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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폼 나는 청년'에서 '초라한 중년'으로...이정재가 일군 반전

by한국일보

아시아 배우 최초 美 에미상 남우주연상

"쌍문동 기훈 집 본 뒤 옛날 생각나"

고교 등록금 제때 못 낸 소년

'청춘의 심장' 거쳐 '암살'서 노인 연기까지

대사 없던 '모래시계' 재희의 반전

"성실, 꾸준함이 새로운 전성기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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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정재, 와우!"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 이정재는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할리우드 스타 엘르 패닝은 잠시 후 무대로 향한 이정재의 두 손을 꼭잡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무대에 오른 이정재는 "생큐 소 머치"를 두 번 연달아 했다. 올해로 데뷔 30년 차를 맞은 베테랑 배우의 목소리엔 떨림이 가득했다. 이정재는 수상 소감 마지막을 한국어로 힘줘 말한 뒤 오른손으로 트로피를 살짝 들어올렸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과 가족, 친구 그리고 소중한 팬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미국 NBC를 통해 생중계된 화면엔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이 웃으며 연인(이정재)을 바라보고 손뼉을 치는 모습이 잡혔다.


이정재(49)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자본주의의 낭떠러지로 내몰린 소시민의 무력하면서도 절박한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그는 땀자국으로 꼬질꼬질해진 얼굴로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혀로 달고나를 치열하게 핥았다. 그런 그의 머리는 덥수룩했고, 눈가엔 주름이 그득했다. 스크린에서 늘 폼났던 이정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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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은 파업에 참여해 회사에서 잘린 뒤 치킨집을 열었다가 홀딱 말아먹는다. 이혼 후 양육권까지 뺏긴 그는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어머니의 체크카드를 훔쳐 경마장으로 향한다. 이정재는 기훈의 추락과 몰염치에 집중했다. 그러고 나서 촬영할 때 심한 알레르기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흔적을 분장으로 가리지 않은 채 카메라 앞에 섰다. 기훈의 얼굴이 늘 불콰한 술기운이 맴도는 것처럼 보여 얼빠진 듯하면서도 지질함이 부각됐던 배경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정재는 빚더미에 앉은 도박중독자 성기훈을 비통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냈다"며 "영웅 혹은 악당, 바보나 사기꾼 등 평면적 캐릭터로 연기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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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로 연예 활동을 시작한 이정재는 CF와 화보 속에서만 살지 않았다. 영화 '젊은 남자'와 드라마 '느낌'(1994)으로 여름 같은 청춘의 상징으로 박제될 줄 알았던 X세대 스타는 삶의 길목 곳곳에서 배우로 제 몫을 했다. 비쩍 말라 등뼈가 훤히 보이는 노인(영화 '암살'·2015)을 연기한 그는 초라한 중년('오징어게임')의 현실도 마주했다. 매끈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빛을 봤던 배우의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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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 구찌의 글로벌 홍보대사인 이정재는 극에서 주어진 가난과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 않았다. 소년 이정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당시 그는 '오징어 게임' 속 기훈의 쌍문동 집보다 더 작은 곳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는 등록금을 제때 못내 교실 앞으로 불려가 맞기도 했다. 졸업 후 이정재는 한 달에 38만 원을 받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원비(인테리어)를 벌었다. 2000년대엔 느닷없이 사업에 뛰어들어 5년 넘게 방황했다. 그 후 15년여의 세월이 훌쩍 흘러 2020년, '오징어 게임' 관계자에 따르면 이정재는 쌍문동에서 첫 촬영을 할 때 기훈 어머니의 일터였던 시장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정재는 올 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기훈의 집에 간 뒤)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며 "자연스럽게 기훈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침을 겪은 이정재는 기훈과 자연스럽게 연결됐고, 배역의 쪼그라든 정서의 디테일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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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청춘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정재는 연기파로 주목받는 배우는 아니었다. 180cm의 큰 키에 날렵한 근육질의 청년은 드라마 '모래시계'(1995)에서 혜린(고현정)의 듬직한 보디가드로 여심을 단숨에 사로잡았지만, 도통 말하지 못했다. 이정재의 연기가 채 익지 않았다고 판단한 PD가 그의 대사를 대부분 빼버린 탓이다. 그렇게 말을 잃은 배우는 제대 후 영화 '태양은 없다'(1999)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탔지만 시련은 계속됐다. 그는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10여 년 동안 침체기를 보냈다. 그때 이정재는 작품 속 비중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하녀'(2010)에서 전도연의 상대역으로 귀족의 서늘함을 보여준 그는 '도둑들'(2012)에선 야비한 사기꾼으로 변신해 재미를 줬다. 다양한 캐릭터로 연기에 살을 찌운 이정재는 '관상'(2013)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아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그는 얼굴이 아닌 중저음의 묵직한 목소리로 관객을 압도했다. 촬영 때마다 두 시간 전부터 일찌감치 발성 예열을 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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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밖에선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는 배역을 위해 매번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암살'에서 변절자 염석진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이틀 동안 잠을 안자고 촬영을 한 건 익히 알려진 일화다. 이정재가 한류의 중심에 우뚝 선 배경이다.


이정재의 성실함은 그가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게 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정재는 2012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작품을 했다"며 "그 성실함으로 다양한 기회를 스스로 얻었고 그렇게 작품이 쌓이면서 다양한 얼굴로 새롭게 조명받은 것"이라고 평했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정재는 무명 개그맨, 목사, 청부살인업자 등 다양한 캐릭터를 찾아가며 같은 역으로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았다"며 "사극부터 스릴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며 배우로서 신선함을 유지한 게 뒤늦게 또 전성기를 맞은 비결"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