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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배 저어라, '윤선도 유토피아'로... 한겨울에도 그 섬은 봄날

by한국일보

<141> 완도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와 3색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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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윤선도원림'의 핵심으로 꼽히는 세연정.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유교적 이상향을 구현한 정원으로 이름처럼 물에 씻은 듯 맑고 단아하다.

“간밤에 눈 갠 후에 경물(景物)이 다르구나 / 배 저어라 배 저어라 / 앞에는 만경유리(萬頃琉璃·끝없는 유리 바다)요 / 뒤에는 천첩옥산(千疊玉山·첩첩이 둘러싼 맑은 산)이로다 /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 세상이 아니로다”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지은 연시조 ‘어부사시사’ 중 겨울을 노래한 4번째 시다. 그의 이상향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섬, 완도군 보길도다. ‘험한 구름 원망 마라, 인간 세상 가려 준다. 파도 소리 싫어 마라, 속세 소리 막아 준다’거나, ‘붉은 꽃 흩어진 데 흥겨워하며 걸어가서, 눈 위에 비친 달빛이 서산을 넘도록 송창(松窓)에 기대어 있자’ 등에도 보길도의 겨울 풍경과 은둔 선비의 서정이 녹아 있다.

윤선도에 의한 윤선도의 섬

보길도는 명실공히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 작가 윤선도의 섬이다. 고산은 인조 14년(1636) 12월 병자호란 때 피신한 왕을 보호하기 위해 가신 수백 명을 이끌고 강화로 갔으나 이미 함락된 뒤였다. 다시 왕이 피란한 남한산성으로 향했으나 이번에는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치욕으로 생각한 그는 평생 은거할 것을 결심한다.


1637년 제주도로 향하던 그는 보길도의 절경에 이끌려 행선지를 변경하고 이곳에 머물게 된다. 수리봉 격자봉 망월봉 등 해발 300~400m 산 능선이 감싸고 있는 섬의 북쪽 계곡을 부용동이라 칭하고, 1681년 85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일곱 차례 드나들며 자신만의 이상향을 가꿨다. 섬에 머문 기간은 총 13년, 생을 마감한 곳도 부용동의 거처 낙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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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항에서 노화도 산양항으로 가는 도선에서 본 땅끝전망대. 노화도(보길도) 가는 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항한다.

보길도는 남도 끝자락의 섬이어서 멀게 느껴지지만, 일단 전남 땅에 발을 들이면 배편이 많아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보길도로 가기 위해서는 노화도를 거친다. 두 섬은 해상교량으로 연결돼 있다. 완도 화흥포항과 노화도 동천항 간 여객선은 하루 11회, 해남 땅끝항과 노화도 산양항 간은 하루 24회 왕복한다. 당일 여행도 충분한 수준이다. 어느 항구를 이용해도 약 30분이 걸린다. 단 섬 안에서 자유로이 이동하려면 차량이 필수다. 땅끝항 기준 편도 승선료는 일반 승용 차량 1만8,000원, 성인 6,500원이다.


윤선도의 부용동 정원에는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명승으로 지정된 ‘윤선도원림’은 크게 세연정, 낙서재, 동천석실 세 구역으로 나뉜다. 고산의 5대손 윤위(1725~1756)가 24세 때 보길도를 답사하고 유적지의 배치, 고산의 사람됨과 생활상 등을 기록한 ‘보길도지(甫吉島誌)’를 토대로 복원했다. 산세가 연꽃을 닮았다 해서 부용동(芙蓉洞)이라 했지만 현재 행정지명은 부황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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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가 자신만의 이상향을 가꾼 부용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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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은 계곡과 바다를 두루 즐길 수 있는 위치다. 보길초등학교 운동장 바로 오른편이 세연정이다.

첫 목적지는 세연정(洗然亭)이다. 입장료(3,000원)를 내고 들어가면 작은 전시실을 거친다. 윤선도의 생애와 보길도의 역사를 두루 알리고 있다. 전시실 밖으로 나가면 우측으로 검푸른 상록수가 아담한 들판을 감싸고 있다. 바닥에도 연초록 빛깔이 살아 있어 한겨울이지만 따스하다.


고산이 직접 조성했다는 세연정은 바로 아래에 있다. 거주지와는 다소 떨어져 있는 별서정원에 해당한다. 오늘날로 치면 별장이지만, 건물 치장이나 조경이 요란하지 않다. 흐르는 계곡을 낮은 돌다리로 살짝 막아 얕은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에 정자 하나를 세웠다. 밖에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한 몸이다. 이름처럼 물에 씻은 듯 맑고 단정하다. 대신 돌과 흙 더미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했다. 정자를 중심으로 연못을 한 바퀴 돌면 동대와 서대, 혹약암, 비홍교, 회수담, 사투암 등을 두루 거친다. 어느 한 구석 허투루 보아 넘길 데 없이 꽉 찬 정원이다.


한겨울에도 삭막하지 않은 건 보길도의 따스한 기후 덕분이다. 정자와 연못 주변은 동백을 비롯해 후박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등 녹나무과 상록활엽수로 덮여 계절을 가늠하기 어렵다. 사방으로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세연정에 오르면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푸르고 눈부시다. 하나둘 빨간 꽃송이를 터트리는 동백 가지를 통과한 햇빛이 잔잔한 연못에 반사되면 봄볕의 따스함마저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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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 입구 연둣빛이 살아 있는 들판 뒤로 상록수가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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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의 동백이 막 봉우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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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정자와 연못, 갖가지 수목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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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 마루에 오르면 기둥 사이로 펼쳐지는 녹음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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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 옆 옥소대로 올라가는 길이 상록활엽수로 덮여 녹색터널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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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소대에 오르면 부용동 계곡과 바다가 두루 조망된다. 고산이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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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소대에서 오른편으로 보면 상록활엽수 뒤로 푸른 바다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서쪽 산자락으로 80m를 오르면 옥소대가 나온다. 고산이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보면 험하지만 정상은 제법 평평한 너럭바위다. 발밑으로 세연정이 한눈에 들어오고, 왼편으로는 부용동 깊은 계곡이, 오른쪽으로는 쪽빛 바다가 보인다. 풍요롭고 고요하다. 다산이 이곳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 풍광이다. 세연정 바로 뒤는 보길초등학교다. 인조잔디 깔린 운동장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게 유일한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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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거처였던 낙서재.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선비의 삶이 담긴 작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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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재 아래에 고산의 아들 학관의 거처인 곡수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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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수당과 낙서재는 산채로로 연결돼 있다. 주변이 온통 짙은 녹색이다.

세연정에서 찻길로 약 2㎞를 올라가면 고산의 주거 공간인 낙서재(樂書齋)와 휴식 공간인 동천석실(洞天石室)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낙서재는 독서를 즐기며 학문하는 선비의 삶을 상징한다. ‘보길도지’에 따르면 애초 이곳은 지형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목이 울창했다고 한다. 이에 고산은 장대에 깃발을 달고 사람을 시켜 섬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431m)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지맥을 헤아려 집터를 잡았다고 한다. 낙서재는 처음에는 이엉으로 엮은 초가였다가 후손들에 의해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바로 아래에는 아들 학관이 휴식처로 지은 곡수당(曲水堂)이 있다. 부친의 커다란 인품과 학식이 굽이굽이 휘돌아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듯하다.


동천석실은 낙서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중턱 바위 절벽에 지은 조그마한 전각이다.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일컫는다. 도교에서는 성스러운 이상향으로 그려진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꼭 그렇다. 속세와 동떨어진 깊고 깊은 산중에서도 세상사를 손금 보듯 꿰뚫어보는 도사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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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재 맞은편 산 중턱의 동천석실. 그냥 보기에도 신선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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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석실에서 내려다본 부용동 풍경이 아늑하고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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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석실 용두암 사이로 윤선도의 처소인 낙서재가 보인다. 두 곳을 줄로 연결해 음식을 날랐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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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석실 가는 길도 동백을 비롯한 난대림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몸 하나 겨우 누울 만한 자그마한 전각 앞에 용두암이 있다. 두 개의 바위 사이 홈에 도르래 같은 기구를 설치해 줄을 매고, 처소인 낙서재까지 연결해 음식을 날랐다는 믿기지 않는 설명이 붙어 있다. 요즘으로 치면 집라인을 설치하기 딱 좋은 지형이다. 안개가 자욱한 날, 도포자락 휘날리며 공중을 가로지르는 고산의 풍모가 어른거린다. 그 좁은 절벽에 인공연못(석담)과 돌다리(희황교)를 만들고, 바위를 깎아 차를 끓여 마셨으니 은둔자 윤선도의 삶도 신선의 그것이 아니었을까. 도로에서 동천석실까지는 제법 가파른 길로 10분 이상 걸어야 한다. 역시 짙은 상록수 터널이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다.

바위·자갈·모래… 보길도의 3색 해변

보길도는 험한 바위 지형인 섬의 남쪽을 제외하면 가장자리로 도로가 잘 나 있는 편이다. 그리 크지 않지만 특색 있는 해수욕장을 고루 갖추었다는 것도 보길도의 자랑이다.


부용동 초입에서 섬의 북측으로 돌아 서쪽 끝까지 가면 보옥리 공룡알해변이 나온다. 이름처럼 굵은 자갈이 파도에 뒹구는 해변이다. 당연히 여름이라도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부적합하다. 해변 오른쪽에는 삼각뿔 모양의 보족산이 우뚝 솟아 있다. 누가 봐도 ‘뾰족산’이다. 해남에 땅끝전망대가 있다면, 공룡알해변 가는 길에는 망끝전망대가 있다. 망월봉 끝자락이라는 뜻인데 왼편으로 보족산이 신비로움을 더하고, 정면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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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서쪽 끝자락의 보옥리 공룡알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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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처럼 휘어진 예송리 포구에 작은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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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리해변은 반들거리는 자갈로 뒤덮인 몽돌해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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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리해변의 상록수림. 숲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서 한겨울에도 이국정인 정취를 풍긴다.

부용동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길이 끝나는 곳에 자갈로 뒤덮인 예송리해변이 있다.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윤기 머금은 돌멩이도 함께 구른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돌 구르는 소리가 자연의 화음을 이룬다.


예송리의 더 큰 자랑은 해변을 띠처럼 두르고 있는 상록수림이다. 폭 30m의 숲이 700m에 이르니 규모도 적지 않다. 바람을 막는 방풍림과 어족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어부림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숲속으로 산책로가 나 있어 잠시 제주도 어느 난대림을 산책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예송리에 도착하기 전 도로 언덕배기에 정자각이 있다. 반달처럼 휘어진 해변과 예작도 사이 포구에 작은 어선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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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중리 앞은 전형적인 모래해변이다. 뒤편으로 작은 섬과 노화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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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래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보길도 중리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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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돌아나올 때 배 시간을 잘 맞추면 선상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보길도에서 가장 큰 중리마을 앞은 모래해변이다. 약 500m로 제법 길지만 활처럼 휘어져 아담하고 아늑하다. 물이 빠지면 해변의 폭은 더욱 넓어지지만 바닷물은 탁하지 않고 푸른 빛을 유지한다. 해변 반대편으로 나가면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노화도가 지척으로 보인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시간을 잘 맞추면 선상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노화도 산양항에서 오후 4시 50분, 5시 20분과 40분에 출항하는 배가 있고, 막 배는 오후 6시다.


완도=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