고 안정감 있어 보물로 지정돼 있다. 깊은 산중에 버려진 폐사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탑 하나만 남아도 쓸쓸하지 않다. 정확한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석재들은 한쪽에 따로 모아 놓았다.

한국일보

홍천 내촌면 물걸리 삼층석탑.

한국일보

내촌면 동창마을의 기미만세공원 조형물.

절터 앞에는 기미만세공원이 조성돼 있다. 1919년 4월 3일 인근 다섯 개 주민 3,000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친 ‘동창만세운동’을 기리는 공원이다. 이날 일본 경찰은 시위 군중을 향해 총을 쐈고, 이 과정에서 8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마을에 있는 팔렬중고등학교의 '팔렬'은 이때 숨진 여덟 열사를 기리는 의미다.


마을 외곽으로 이동하면 ‘척야산문화수목원’이 있다. 산 이름도 낯설고 문화와 수목원을 조합했으니 어떤 곳인지 선뜻 그려지지 않는데, 조금만 둘러보면 동창만세운동과 관련된 시설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돌계단을 오르면 여러 개의 석조물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개토대왕비 모형이다. 실물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 비에 적힌 글자도 한결 또렷하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실제 비석이 유리 보호각에 갇혀 다소 갑갑해 보이는 데 반해, 고구려의 기상이 자유로이 펼쳐지는 듯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바로 옆에 대형 발해 석등도 재현해 놓았고, 주변에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안중근·윤봉길 의사와 백범 김구에 이르기까지 나라 지키기에 열성을 다한 인물의 어록을 새긴 비석을 배치했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의 광개토대왕비. 실물보다 조금 크게 제작됐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에 애국지사들의 어록을 새긴 조형물이 진열돼 있다.

모든 조형물은 동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덕원(1876~1943?) 의사의 뜻을 기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곳 척야산은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3년간 숨어 지낸 곳이다.


동창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창묵(99) 척야산문화수목원 원장은 “동창마을은 면소재지도 아닌 시골에서 5개 마을 주민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른 특별한 곳”이라며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30년 전부터 이 수목원을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방문객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제가 술·담배·골프를 일체 하지 않아요. 지금은 육체노동이 힘들지만 10년 전까지 직접 곡괭이와 삽을 들고 산을 오르내렸지요.” 후손들에게 재산보다 민족정신을 물려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럼에도 수목원엔 그 흔한 안내 책자 하나가 없다. “억지로 강요하기 보다 꽃과 경치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체득하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에서 바라본 동창마을 들판.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에서 용호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풍경. 자작나무숲 아래에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에서 내려다보이는 용호강과 휘어진 마을 도로. 버드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어록 조형물이 세워진 광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김덕원 의사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있고, 언덕에 청로각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바로 아래에 내촌천(마을에서는 용호강이라 부른다)이 흐르고, 오른편으로 동창마을이 포근하게 펼쳐진다. 이곳부터 이어지는 길은 비장함보다 수목원 특유의 서정성으로 탐방객을 안내한다.


언덕을 따라 오르면 전망 좋은 곳에 다시 세류정과 청류정이라는 정자가 차례로 나타난다. 지붕 없이 판판한 요즘의 목재 덱 전망대에 비하면 작지만 고풍스럽고 운치 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산골짜기 농촌 들판과 파도 타는 강원도의 산 능선을 감상하기에 딱 어울리는 멋스러운 전망대다. 정자마다 높이와 방향이 조금 다를 뿐, 특별히 풍경이 다르지 않은데도 무엇에 홀린 듯 자꾸 내려다보고 나직하게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 탐방로는 갈수록 비장함이 옅어지고 수목원 특유의 서정성을 더한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 골짜기의 꽃밭 정원. 구절초가 곱게 피어 있다.

능선 맞은편 산자락에는 숨겨 놓은 정원처럼 작은 꽃밭이 나타난다. 분홍빛 구절초와 노란 미역취, 마타리가 소담스런 가을 풍경으로 초대한다. 산꼭대기 청류정을 지나면 지그재그 오솔길을 따라 올라온 반대편으로 하산한다. 13차례나 휘어지는 길이어서 ‘열세굽이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철쭉 회양목 주목 단풍을 가지런히 심어,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길이다.


열세굽이길을 벗어나 평지에 닿으면 이제 끝인가 싶은데, 의외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주변에는 가을 색이 오르지 않았는데, 길 양쪽에 심은 황금측백과 단풍나무가 이른 가을 정취를 선사한다. 대규모 군락이 아니어서 황홀하다고 말하면 과장이지만, 산골마을에 미리 내려앉은 소박한 가을 서정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 끝자락의 황금측백과 단풍나무 군락. 산촌마을의 소박한 가을 서정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과 용호강. 탐방로는 산등성이를 넘어 강과 나란한 마을 도로를 따라 연결된다. 약 1시간 코스다.

한국일보

동창마을 들판에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이곳에서 수목원 주차장까지는 용호강과 나란히 휘어진 도로를 따라 걷는다. 잘 포장된 마을 길인데, 남강로(南江路)라는 멋들어진 석재 팻말이 세워져 있다. 강가에 늘어선 버드나무도 운치를 더한다. 눈여겨보면 산자락에도 물길이 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서석면 수하리에서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까지 연결한 약 1㎞ 수로다. 200여 년 전에 만든 것으로, 낭떠러지 바위에 새겨진 ‘보주 김군보(洑主 金君甫)’라는 글귀로 보아 개인이 사재를 털어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관개 시설의 단면을 볼 수 있어 ‘동창보 수로 및 암각명’이라는 명칭으로 강원도 농경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척야산에 얽힌 이야기 역시 수로와 무관하지 않다. 척야(拓野)는 들판을 개척한다는 의미다. 고려 초기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동창마을은 피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한 산촌이었다. 변변한 농사기술이 없던 마을에 서울 사람이 들어와 산허리를 끊어 수로를 내고 물을 대서 논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조선 시대 들어서는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수목원에서 보이는 마을 앞 논바닥에는 이미 가을이 익을 대로 익었다. 척야산문화수목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탐방로는 약 3㎞, 쉬엄쉬엄 1시간가량 걸린다.

한국일보

척야산문화수목원으로 돌아오는 마을 도로에 남강로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한국일보

용호강과 척야산문화수목원 사이 동창보 수로.

짧은 발품으로 폭포 보고 자작나무숲으로

내촌면에는 발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쏠쏠하게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와야리 백암산(1,099m) 서남쪽 기슭에 가령폭포가 숨어 있다. 50m 낭떠러지에서 흩뿌리듯 쏟아져 내리는 자태가 자못 웅장하다. 등산 동호인들이 찾으며 알려지기 시작한 폭포로 아직까지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폭포 주차장은 약 2km 아래 도로변에 있지만, 폭포 아래 연화사라는 작은 암자 부근에 대여섯 대를 주차할 공간이 있어 대개는 이곳에 차를 대고 걷는다. 약 500m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니 등산을 즐기기 않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걸을 만하다.

한국일보

가령폭포 주변 탐방로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한국일보

가령폭포는 높이 50m에 달하는 큰 폭포지만 분위기는 옹달샘처럼 아늑하다.

탐방객이 거의 없지만 등산로는 짜임새 있다. 입구의 짧은 다리를 건너면 일본잎갈나무 조림지다. 하늘로 쭉쭉 뻗은 침엽수 사이에 단풍나무와 자작나무가 섞여 있어 이제 곧 가을 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청량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천천히 발길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정면에 새하얀 암벽이 나타나고,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보인다. 경치가 아주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따가운 가을 햇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어주기에는 충분하다. 제법 규모가 큰데도 숨어 있는 옹달샘을 발견한 것처럼 반갑다.


가령폭포에서 인제 상남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군 경계 고갯마루에 ‘아홉사리재’라는 커다란 표석이 세워져 있고, 표석 뒤로 아담하게 자작나무숲이 형성돼 있다. 길가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이어서 더욱 반갑다. 다만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멧돼지 남하 방지용으로 철재 울타리를 둘러놓은 점이 조금 아쉽다.

한국일보

아홉사리재 정상에 아담한 규모의 자작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한국일보

아홉사리재 고갯마루 간이식당에 직접 담근 술이 진열돼 있다.

아홉사리재에는 ‘아홉 살배기’와 관련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갓 결혼한 새신랑이 사흘째 되는 날 아흔아홉 굽이 도로 개설 공사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보니 태어난 아들이 아홉 살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와, 인제군 상남면에서 홍천군 내촌면으로 시집 온 아낙이 험한 산길을 도저히 넘을 수 없어 어린아이가 아홉 살이 된 해에야 처음으로 친정 나들이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위는 고갯마루라는 점을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평평한데, 표석에 ‘해발 775m’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한때는 인제를 거쳐 양양으로 가는 차량이 꼬리를 물었던 고개였지만, 이제 강원도 특식인 올챙이국수와 감자전을 판매하는 간이식당 하나만이 이따금씩 오가는 길손을 맞고 있다.


홍천=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21.10.1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