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호법’ 비웃듯 음주운전 장면 내보낸 공영방송
술 함께 마신 뒤 대리운전 없이 남자 주인공 차로 태워줘
“가족들과 함께 보는 드라마인데, 범죄 조장하는 것이냐” 시청자 게시판 부글
[KBS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지난 17일 오후 방송분에서 장소영(고나은)이 술을 마시는 장면 캡처] |
KBS 공영방송 드라마에서 극중 인물이 술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하는 장면을 내보내 논란이다. 공영방송이 음주운전 장면을 내보낸 건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만들어지는 등 음주운전을 강하게 처벌하려는 사회적 움직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문제의 장면은 KBS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지난 17일 오후 방송분에서 등장한다. 극중 장소영(고나은) 친구들과 술집을 나가려는 도중, 혼자서 술집에서 술 마시는 왕대륙(이장우) 발견해 합석한다. 그는 왕대륙에게 술을 따르고 자신도 술을 받아 건배를 한다. 이후 왕대륙이 만취하자, 장소영은 직접 운전해 그를 태워준다.
시청자들은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킬 공영방송이 되레 음주운전을 조장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장소영이 술을 원샷을 하거나 만취하는 장면은 방송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장소영이 술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린 장면이 나왔고, 남주인공이 따르는 술잔을 받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에 ‘술을 마셨다’는 상황이 충분히 전달됐다는 게 시청자들의 주된 의견이다.
[KBS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지난 17일 오후 방송분에서 장소영(고나은)이 차를 운전하는 장면 캡처] |
시청자 게시판에는 다수의 시청자가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역행한다며 제작진의 사과를 요구했다. 한 시청자는 “요즘 음주운전의 형이 강화되고 살인행위로까지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마당에 공영방송에서 버젓이 음주운전을 방영한다. 방송통신심의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며 “가족이 함께 하는 주말 드라마가 이렇게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영하고 있는데 아무런 제재 조치가 없다는 것에 대해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다른 시청자 역시 “왕대륙하고 같이 술까지 마신 사람이 음주운전하는 걸 너무 당당하게 방송한다”며 “애들이랑 같이 보는데 음주운전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할 말이 없다”는 글을 올렸다.
시청자들의 문제제기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변화 가운데서 등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음주운전 단속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경우 법정형을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높이는 ‘윤창호법’이 만들어져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또 음주운전 단속기준 혈중알코올농도를 현행 0.05%에서 0.03%로 강화한 ‘제2 윤창호법’도 오는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일각에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공영방송이 따라잡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일선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음주단속을 강화하도록 어렵게 법이 개정됐고 음주단속을 하고 있는데 방송에서 음주운전 하는 장면이 나오니 시청자들이 바로 의아함을 느낀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이 음주운전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도 방송, 언론에서 음주운전을 예방할 수 있게 솔선수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