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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잎 한 장당 50만원? '풀멍'도 하고 돈도 버는 식테크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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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더필플랜트' 운영자이자 국어 학원 원장인 박선호씨가 학원 창가에서 키우는 몬스테라 알보. 더필플랜트 제공

몬스테라 보르시지아나 알보 바리에가타, 몬스테라 아단소니 바리에가타….


경기 분당의 국어 학원 원장인 박선호(37)씨의 '시드머니'는 이 같은 희귀 식물이다. 코로나19의 한파에도 학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들 덕분이다. 처음에는 그저 취미였다. 개업 화분을 학원의 볕 잘 드는 남동향 창가에서 기르다 재미를 붙였고 얼마 안 가 학원은 식물원처럼 화분으로 빼곡해졌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잎이 7장 달린 옐로 몬스테라를 90만 원에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희귀 식물을 팔기 시작한 게 예상치 못한 '파이프라인'이 됐다. 가드닝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과 비교해 식물 가격이 10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옐로 몬스테라는 이제 잎 한 장당 보통 200만 원을 웃돈다. 그는 "희귀 식물인 무늬종 몬스테라는 잎이 곧 화폐처럼 여겨지고, 그중 몬스테라 알보는 거래량이 워낙 많아 코인 중에서도 비트코인과 같다고 보면 된다"며 "학원 운영의 절반은 학생들이, 절반은 식물들이 지탱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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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희귀 식물을 기르던 박선호씨는 코로나19로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사업자 등록을 하고 정식으로 식물 판매에 나섰다. 식물을 판매한 수익으로 학원 적자를 메운다. 박씨가 몬스테라 알보를 삽수하고 있다. 더필플랜트 제공

식물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식물에 투자하는 식테크족도 늘고 있다. 적당한 햇빛, 물, 흙과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준비 끝. 잘 키우면 집에서 '풀멍'을 때리며 힐링하는 동시에 단기간에 수십 배 수익을 올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초록색 잎에 흰색, 노란색 섞인 무늬종이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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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화훼·식물 판매장 '그린플랫폼'에서 만난 무늬종 희귀 식물들. 왼쪽은 필로덴드론 호프 셀럼 바리에가타로 가격은 4,000만 원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에피프레넘 피나텀 바리에가타로 이 정도 크기 개체 가격은 300만~350만 원 정도에 형성돼 있다. 송옥진 기자

요즘 재테크용으로 주목받는 식물은 무늬가 있는 희귀 관엽 식물이다. 일반 몬스테라는 약 1만 원 수준이지만 흰색이 섞인 몬스테라 알보, 노란색이 섞인 옐로 몬스테라 같은 무늬종은 잎 한 장에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무늬종은 엽록소가 부족해 녹색 대신 흰색이나 노란색 잎이 발현되는 변종이다. 그만큼 흔치 않고 공급량이 적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대가 높게 형성된다. 주로 50, 60대가 많이 키우는 다육이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다육이 중에서도 고가는 관엽 식물의 무늬처럼 흰색, 노란색의 '금(금색이 섞인 잎)'이 들어가 있을 때다. 천안에서 다육이 농장을 운영하는 민병진 '다육의 미치다' 대표는 "다육이는 재테크를 위해 종류별로 금만 키우는 분들이 많다"며 "창 종류 중에서도 금이 들어간 변종의 경우 가격이 2,000만~3,000만 원까지 간다"고 말했다.


경기 과천의 화훼·식물 판매장 '그린플랫폼'의 김승환 이사는 "식물 시장 역시 수요-공급 원칙에 충실하다"며 "무늬종은 1만 개 혹은 10만 개 중 1개가 나올 정도로 희귀한 데다 국내서 많이 찾는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안스리움이 최근 바나나뿌리선충 기주식물로 분류돼 대부분 국가로부터 수입이 금지되면서 가격이 더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무늬가 강할수록, 화려할수록 좋은 것만도 아니다. 6년 전부터 취미로 식물을 기르는 직장인 하모(41)씨는 "무늬가 너무 심하면 결국 광합성을 못해 죽거나 무늬가 너무 옅으면 결국 흐려져 안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르기가 까다롭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재테크를 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값이 비싼 무늬종을 기르기보다는 같은 종류의 일반 식물을 사서 충분히 연습한 뒤 무늬종에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중고시장서 개인 간 거래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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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 올라온 몬스테라 알보 판매글들. 당근마켓 캡처

개인들의 식테크는 보통 잎 한 장에서 시작한다. 50만 원짜리 몬스테라 알보 잎 한 장을 구입하면, 물꽂이를 해서 뿌리가 충분히 내리도록 하고 이를 흙에 심는다. 흙에 잘 적응하면(순화되면) 이후 새순이 나며 안정적으로 자라는데, 그때 잎을 한 장씩 잘라(삽수) 팔면 된다. 실제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여러 명이 장소를 빌려 비정기적으로 여는 식물 마켓에서 이런 개인 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르지 않고 더 크게 키워 파는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 수백만 원, 수천만 원대까지 가격이 올라가는 대신 그만큼 거래 속도가 늦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잘 키운 희귀 식물은 식물 애호가 사이에서 부르는 게 값이다. 최근 한 식물 마켓에서는 잎 한 장으로 기른 몬스테라 알보가 2,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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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와일드엣홈'의 운영자 박선화씨의 집 거실. 행잉 식물부터 희귀 식물까지 200여 개의 다양한 식물을 기른다. 와일드엣홈 제공

식물을 기르는 게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식물 투자'가 주식, 코인과 다른 점은 식물은 그 자체로 키우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홈가드닝 채널 '와일드엣홈'을 운영하는 30대 직장인 박선화씨는 "식물은 관엽 식물, 다육 식물, 희귀 식물 등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한 번 빠지면 관심사가 넓어지면서 오래 키우게 되는 것 같다"며 "특히 무늬종의 경우 돌돌 말려 나오는 새순이 펴졌을 때 어떤 무늬를 갖고 있을지 마음 졸이며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보자는 자신이 없어 작은 식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뿌리가 잘 내린 성체를 사서 기르는 게 더 쉬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