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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17세에 대학 간 ‘과학 천재’가 화물차 모는 이유

by한국일보

고2 때 과학 영재로 지바대 조기 합격

연구자 월급 초봉 150만 원... 생활 어려워

연구 포기, 8년 전 트레일러 운전기사 돼

한국일보

24년 전 일본 최초 '물리 영재'로 대학에 조기 합격했던 사토 가즈토시씨는 8년 전부터 트레일러 운전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전국 최초 17세 조기 합격!”


1998년 1월, 당시 고교 2학년이던 사토 가즈토시(현재 41세)씨는 자신의 합격 소식이 실린 신문 기사를 보며 기뻐했다. ‘과학기술의 최첨단 시대를 여는 인재를 키우고 싶다’며 국립 지바대학이 일본 최초로 도입한 '과학 인재 조기입학 프로그램'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이다. 과학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17세 이상 학생에게 대학 입학 자격을 인정하는 이 제도는 지바대가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조기입학 제도를 권했던 당시 담임 교사는 “사토군은 호기심이 많고 의문이 있으면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특히 빛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서 연구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중학교 때부터 과학과 수학의 재미에 푹 빠졌던 그 역시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요구하는 일반 입시와 달리 과학 영재를 찾는 조기입학 제도가 특별한 기회로 여겨졌다.


언론의 관심이 컸던 만큼 지바대도 3명의 조기입학 합격생을 특별히 지원했다. 전용 자습실이 마련됐고, 담당 대학원생이 학업과 생활 상담을 해줬다. 여름에는 미국 대학에서 한 달간 연수도 받았다.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미야기현에 있는 재단법인 연구기관에 일자리를 얻었다. ‘일하면서 박사 논문도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연구자의 길은 순탄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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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고교 2년생이 남보다 먼저 대학에 조기입학할 수 있는 제도인 '지바대 선진과학 프로그램'은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사진은 해당 프로그램 홍보 전단의 표지

하지만 초봉을 받은 사토씨는 눈을 의심했다. 실수령액이 15만 엔에 불과했다. 취직 전 결혼해 딸도 있었다. 학자금 상환과 아파트 월세, 출퇴근 차량 유지비 등을 고려하면 너무 부족했다. 일은 보람 있었지만 먹고살 수 없는 현실이 괴로웠다. 보수가 나은 기업 연구직으로 이직하려 했지만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한 신칸센 운임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고용상태도 불안정했다.


힘들어하던 그는 결국 2013년 운송회사에 취직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학에서 그를 지도했던 교원은 “조금만 더 버텼으면 길이 열렸을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일본에서는 1, 2년의 단기간 결과를 낼 수 있는 실험을 하지 않으면 연구직을 계속할 수 없다. 사토는 더 넓은 세계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척박한 연구 현실을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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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신문 사회부 ‘그로부터 취재반’이 최근 출판한 ‘인생은 그래도 계속된다’의 표지. 과거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졌던 사람들의 현재 이야기가 실렸다.

트레일러 운전을 한 지 이제 8년째. 사토씨는 정규직 운전사로 가족 3명이 생활할 수 있는 월급을 받는다. 4년 전엔 단독주택도 구입했다. 연구의 길에 미련은 없지만 아직도 물리학을 좋아한다는 사토씨. “브레이크와 ‘파스칼의 원리’라든지, 자동차 운전은 꽤 물리와 관계가 있다”며 활짝 웃는다. 그의 이야기는 요미우리신문 ‘그로부터 취재반’이 최근 출판한 ‘인생은 그래도 계속된다’에 실렸다. ‘그로부터 취재반’은 요미우리신문 사회부 기자들이 과거 신문에서 화제가 됐던 사람을 찾아가 취재해 현재의 모습을 전하는 연재물이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