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쓰레기’ 한국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

[자동차]by 헤럴드경제

박로명의 패션톡톡

쓰레기 활용한 ‘업사이클링’ 패션, 국내선 걸음마 단계

대다수가 스타트업…대기업은 사회 공헌 차원 머물러

“윤리 소비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바뀌어야”

‘감성 쓰레기’ 한국 뿌리내리지 못하

프라이탁 가방 [프라이탁 공식 홈페이지]

버려진 트럭 덮개를 잘라 가방 몸통을 만든다. 폐차된 자동차 안전벨트로 어깨끈을 달고, 폐자전거 고무 튜브로 가방 모서리를 마감한다. 얼룩덜룩한 쓰레기를 모아 만든 이 가방은 색도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그 덕에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나에 10~100만원 이르는 가격에도 ‘명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년 7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의 얘기다.


프라이탁은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업사이클링이란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링’(recycling)의 합성어로, 버려진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고민하자’는 긍정적 취지로 시작됐다. 최근 친환경ㆍ윤리 소비가 주목받으면서 국내에서도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내 브랜드는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업사이클링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경기연구원의 ‘폐기물의 재탄생 업사이클 산업 육성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업사이클 브랜드는 100여개로 집계된다. 대다수가 4년 미만의 신생기업으로, 연 매출 5000만원 미만, 기업주 연령 20∼30대의 1∼2인 스타트업 기업이다. 시장 규모는 40억원 미만으로, 재활용제품 매출 규모(5조원)의 0.01% 가량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업사이클링 브랜드는 수작업에 기초한 소량생산 방식을 고수한다. 숙련된 장인의 손에서 ‘재료 수거→소재 세척ㆍ손질→디자인→제품 생산’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제작 과정이 까다롭다보니 기성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오직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승부하거나,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를 위한 제반 조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대다수 업체들은 소재 수급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아직 국내에서는 재활용보다 매립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싸다 보니 쓰레기가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채 함부로 버려지기 때문이다. 폐페트병으로 만든 가방을 판매하는 ‘플리츠마마’의 왕종미 대표는 “국내에서 배출돼 재활용 공정을 거치는 페트병은 품질이 좋지 않아 가방을 만드는 재생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해외 페트병을 수입해 만든 재생 원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가격이 합성 원사보다 2배가량 비싸다”고 했다. 양질의 재활용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감성 쓰레기’ 한국 뿌리내리지 못하

코오롱FnC 래코드 [래코드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은 다를까. 국내 대기업 중에는 코오롱FnC가 2012년 업사이클 브랜드 ‘래;코드’를 선보였다. 자사 브랜드 중 3년이 지난 재고 의류들을 소각하는 대신 못 팔게된 바지와 재킷 등을 해체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탄생시킨다. 대기업이 앞장서 연간 40억원가량 드는 의류 폐기물 소각비용을 아끼고, 친환경 제품에 대한 가치를 전파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브랜드의 지속성은 우려스려운 부분이 있다. 100% 수작업으로 생산되는 탓에 가격이 티셔츠 10만원대부터 아우터 70만원대까지 다소 높기 때문이다. 제품의 희소성은 있지만 새 제품보다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사야 하는 이유를 소비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제품 경쟁력 강화보다는 브랜드 홍보, 사회 공헌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업사이클링을 하면 ‘돈이 더 많이 든다’는 인식이 있어 쉽게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매출 증대보다는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업사이클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해외에서는 친환경 이미지만 심기에 급급한 일부 기업들의 행태를 ‘그린 워싱’이라 부른다.


국내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날개를 활짝 펴지 못하는데는 소비자 인식도 한몫한다. 업사이클링 제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북미나 유럽 소비자에 비해 국내 소비자는 ‘가성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래코드는 해외 소비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아 수출 비중이 70%에 이른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해외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중소 브랜드도 해외 진출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업사이클링의 성공 여부는 소비자의 욕구와 사회적 가치가 맞물릴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다효 자원순환연대 연구원은 “국내에서 업사이클링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년 전”이라며 “수요가 증가해야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데 현재는 사회공헌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2019.03.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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