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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반갑다! 7년 만에 열린 흘림골... 아랫마을 미천골도 울긋불긋

by한국일보

<177> 양양 서면 설악산 흘림골과 미천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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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개방한 설악산 흘림골 코스의 등선대에 오른 탐방객들이 바위 절경과 어우러진 단풍을 즐기고 있다. 지난 13일 풍경이다.

강원 양양에서 서면은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지역이다. 전체가 산악이다. 그것도 보통 산이 아니라 가을철 가장 빼어난 단풍을 자랑하는 설악산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 장대 터널을 통과해 동해로 내달리던 차량도 이때만큼은 꼬불꼬불한 고갯길에서 주춤거린다. 골짜기마다 단풍만큼 화사한 복장을 한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위 절경과 어우러진 흘림골 단풍

강원 인제에서 한계령을 넘으면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지구다. 남설악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는 정상까지 오르는 가장 짧고 힘든 대청봉 코스와 상대적으로 쉬운 용소폭포 코스 2개의 탐방로가 시작된다. 여기에 올해 7년 만에 개방하는 흘림골 코스가 추가됐다. 용소폭포 코스 상부와 연결돼 주전골 단풍까지 즐길 수 있다.


한계령휴게소와 오색지구 사이 도로변에서 시작하는 흘림골 코스는 20년간 자연휴식년제로 묶였다가 2004년에 개방한 바 있다. 그러나 2015년 낙석 사고가 발생해 7년간 통제됐다가 일부 탐방로를 우회하고, 안전시설을 보강해 지난달 재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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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등반객들이 설악산 흘림골 탐방로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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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 탐방로의 여심폭포 부근. 높이 솟은 고사목 뒤로 칠형제봉의 기암괴석이 보인다.

지난 13일 오전 흘림골 탐방지원센터 입구에는 평일임에도 등산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탐방로로 접어들자 바로 가파른 계단이다. 용소폭포 코스와 만나는 용소삼거리까지 3.6㎞ 중 등선대(1.2㎞ 지점)까지는 내내 오르막이고, 이후에는 계속 내리막이다. 코스가 짧아도 설악은 악산이다. 설악산 탐방로 중에서는 중·하 수준이지만, 경사가 심하고 계단이 많아 결코 가볍게 다녀올 코스가 아니다. 기본 장비와 함께 마음의 준비도 필수다.


시작부터 탐방로 오른편으로 우람한 바위봉우리가 동행한다. 일곱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칠형제봉’이다. 늘씬한 두 다리 사이로 물줄기가 길게 흘러내리는 모양의 ‘여심폭포’에 작은 전망대가 있다. 한층 우람해진 칠형제봉과 비슷한 높이로 고사목이 우뚝 서 있다. 깊고 험준한 산속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조금만 더 오르면 산마루에 닿는데, 전망대 역할을 하는 등선대는 탐방로에서 약 200m 벗어나 있다. 길은 더 가파르고 일부 구간은 교행이 불가능해 오르내릴 때 사람 정체를 빚는다.


해발 1,002m 등선대는 깊은 산중에 불쑥 솟아오른 바위봉우리다.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여 설악의 비경이 펼쳐지는데, 그중에서도 서북 방향 한계령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압권이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도로를 올라 잠시 쉬어가던 한계령휴게소가 한 발짝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뒤편으로 장엄한 산줄기가 감싸고 있다. 안내판을 보니 왼쪽부터 안산(1,430m), 귀때기청봉(1,578m), 끝청(1,610m), 대청봉(1,708m)이 파노라마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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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흘림골 등선대 부근 바위봉우리 사이로 단풍이 흘러내리고 있다. 뒤편 고갯마루의 한계령휴게소 뒤로 설악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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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 등선대 전망대에서 탐방객들이 단풍이 물든 바위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탐방객에 비해 전망대가 좁아 사진을 찍은 후에는 바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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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대에서 주전골로 내려오는 탐방로 일부 구간엔 낙석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망으로 터널을 만들었다.

정상 능선의 단풍은 이미 한풀 꺾였지만 한계령 앞쪽 산줄기와 골짜기에는 이제 막 울긋불긋 가을 색이 섞여 있다. 희고 우람한 바위봉우리와 어우러진 단풍이 장쾌하고 웅장하다.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다.


등선대부터 용소삼거리까지는 한두 군데 짧은 오르막이 있지만 대체로 내리막이다. 가파르기가 오를 때 못지않다. 바위에 바짝 붙은 일부 구간에는 낙석을 우려해 철망으로 터널을 만들었다. 길은 꼭대기에서 본 기암과 그 사이로 파고든 계곡을 따라 휘어진다. 등선폭포와 십이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를 쏟아낸다. 물가의 고운 단풍이 눈길을 끌지만, 단풍보다는 기기묘묘한 바위봉우리가 압도하는 모양새다.


간식을 먹으며 쉬어가는 게 등산의 묘미인데, 흘림골 탐방로에는 쉴 공간이 부족하다. 등선대 꼭대기 전망대에도 끊임없이 등산객이 밀려드니 여유 있게 쉬는 건 불가능하다. 그림 같은 풍광에 탄성을 쏟아내는 것도 잠시, ‘인증사진’을 찍은 후에는 뒷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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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 등선대 아래 등선폭포 부근에서 탐방객들이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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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에서 주전골로 내려오는 탐방로는 기기묘묘한 바위봉우리 사이를 걷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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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내려오는 탐방로 주변 단풍나무가 빨갛게 물이 들었다.

흘림골 코스는 용소삼거리에서 끝나지만 차를 댄 오색약수터 탐방지원센터까지는 2.7㎞ 더 걸어야 한다. 용소폭포 코스의 일부로 ‘주전골’로 불린다. 삼거리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용소폭포와 주전바위는 보고 와야 아쉬움이 덜하다. 용소폭포는 이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다. 넓은 암반에 얇게 펴진 물줄기가 한 군데로 모여 깊은 웅덩이로 떨어진다. 맑은 옥색 물빛이 커다란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부근에 시루떡을 층층이 쌓은 듯한 퇴적암층이 있다. 누구에게는 동전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 ‘주전(鑄錢)바위’로 불렸고, 계곡 명칭도 주전골이 됐다.


흘림골 하류에 해당하는 주전골은 계곡 폭이 한결 넓고, 탐방로도 대체로 순하다. 대신 계곡 좌우와 전후로 펼쳐지는 바위봉우리는 아래서 올려다보는 형국이라 한층 아찔하고 웅장하다. 설악산 정상에 첫눈 소식이 전해진 지 꽤 지났지만, 주전골 단풍은 이번 주 절정에 이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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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 아래 주전골 상류의 용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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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흘림골 아래 주전골은 아직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주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오색약수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하는 용소폭포 코스의 주전골은 탐방 인원 제한이 없다.

흘림골 탐방로는 혼잡을 피하고 안전을 위해 하루 5,0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서 예약하면 QR코드를 발급한다. 탐방로 입구에서 확인 절차를 거쳐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시간당 500~1,000명씩 입장시키고 있다. 흘림골 입구에는 주차장이 없다. 오색지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택시(대당 1만5,000원)로 이동해야 한다.

천년의 절터, 천년의 단풍 미천골자연휴양림

인제에서 조침령을 넘으면 양양 서면 해담마을이다. 마을 위쪽에 미천골자연휴양림이 있다. 단풍이 곱기로는 설악산 어디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도로에서 휴양림이 위치한 계곡으로 들어서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 자연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간간이 들리는 차량 소음도 끊어지니 완전히 딴 세상이다. 맑은 공기가 더욱 달콤하게 느껴진다.


미천골휴양림은 다른 휴양림에 비하면 범위가 넓다. 매표소에서 약 6㎞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숲속의 집과 야영장이 흩어져 있다. 오래전부터 이 골짜기에 터를 잡은 민가가 운영하는 펜션도 서너 채 있다. 잘 포장된 길만 걸어도 깊은 골짜기의 눅진한 단풍을 한껏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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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자연휴양림 탐방로는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바위 사이로 하얗게 부서지는 물줄기가 단풍과 어우러진다. 지난 14일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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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선림원지에는 석탑과 석등, 탑비와 부도 등이 보물로 남아 있다. 선림원은 창건 후 오래 가지 못해 폐사된 후 1,000년 넘게 방치돼 온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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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하류 선림원지의 삼층석탑. 뒤편 단풍은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 14일 풍경이다.

4개의 보물을 간진한 절터가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매표소에서 약 800m를 걸으면 선림원터가 있다. 서기 804년경 창건했다가 고려 말에 폐사된 절인데, 삼층석탑과 석등, 사찰을 대대적으로 중창한 홍각선사의 탑비와 부도가 폐사지를 지키고 있다. 석탑 뒤에는 정면 3칸, 측면 4칸의 금당 건물 주춧돌도 온전하게 남아 있다. 1980년대 동국대학교 조사단의 발굴 결과 선림원은 합천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 등이 창건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중창 후 얼마 되지 않아 태풍과 대홍수로 폐사됐고, 다시는 본모습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각도 사라지고 스님도 없는 절터에 청아한 물소리와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미천(米川)골이라는 명칭도 큰 사찰이었던 선림원에서 흘려보낸 쌀 씻은 물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그러고 보면 계곡물이 쌀뜨물처럼 약간 흰빛을 띠는 듯하다. 오랜 세월 희고 매끄럽게 닳은 바위가 훤히 비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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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미천골 상직폭포 앞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계곡을 걷는 내내 시원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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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미천골 상직폭포 주변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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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계곡 중간쯤에 '물망초'라 새긴 바위가 있다. 대장간 청년과 약수터를 찾은 소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휴양림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상직폭포가 있다. 높이가 무려 70m에 이른다는데, 하부 10m가량을 제외하면 울창한 숲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물줄기 주변 단풍이 유난히 곱다. 휴양림 탐방객은 대개 이곳에서 발길을 돌리는데, 일부는 약 5km 상류의 불바라기 약수터까지 목표로 잡는다. 산림관리도로여서 걷기에 순탄하고,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계곡 주변 단풍이 상류로 올라가면서 점점 짙고 화려해지기 때문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만산홍엽이다.


흘림골 단풍이 기암괴석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이라면, 미천골 단풍은 자체로 이 가을의 주인공이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엽록소를 쏙 빼고 본연의 색깔을 드러내는 활엽수 위주의 숲이기 때문이다. 단풍이라고 붉기만 한 게 아니라 온갖 색의 대향연이다. 산등성이에서 계곡으로 내려갈수록 물감을 몇 번이나 덧칠한 것처럼 농도가 짙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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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미천골 상류로 갈수록 단풍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왼쪽 임도를 따라가면 불바라기 폭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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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미천골 상류로 갈수록 단풍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런 황홀경 속에 불바라기 약수터에 도착하면 다시 한 번 시원한 물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다. 약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폭포수가 2단으로 쏟아진다. 왼쪽은 황룡폭포, 오른쪽은 청룡폭포다. 불바라기 약수는 황룡폭포 상류에서 연결한 호스를 통해 졸졸 떨어진다. 주변 바위도 누렇게 물들었다. 불바라기라는 명칭도 주변이 온통 붉다는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 강씨 성을 가진 주민이 발견했는데, 이 물로 밥을 지어 부모님의 피부병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몸에 좋을지는 몰라도 물맛이 좋다고 하기는 힘들다. 철분이 많고 나트륨 성분도 함유하고 있어 조금 비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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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바라기 약수를 사이에 두고 황룡폭포(왼쪽)와 청룡폭포 물줄기가 계곡으로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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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불바라기 약수 주변 바위가 온통 누렇게 변해 있다. 약수는 황룡폭포 상부에서 연결한 호스를 통해 졸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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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바라기 폭포 오른쪽의 청룡폭포. 바위 절벽에서 2단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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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서면 여행 지도. 그래픽=김문중 선임기자

미천골자연휴양림의 숙박(또는 야영)시설을 예약하면 상직폭포 근처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당일 방문객(입장료 1,000원)은 매표소 부근에 차를 대고 걸어야 한다. 불바라기 약수까지는 부담스러운 거리, 상직폭포까지만 걸어도 깊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 14일 계곡 하류는 아직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주와 다음 주 절정의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천골휴양림은 서울양양고속도로 서양양IC에서 가깝다. 조침령이나 구룡령을 넘어 인제IC를 이용하면 설악산 자락의 눈부신 단풍을 드라이브로 즐길 수 있다.


양양=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