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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세기말' 패션에 '벽돌폰' 들어볼까...MZ세대가 역행하는 이유

by한국일보

전체 차트 섬유·의복+0.60% F&F+0.36%

불안과 희망 교차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배꼽티' '골반바지' 등 'Y2K' 패션...올봄 유행 부활

英 10대 청소년이 스마트폰 대신 '벽돌폰' 사용도

그 시절, 코로나19 시기와 닮아...MZ세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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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브랜드 HM은 올봄 아예 'Y2K' 콘셉트로 무장해 나왔다. HM과 걸그룹 ITZY가 컬래버레이션해서 출시한 'Y2K' 스타일 의류들. 상의를 짧게 디자인한 '크롭톱'과 카고 바지가 인상적이다. HM 제공

답답한 마스크 패션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벗어나 싱그러운 봄을 맞고 싶지만 마스크를 벗기엔 두려움이 앞선다. 지구 종말론으로 어수선하던 1990년대 후반, 새로운 희망에 들뜨던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앞둔 그때 그 시절 분위기와 사뭇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역주행 중이다. 일명 '배꼽티'로 멋을 내던 'Y2K', '세기말' 패션을 선호하고, 스마트폰 대신 단순 기능의 '벽돌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더불어 1950년대로 내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혼란과 희망이 뒤섞이던 시절을 선망하는 이도 있다. 혼탁한 시대 속 불안을 떨쳐내고 싶은 MZ세대들의 몸부림일는지도.

제니처럼 입어 봐! 'Y2K'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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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의 멤버 제니가 허리선 위로 올라오는 '크롭톱' 상의와 골반에 걸치는 '로우라이즈' 하의를 입고 있다. 제니 SNS 캡처

직장인 이모(30)씨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서 트위드 재킷과 니트 카디건, 골지 니트 셔츠를 주문했다. 산뜻한 파스텔톤 색상이 돋보이는 상의들은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다. 배꼽티로 불리며 짧게 입는 '크롭톱' 스타일. 이씨는 "블랙핑크의 제니가 짧게 디자인된 샤넬 카디건을 입은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 코로나 시기지만 따뜻한 봄맞이를 하고 싶다"며 크롭톱을 입어 보기로 용기를 냈다.


제니는 요새 20대 여성들의 패션 기준이다. 제니처럼 입고 제니처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게 대세라면 대세. 이른바 '제니 패션'은 2022년 봄·여름(SS) 시즌 컬렉션 패션쇼의 모음집과도 같다. 샤넬, 미우미우, 돌체앤가바나 등 명품 브랜드 패션쇼에서 선보인 짧게 입고, 받쳐 입고, 맞춰 입는 패션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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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 미우미우의 2022년 봄·여름(SS) 시즌 컬렉션 패션쇼. 이번 시즌에 유행할 '크롭톱'과 '로우라이즈' 미니스커트가 선보였다. 미우미우 홈페이지 캡처

아슬아슬한 크롭톱과 골반까지 내려 입은 '로우라이즈' 하의는 눈길을 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이어졌던 일명 '세기말' 'Y2K' 패션이어서다. 그 시절 'X세대'들이 입었던 배꼽티가 크롭톱으로 부활했고, 여기에 골반까지 바짝 내려 미니스커트나 바지를 매치한다면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다.


SPA브랜드 H&M, 자라, 코스, 에잇세컨즈 등은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Y2K' 패션을 부각했다. 과하지 않게 허리선까지 오는 카디건과 셔츠, 니트에 화려한 색감을 넣어 톡톡 튀는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1950년대 남학생들이 입었던 새내기 패션인 '프레피 룩'도 눈여겨볼 만하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프레피 룩'은 1990년대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교복처럼 단정하게 딱 떨어지는 재킷이나 일명 '떡볶이 코트' 등이 프레피 룩을 상징한다. 최근에는 티셔츠나 남방에 니트 조끼를 받쳐 입는 스타일이 인기다. 이 패션은 남녀 모두가 활용할 수 있다. 꽉 조이는 크롭톱 형태의 조끼나 큼직하게 입는 박시한 조끼 형태 등 극과 극 스타일 모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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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수현(왼쪽)이 니트 조끼로 '프레피 룩'를 완성했고, 방송인 김나영은 멋스러운 '청청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다. 타미힐피거 제공·김나영 SNS 캡처

상·하의를 맞춰 입는 패션도 유행이다. 청바지와 청재킷을 함께 착용하는 '청청 패션'은 여전히 강력한 유행 코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같은 색과 같은 재질로 통일하는 건 금물. 촌스러울 수 있다. 하의를 진한 청바지로 입었다면 상의는 연청 셔츠나 연청 재킷을 입어 주는 것. 또한 상·하의 중 하나는 면 등으로 소재를 달리해 입으면 센스 있는 감각을 드러낼 수 있다.


벨벳 원단의 트레이닝복도 유행이라면 유행. 1990년대 말 압구정동을 강타했던 미국 브랜드 쥬시꾸뛰르 트레이닝복을 소장하고 있다면 진작에 꺼내 입었어야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행은 돌고 돌고 도니까.

'벽돌폰' 아는 사람? 10대가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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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이른바 '벽돌폰'이라고 하면 두께감 있는 큼지막한 초창기 휴대폰(왼쪽)을 떠올리지만, 유럽에선 2000년 출시됐던 노키아 3310 모델(오른쪽) 같은 휴대폰을 일컫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시는 스마트폰을 사지 않을 겁니다."


영국에 사는 로빈 웨스트(17)양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휴대폰을 사용한다.그는 1990년대 후반에 출시된 일명 '벽돌폰'을 들고 다닌다. 이 휴대폰은 10대들이 즐기는 틱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기본 통화 및 문자 메시지만 송수신할 수 있다.


그는 중고품 가게에서 단돈 8파운드(약 1만 원)에 이 벽돌폰을 손에 넣었다. 스마트폰 기능이 없으니 월 데이터 요금도 무척 저렴하다. 여러 장점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스마트폰을 써 왔던 사람에게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


그런데 오히려 그동안 스마트폰에 의지해 생활해 왔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내가 벽돌폰을 사기 전까지 내 생활에서 스마트폰이 얼마나 많이 차지하고 있었는지 몰랐다"며 "이 구식 폰은 나를 사전에 계획해서 행동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최근 벽돌폰 같은 단말기가 영국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마케팅 조사기업 SEMrush에 따르면, 2018~2021년 구글에서 이런 구식 폰 검색량이 89%나 급증했다. 또 2019년 4억 대가 팔리던 이 구식 단말기는 2020년 10억 대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14억 대로 2020년보다 12.5% 감소한 수치와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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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세상에 나왔다가 2017년 재출시된 노키아 3310 모델. 노키아 제공

이로 인해 2000년에 출시됐던 노키아 3310 모델 단말기가 부활하기도 했다. 이 모델은 2017년 재출시돼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휴대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노키아는 이 휴대폰을 고성능 스마트폰의 대체재로 밀어붙였다. 애플과 삼성의 최신 모델 스마트폰과 기능 면에서 경쟁할 수 없지만, 배터리 지속력이나 내구성 등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구식 폰 제조업체 중 뉴욕의 라이트폰도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에 비해 150% 증가했다. 가격이 99달러(약 12만 원)부터 시작해 그리 싸지 않지만 제품에 똑똑한 기능을 추가한 게 특징이다. 음악과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고, 블루투스로 이어폰 연결이 가능하다.


사실 이 회사의 휴대폰은 주말 동안 휴식을 취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세컨드 폰' 개념으로 처음 출시됐다. 그러나 현재 이 회사의 고객 절반이 이 휴대폰을 주요 기기로 사용하고 있다. 카이웨이 탕 라이트폰 공동설립자는 "놀랍게도 회사의 주요 고객이 25~35세 사이다. 사실 훨씬 더 나이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20대 청년이 즐기는 1950년대 부엌 생활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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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거주하는 청년 트래비스 블레이즈가 1950년대식으로 꾸며 놓은 부엌의 모습. 냉장고와 오븐은 1950년대 출시된 제품이다. 영국 일간 미러 홈페이지 캡처

복고풍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부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 거주하는 부동산 개발업자 트래비스 블레이즈(25)는 1950년대 '주부'처럼 살고 있다. 20대 청년이 부엌 가전제품을 모조리 1930~1950년대 빈티지 모델로 바꿔 생활하고 있다고 최근 영국 일간 미러가 보도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1953년 출시된 핑크색 세탁기와 건조기, 1954년 나온 에메랄드 녹색 냉장고, 1930년대식 오븐과 믹서기가 있다. 모두 새 제품처럼 깨끗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요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블레이즈는 우선 골동품 상점에서 이러한 빈티지 제품들을 찾고, 이베이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검색해 상품을 구입한다. 대체로 상당히 저렴하게 사지만 수리비가 더 많이 든다. 75달러(약 9만 원)에 산 냉장고의 수리비는 무려 700달러(약 86만 원)로 거의 10배가 들었다. 난로도 120달러(약 15만 원)에 구입해 수리비로 600달러(약 73만 원)가 나갔다.


그가 수집한 골동품 목록에는 1956년 캐딜락과 1950년 GMC 트럭도 있다. 이들 자동차를 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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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거주하는 청년 트래비스 블레이즈가 1950년 출시된 세탁기 앞에 서 있다. 영국 일간 미러 홈페이지 캡처

이쯤되면 블레이즈는 '50년대 사람'처럼 보인다. 이 시대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이다. 블레이즈는 "모든 것은 자동차에서 시작됐다"며 아버지와 갔던 클래식 자동차쇼를 회상했다. "아버지가 7세인 나를 자동차쇼에 데려가기 시작했고, 11세 때 오래된 트럭을 처음으로 복원하기도 했다"며 자신이 골동품 '수집광'이 된 배경을 밝혔다.


그는 그 시절의 요리책도 수집하고 있다. 그 레시피로 그때를 복원한 나만의 부엌에서 음식을 해먹는 것이 취미다. 블레이즈는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요리책으로 그 당시 디저트를 만들며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블레이즈는 50년대라는 시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50년대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시기"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막 벗어났고 새로운 기술들이 폭발했다"고 말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희망이 싹트던 시기였다. 그는 "우주 경쟁의 시기였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여 가정에 보급됐다"고 덧붙였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