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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엠블랙 이준이 진짜 조폭으로 오인했던 마동석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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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의 영화 속 여러 모습들.

마동석의 데뷔작은 영화 ‘천군’(2005)이다. 34세 때였다. 박중훈과 황정민, 김승우, 공효진 등 스타 배우 여럿이 출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늦깎이 신인임에도 스크린에서 두드러진다. 얼굴도, 몸도 울퉁불퉁한 외모는 충무로에서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나마 옛 성격파 배우 박노식(1930~1995)에 가까운 얼굴이라고 할까.


그는 ‘천군’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16세기 조선에 떨어진 북한군 황상욱을 연기했다. 시간여행 속에서도 임무 완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인물이다. 북방 오랑캐의 화살을 팔뚝으로 막기도 한다. 우직하게 돌진하는 마동석표 액션을 연기 출발점부터 보여준 셈이다.


마동석은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했으나 ‘천군’ 속 북한군 모습에서 멀리 나아가진 못했다. 간혹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기는 했으나 굵고 짧은, 거친 삶을 추구하는 인물로 회귀하곤 했다. 주로 험상궂은 얼굴과 근육 덩어리 덩치를 내세운 역할이었다. 관객을 웃긴 마동석의 영화 역시 그의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반어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패션 감각이 남다른 조선 관리 판수('상의원'),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중국집 주방장 거석이형('시동')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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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은 영화 '통증'에서 자해공갈 해결사 범노를 연기하며 첫 주연자리를 차지한다. 롯데컬처웍스 제공

배우 인생 전반기엔 주연보다는 조연을 맡았다. 첫 주연을 한 영화가 ‘통증’(2011)으로 마동석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해공갈 해결사 범노 역할을 맡았다. 거친 표정과 투박한 말투는 여전한데, 이전 연기와는 다른 결이었다. 범노는 사고로 통증을 못 느끼는 부하 남순(권상우)을 활용해 서민에게서 돈을 뜯어내곤 한다. 약삭빠르게 남순을 속이면서도 가끔 강원도 사투리에 속정을 담아낸다. 범노의 말은 대체로 냉소적이다. 그가 남순에게 “니, 여자 생겼나”라고 짧게 반문할 때 질투와 타박과 경계(그리고 옅은 동정)가 섞여 있다. 인생의 여러 맛을 고루 맛본 후 쓴맛과 짠맛만을 맛봐야 할 시간밖에 남지 않은 사람의 말투 같다. 범노는 뒤늦게 연기에 입문하고, 겨우 영화계에 자리 잡았으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영영 거리가 멀어 보였던 당시 마동석을 닮은 듯해 더 마음이 갔다.


비슷한 시기 출연한 ‘퍼펙트 게임’(2011)은 마동석 외모의 강렬함을 새삼 실감케 한 영화다. 한국 야구역사 최고 투수인 선동열(양동근)과 고 최동원(조승우)의 맞대결을 그린 이 영화에서 마동석은 가공의 인물 박만수로 등장한다. 박만수는 주전 자리와 거리가 먼 해태 타이거즈 포수다. 운 좋게 출장 기회를 얻고 결정적인 순간 홈런을 때려낸다. 인상적인 인물이 인상적인 장면을 차지했으니 “‘퍼펙트 게임’은 결국 마동석 영화”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장면을 훔치는 배우(신스틸러·Scene Stealer)를 넘어 영화 전체를 훔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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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은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해태 타이거즈 포수 박만수를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롯데컬처웍스 제공

폭력배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배우는 배우다’(2013)의 주연배우 이준(아이돌 그룹 엠블랙 출신)은 촬영장에서 마주친 마동석이 정말 조직폭력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었다는 말이 있다. 마동석은 조폭 ‘깡다구’를 맡아 이 영화에 얼굴을 잠깐 비춘다. 트레이닝복이 터질 듯한 근육이 유난히 위압적이다.


스크린 밖 마동석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친화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곧잘 “형님”이라 부른다고 한다. 사교를 위한 상투적 표현이라고 하나, 미국에서 청년기 대부분을 보낸 이답지 않은 처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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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동'의 거석이형은 천진난만한 중국집 주방장으로 보이나 과거 폭력조직의 핵심 인물이었다. NEW 제공

일에 대한 추진력과 열정은 남다르다. 제작을 겸하고 있는 그는 작가에게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종종 내고, 자료 조사를 많이 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마동석과 영화 공동 제작을 준비 중인 오은영(서경대 교수) 이오콘텐츠그룹 대표의 평. “아이디어가 많아 촬영장에서 감독과 협의해 대사를 차지게 바꾸곤 한다. 작가 등 창작자를 잘 대우해준다. 어느 제작자 못지않게 기획력이 뛰어나다. 다른 제작자라면 엄두조차 안 낼 기획안이라도 거침없이 추진하고 실행한다. 리더십이 있다.”


마동석이 ‘천군’으로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베테랑’)라는 대사로 관객을 웃겼을 때만 해도 그가 마블 영화 ‘이터널스’(2021)의 주연까지 맡게 될지 예상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뚝심도 이런 뚝심이 없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