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햇살로 보상... 불편하지만 뿌듯한, 이런 여행 어때요

[여행]by 한국일보
한국일보

곡성 섬진강변 침실습지. 일출 무렵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환경친화적’ ‘생태친화적’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여행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관광 시설은 어느 정도 자연의 희생을 바탕으로 조성된다. 친환경 활동을 동반하는 여행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가 ‘환경을 지키는 착한 발걸음’이라는 주제로 11월 추천 여행(지)을 선정했다. 조금은 불편하고 그만큼 뿌듯한 여행이다.

탄소 빼고 햇살 더하고, 영월 에코빌리지

영월 동강변에 위치한 에코빌리지는 ‘의도한 불편’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숙소다. 전기와 물을 아끼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객실에는 TV와 냉장고, 주방 시설이 없다. 세탁한 침구류와 수건도 다림질을 하지 않고 햇살 좋은 날 자연 건조한다.

한국일보

옥상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영월 에코빌리지. 에너지 자립형 건물이다.

한국일보

주방과 TV가 없어 심플한 영월 에코빌리지 객실.

매일 밤 9시부터 10분가량 건물 전체를 소등하고 별을 감상할 시간을 갖는다. 불편한 하룻밤은 반짝이는 별빛, 투명한 아침 햇살, 맑은 바람과 산새 소리로 보상받는다. 잔디 마당에서 ‘불멍’을 즐기는 것도 매력적이다.


객실이 심심하니 밖으로 나갈 핑계가 생긴다. 자연에서 가족 친구 연인과 더 많이 대화하고 웃는다. 로비에 예쁜 책방을 들이고, 보드게임을 무료로 빌려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 묵는 동안은 잠시 핸드폰과 헤어져도 좋겠다.


잔디마당에서 즐기는 ‘불멍’, 근사한 바비큐 파티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그릴과 숯, 가위, 집게 등은 모두 대여한다. 먹거리는 각자 준비해 2층 서비스 룸의 대형 냉장고에 보관한다. 공용 전자레인지와 냉·온수기 등을 갖췄다.


에코빌리지는 ‘제로하우스’, 에너지 자립형 건물이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태양열로 객실을 덥힌다.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건물은 남향으로 앉히고 차양을 없앴다. 3개 타입 18객실 모두 전면으로 가지런히 배치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예약은 전화(033-375-6800)로만 받는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동강생태정보센터와 영월곤충박물관이 있다.

기적으로 되살린 바다, 태안 유류피해극복기념관과 태배길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끝자락에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 있다. 서해안 물빛이 이리 고왔나 싶다. 2007년 12월 7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해상 크레인이 충돌해 엄청난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문가들도 회복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한국일보

만리포해수욕장의 일몰.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의 구슬땀으로 해양 오염 사고의 아픔을 비교적 일찍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일보

태안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신음하는 바다를 살리기 위해 전국에서 123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몰려와 구슬땀을 흘렸다. 인간띠를 이뤄 기름띠를 제거했다. 그리고 불과 6개월이 지난 2008년 6월, 만리포는 ‘해수욕 적합’ 판정을 받고 재개장하는 기적을 일궜다. 사고 발생 10년이 지난 2017년 문을 연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은 당시의 충격적인 환경오염과 극복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생태계 파괴의 참혹한 현장과 바다를 되살리기 위한 수많은 사람의 땀방울을 전시하고 있다. 아픔과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렸다.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된 상괭이가 대형 스크린 속에서 헤엄치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기념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관람료는 없다.


멀지 않은 곳에 ‘태배길’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작업을 하며 오가던 길을 걷기 코스로 만들었다. 약 6.5㎞ 순환형 코스로, 6개 구간을 순례길·고난길·복구길·조화길·상생길·희망길이라 이름 붙였다. 환경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길이 풍광도 빼어나다. 의항과 구름포, 안태배, 신너루 등 조그마한 포구 풍경도 아름답다.

쓰레기 줍고 ‘물멍’, 곡성 침실습지

곡성 침실습지는 곡성천·고달천·오곡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하천 습지다. 약 200만㎡ 규모로 수달과 삵, 남생이, 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해 650종이 넘는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이런 가치를 인정해 2016년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 22호로 지정했다.

한국일보

곡성 침실습지의 잔잔한 수면에 하늘 풍경이 담겼다.

한국일보

아침 햇살에 비친 물안개가 환상적인 곡성 침실습지.

습지 전역에 버드나무 군락이 있다. 지난해 홍수로 많이 쓸려 내려갔지만 예전의 무성했던 숲을 회복하는 중이다.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 자연의 힘이 느껴진다.


침실습지는 ‘물멍’하기에 좋은 곳이다. 여울진 강물과 산 그림자, 소박한 들꽃이 마음을 둥글게 다듬는다. 그중에서도 철재 다리에 구멍이 뚫린 ‘퐁퐁다리’가 최적의 장소다. 다리 중간에 서면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만 들린다. 복잡한 머리가 맑아지고 자연과 점점 일체가 된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날씨에는 이른 아침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와 어우러진 일출이 장관이다.


곡성의 주민 여행사 ‘그리곡성’을 이용하면 더 알차게 즐길 수 있다. ‘섬진강 물멍 트레일 워킹’은 1박 2일 동안 침실습지와 섬진강을 따라 걷는 자유 여행이다. 숙소로 곡성스테이를 이용하고 로컬푸드 도시락을 제공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일명 ‘쓰담달리기’ 참여를 신청하면 쓰레기 봉투와 집게, 장갑 등 필요한 장비를 챙겨준다. 직접 환경지킴이로 활동할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이다.

슬기로운 ‘새활용’ 생활, 서울새활용플라자

재활용보다 한 단계 높은 자원 ‘새활용(업사이클링)’에 관심이 있다면 성동구의 서울새활용플라자에 가볼 만하다. 국내 최대 새활용 복합문화공간으로, 버려진 자원의 수거부터 가공·제작·판매까지 새활용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한국일보

성동구 용답동의 서울새활용플라자.

한국일보

서울새활용플라자에 다 쓴 택배 상자로 만든 하마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서 내리면 빈 병으로 만든 조명과 폐 자전거 바퀴를 이용한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8번 출구로 나가 5분쯤 걸으면 ‘SUP새활용거리’라는 글씨와 페인트 통을 엮어 제작한 놀이시설이 보인다. 자투리 상수도관을 실로폰처럼 만든 ‘뮤직펜스’, 플라스틱 파이프로 만든 ‘루프업 파빌리온’이 차례로 등장한다.


건물에 들어서면 플라스틱 병 500여 개로 만든 고래가 여행자를 맞는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오염을 경고하는 작품이다. 택배 상자로 제작한 하마도 있고, 천장에는 빈 병을 활용한 샹들리에가 고급스럽다.


‘새활용하우스’는 친환경 생활 방식을 엿보는 곳이다. 이달 30일까지 체험 공간 ‘제로숲’에서 고체 치약이나 천연 수세미 등을 사용해 볼 수 있다. ‘꿈꾸는공장’에서는 3D 프린터와 미싱 등 50종이 넘는 장비를 대여한다. 저렴한 이용료로 누구나 새활용에 도전할 수 있다.


2층은 아이디어 창고다. 버려진 우산 원단으로 만든 소품가방, 낡은 책과 우유갑을 이용한 지갑 등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 아름다운가게 매장에선 헌 옷과 현수막, 소파, 가죽으로 만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입장료는 없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21.11.12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