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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③손석희 “큰물에서 해보라며 정치 권유, 웃기는 얘기”

by한국일보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70>저널리스트 손석희

“유재석, ‘신뢰받는 언론인’ 1위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아… 꼭 뉴스 알려야 언론인인가”

“은퇴 이후엔 어떻든 조용히 살고 싶어”

한국일보

손석희 전 JTBC 총괄사장은 “앵커 손석희를 가장 괴롭힌 건 뭐였느냐”는 질문에 “뭐든 다 책임져야 한다는 것 아닐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칭찬은 그보다 과분하게 받았는데.” 이한호 기자

[삶도] ②손석희 “보도 전권 보장 약속에 JTBC 이적 고민 놔버렸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장면들 #5] 어젠다 키핑과 시청률

-‘세월호 참사’ 때 현장에서 어젠다를 지키는 저널리즘, ‘최순실 태블릿PC 특종’, ‘미투’ 연속 보도로 진보적 언론인, 양심적 지성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어요. 참사와 국정농단, 성폭력이라는 국가와 사회에는 비극적 사건들이라 이슈를 이끌어가면서도 편치 않았던 심정이 책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저널리스트로서는 어찌됐든 영광스러운 시기였을 텐데요. 시청률도 최고치였고요.


“제게 붙는 수식어들은 모두 과분하고 그래서 민망해요. 저는 그냥 저널리스트이고 싶을 뿐이에요. 모순일 수 있죠. 입에 발린 소리라고 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 예로 든 사건들이 하나같이 비극적인 일들이지요. 그게 또한 ‘영광’이란 단어와 모순입니다. 저는 뉴스 책임자로서도, 앵커로서도 늘 그런 모순 속에서 지내왔던 것 같아요. 뉴스는 비극이 있어야 관심을 끌고, 품위를 얘기하면서도 시청률을 생각해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그 경계에 있는 담장 위를 걷는 거지요. 책 제목도 처음엔 ‘담장 위를 걷다’로 정해놓고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장면들’로 바꿨어요.”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결정적 보도를 했고, 박근혜 정부 몰락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달리 보면 문재인 정부의 탄생과 이어지고요. 문재인 정부에서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는 것 아니냐는 안팎의 걱정이나 의심스러운 얘기를 듣기도 했을 것 같아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어느 교수가 제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군자표변(君子豹變)’. 그러니까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대담하게 고쳐서 나아간다는 뜻인데, ‘뉴스룸’도 지금까지의 자세를 바꿔서 나가야 한다는 충고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우리가 자세를 바꿀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제가 책에다 썼지요. 2017년 대선 당일에 광화문의 JTBC 야외 스튜디오 앞에 모인 사람들이 선거 결과가 나오고 문재인 당선자가 바로 옆 더불어민주당 특설무대에 나타났을 때 말이에요. 시민들은 그리로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민주주의이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이 아니라는 걸 그 분들이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정권 편향’ 비판도 받았는데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히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이고 정권은 그 하위 개념이에요. 시민사회를 위해선 언론이나 정권이나 도구일 뿐이지요. 진보나 보수라는 건 그 도구들이 민주주의나 인본주의를 실천하는 방법론의 차이잖아요. 저는 그 방법론이 ‘합리적 진보’라고 보는 쪽이고, 우리 뉴스도 거기에 속해야 한다고 봤어요. ‘특정 정파 편이다, 아니다’로 논쟁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요.”


이어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보도 방향으로 얘기가 옮겨갔다. 그는 “책에 쓴 내용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이니 그대로 이해해 달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책에서 “언론이 얼만큼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을 드러내고 그 당위성과 역사성까지 집어냈는지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례적으로 민정수석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한 경우의 당위성, 그 임명이 (검찰개혁의 완수에는)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더 따져봤어야 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런데도 당시엔 조국과 윤석열이라는 상징화된 개인들로 검찰개혁이라는 의제가 수렴돼 버렸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어젠다 키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일 것 같아요. 저널리스트의 존재 이유는 독자, 시청자인데 그것은 시청률로 드러나니까요. 그럼에도 어젠다를 지켜야 할 때, 어떤 생각으로 지켰나요.


“사실 가장 고민스러운 대목이에요. 어젠다라는 게 대개 기분 좋은 주제는 없거든요. 앨 고어의 책 제목처럼 ‘불편한 진실‘이 대부분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미디어가 그걸 담아낸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그런 분노의 감정은 깎이고 무뎌질 수 있어요. 게다가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정치나 경제 권력은 그것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어젠다를 덮습니다. 이른바 프레임 전략이란 거지요. 그러면 우리가 지켜온 어젠다에 대한 감정은 무뎌지거나 사라지고, 논리만 남는데 언론이 그것마저 덮어버리면 결국 감정뿐 아니라 논리까지 묻히고 잊혀버린다는 건데, 그건 너무 허무하잖아요.”

[장면 #6] 정치라는 큰물?

한국일보

그는 “최근에도 출마 권유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그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서 영입 노력을 기울이는 대표적 인물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치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한호 기자

-‘시사IN’이나 ‘시사저널’ 조사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를 지키고 있어요. 이름 자체가 고유명사가 됐죠. 비교할 대상이 없는 영향력과 신뢰도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주는 무게가 어떤가요.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냥 인지도 조사라고 생각했거든요. 저야 화면에 나오기를 수십 년 한 사람이니까 그만큼 익숙한 인물이었을 거고요. 그리고 솔직히 ‘이걸 꼭 순위를 매겨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감이 커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역동적인 사회에서 말이지요. 모든 것이 엎치락뒤치락 변화하는 세상에서 꾸준히 저를 떠올려 주신다는 것에 감사해요.”


-올해 조사 결과를 보면 흥미로워요.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개그맨 유재석씨가 2위로 꼽혔거든요. 어떠셨나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언론인을 꼭 ‘뉴스를 알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까. 저는 예능이나 드라마도 저널리즘의 범주에 넣어서 생각해요. 좋은 예능 프로그램이, 좋은 드라마가 세상을 더 변화시킬 때도 있잖아요. 보도가 그런 면에서 더 우월하거나 유일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내년에 유재석씨가 1위를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동의해요. 유재석씨도 인터뷰어니까요. 혹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출연을 요청한 적은 없나요.


“없었어요. 저는 다른 방송사 소속인데요, 뭐. 그런데 유재석씨에겐 (제가 하는 프로나 뉴스에서) 여러 번 요청했는데 나온 적이 없어요. (웃음)”


- 선거 때마다 여야 모두에서 영입하려고 하는 언론인이기도 해요. 일부러 만나거나 연락한 사실을 공개해서 활용하는 정치인도 있었고요. 최근에도 ‘정치해보라’는 제안이 있었나요.


“노코멘트해도 되지요? (웃음) 그런데 있건 없건 상관없습니다. 결과는 같으니까요.”


-“나는 언론인이고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누차 밝혔지만, 정치권에선 계속 신호를 보내요. ‘언론인으로서 나를 어떻게 보는 건가’ 싶어 불쾌하지는 않나요.


“(웃음) 이젠 저도 나이가 들고 해서 그렇진 않아요. 그런데 이미 아주 오래전에 정리해서 말씀드린 게 있어요. 저는 정치가 언론이나 다른 분야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좀 더 큰물에서 해봐야지’ 하는 얘기를 들으면, 제가 자주하는 표현으로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건 맞아요. 정치권으로 간 언론인이 많은데, 그건 그냥 그들의 선택이니까 제가 뭐라 할 것도 없고요.”


-저널리즘의 사명이 결국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정치가 더 빠를 수도 있는데요.


“더 느리던데요? (웃음) 그 얘긴 그만 하지요. 더 빠르고 느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얼마나 더 충실한가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1993년 낸 ‘풀종다리의 노래’가 중고 책으로 7만7,000원에서 12만 원까지 팔리던데요. 재출간할 생각은 없나요.


“지금 봐도 좀 민망하고 부끄러운데 다시 내다니요. 제가 출판사인 역사비평사에 부탁해서 보관 중인 게 좀 있습니다. 아마 연락하시면 보내 드릴 거예요.”


그는 첫 책을 냈던 역사비평사에서 새 책도 출간한다. 인기가 많았던 ‘뉴스룸’의 코너 ‘앵커브리핑’ 선집이다. 950편 중에서 303편을 골라 그의 코멘트를 덧붙여 정리했다. 이 코너 담당이었던 김현정 작가와 공저다. 이르면 내년 초쯤 나올 예정이다. 몇 년 전부터 ‘앵커브리핑을 책으로 엮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더니 올해에야 미뤄둔 숙제를 하듯 집필을 끝낸 거다.


-실패의 경험이 있나요. ‘실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뭔가요.


“실패의 개념이 뭔지 먼저 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에 따라서 아주 많거나 하나도 없거나 둘 중 하나지요.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아주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씩 더디었고요. 직업 때문에 본의 아니게 결벽증도 생기고, 외곬으로 살다 보니 험한 일도 겪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패의 개념을 좀 바꾸면 그게 ‘배움’이 되더군요. 그렇게 보면 실패했다기보다는 굉장히 많이 배웠습니다.”

[장면 #7] 1분의 가치

한국일보

1996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를 인터뷰하는 손석희 아나운서. 손석희 제공

-저널리스트로서 자세와 신념을 곧추세우게 한 계기가 있나요.


“아주 초기의 얘깁니다. (입사 2년 차인) 1985년 현장 르포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어요. 산간 오지도 찾아가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프로였지요. 한번은 강원도 탄광마을을 갔어요. 거기 초등학교를 둘러보다가 복도에 걸린 그림을 봤지요. 탄광촌이라 어린이들이 시냇물도 까맣게 그려놓은 게 찡했어요. 그림 중 하나의 내용이 뭐였냐면, 어느 학생의 아버지 그러니까 광부였지요. 그 아버지가 갱도에 갇혔다는 소식이 제가 했던 뉴스에 나와서 온 가족이 울고 난리가 난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며칠 뒤 역시 제가 하는 뉴스에서 아빠가 구출됐다는 소식이 나온 거죠. 그런 스토리가 그림에 담겨 있었어요. 제가 ‘1분뉴스’란 걸 할 때였죠. 단 1분. 그 1분이 사람들을 비탄에 빠지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는 거였지요. 저는 그래서 1분 반짜리 리포트라도 대충 만드는 걸 보면 너무 화가 나요.”


-2018년 12월이란 시점에 경영진이 왜 앵커 하차 의사를 내비쳤을까요.


“그건 책에 쓴 그대로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제가 등기 대표이사로 취임했기 때문에 보도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적절치 않았어요. 그럼에도 1년 이상을 뉴스 편집권을 가지고 앵커를 했던 것이지요. 또 그게 아니라도 경영진은 어차피 ‘포스트 손석희’를 고민해야 했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제가 ‘세대교체’라고 말했던 겁니다. 그런데 저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자꾸 정치적 함의를 찾으려 하니까 제가 더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 회사 측이 제시한 시점보다 제가 다섯 달이나 더 앞당겼던 거예요.”


-물리적으로 JTBC를 떠나게 됐습니다. 후배들과 부대끼고 복작거렸던 ‘뉴스룸’의 시간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였나요.


“이제 인터뷰가 거의 막바지군요. (웃음) 어느 후배가 제게 말하기를 ‘만날 잔소리만 들었지만 그래도 같이 있을 때가 좋았다’고 하더군요. 그 후배 마음이 저의 마음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말석에서 디지털 시대 상석의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굉장히 언론 환경이 어려워졌죠. 앞으로 더 그럴 거고요. 그래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라고 할 때 ‘Legacy(유산)’는 계속 남는 거잖아요. 레거시의 가치와 의미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버리는 게 아니라 지키는 데 있어요.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건 틀린 게 아니에요.”


그의 답은 질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언론이 누구를, 무엇을, 어디를 지켜야 하는지에 관한.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아마, 그가 즐겨 쓰는 말 ‘본래적 의미의 저널리즘’으로 가는 지름길일 거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갈팡질팡하는 레거시 미디어들이 결국 손에 쥐어야 할 답이기도 하다.

[장면 #8] 나의 사랑이자 동지

한국일보

그에게 후임 앵커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물었다. 그는 “없다”고 바로 답했다. “내가 완벽한 모델도 아닐뿐더러, 한 사람의 방법론이 다른 이에게도 다 통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저널리스트 이후의 손석희’, 그러니까 은퇴 이후도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당연히 있지요. 하지만 늘 바뀝니다. 한 가지 안 바뀌는 건 어떤 경우든 좀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거지요.”


-지금까지 살면서 삶의 길에서 길어 올린 삶의 도가 있다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어 문구가 있는데 ‘Life goes on’입니다. 제 식으로 번역하자면, ‘삶의 법칙… 흘러간다’예요. 설명이 필요 없는 문장이지요.”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그의 뉴스 클로징 멘트가 밋밋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그의 말대로 그 이상의 다짐이나 약속이 없다. ‘내일도’라고 했으니, 오늘은 이미 최선을 다했어야 하며, 그 오늘처럼 내일도 그래야 한다는 선언. 게다가 ‘최선’이란, 가없는 노력이다. 그렇게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지향을 향해 묵묵히 걷기가 쉬운 일이냔 말이다. 그 문구를 떠올릴수록 엄중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온 이유다.


그렇게 살았으니, 오늘의 손석희가 된 것이리라. 그는 애초 인터뷰도 “저널리즘 얘기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손석희에서 저널리즘을 빼면 뭐가 남는가’ 궁금해졌다. 그는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직업적으로 보면 남는 게 없죠”라더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다”고 고쳐 말했다. “저라는 사람한테서 저널리즘을 빼면 가족이 남겠지요.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책 첫머리에 “나의 사랑이자 동지인 가족에게”라고 새긴 이유일 테다.


그가 좋아하는 밥 딜런의 노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처럼 시대는 계속 변한다. 그래도 삶은 흘러가는 게 순리(Life goes on)다. 이 표현에 손석희를 입히면, 시대가 변해도 손석희라는 저널리스트는 내일도, 오늘처럼 흘러갈 것이다. 그것이 왜 위안을 주는지.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lun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