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파이어] 1900년 4월, 우리 회사는 하루 8시간 근무하기로 했다

[장필수 기자의 인스파이어]


하루 8시간 근무

근무 시간에 따른 연금 지급

유급휴가, 산재보상 지원

혈연, 종파, 정치 차별 금지

3년 이상 근무자 퇴직금 지원


독일의 한 제조 기업 정관(定款) 중 일부다. 기업을 소유한 재단은 1896년, 벌어들인 이윤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했고, 1900년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재단 정관을 완성했다. 1990년이 아니다. 1900년이다. 백 년이 훌쩍 지나, 지금의 상식을 갖고 살펴봐도 눈에 거슬리는 기준이 없다.


다만, 이 정관에 떳떳할 수 있는 우리나라 기업은 몇이나 될까. 공공기관과 금융권은 혈연, 학연, 지연, 성별을 따져가며 채용 비리를 일삼다 철퇴를 맞았다. 연금은 바라지도 않는다. 산재보상과 퇴직금을 놓고 노동자와 사업자가 벌이는 법적 다툼은 해묵은 이슈다.


2018년 7월. 우리는 하루 8시간(주 40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한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도입 전 그나마 여유롭다는 대기업에서부터 말이 많았다. 업종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견 타당하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논의를 시작하기 118년 전, 1900년부터 하루 8시간 근무 정착시킨 기업이 있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한강의 기적’을 부르짖었던 우리는 정작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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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버코헨에 있는 자이스 본사. 자이스의 성장 가능성은 매출, 영업이익이 아니다. 자이스의 역사, 철학 그리고 문화에 있다.

이 기업은 1846년 설립된 광학 기업 자이스(ZEISS). 기업명 앞에는 ‘독일의 자존심’, ‘국민 기업’과 같은 묵직한 수식어가 곧잘 붙는다. 172년간 광학 한 분야만을 연구해온 데다, 독일 분단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어서다. 자이스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서독 오버코헨(Oberkochen) 자이스와 동독 예나(Jena) 자이스로 강제 분할됐다가 1991년 통합됐다.


‘이런 회사 우리나라에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독일 오버코헨으로 직접 찾아갔다. 자이스 경영철학과 기업문화를 알아보고자 입사한 지 1년이 안 된 신입사원부터 35년 근무했던 퇴직자까지 총 4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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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전ㆍ현직 자이스 직원들. 왼쪽부터 신입사원 Alina, 30년 근속 후 퇴직한 Wener, 비전 사업부 글로벌 마케팅 총책임자 Rolf , IMT(Industial Materials Technology) 사업부 Roland. 대표이사나 PR 담당자가 아닌 직원들에게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영원한 기업을 위한 선택


“우리 회사는 특별한 문화가 있어요. 우리 기업은 일반적인 주식회사가 아닙니다. 재단이 소유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래서 회사의 목표가 돈이 아니에요. 돈을 최대한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회사가 직원이 굉장히 중요한 존재임을 알고 많은 지원을 해주려고 한다는 거죠.” 1986년 입사해 IMT 사업부에 근무 중인 롤랜드(Roland)씨의 말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자이스 설립자 칼 자이스(Carl Zeiss)와 함께 공동경영자였던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 박사는 칼 자이스 사후 1년 뒤인 1889년 칼 자이스 재단을 설립했다. 아베 박사는 설립자의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을 설득해 회사 지분을 물려받았고 거기다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까지 모두 털어 재단에 출자했다. 그렇게 자이스는 창업주 사망 직후 개인 기업에서 재단 법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모든 자이스 공장의 소유주 또한 재단이 되도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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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스 설립자 칼 자이스(오른쪽)과 동업자 에른스트 아베(왼쪽). 두 사람의 정신은 자이스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녹아있다. 주입해서가 아니라, 존경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영원한 기업’을 위해서였다. 오랜 시간 여러 세대를 거쳐 꾸준한 연구ㆍ개발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려면, ‘돈’이라는 찰나의 유혹이 회사를 제 맘대로 휘두를 수 없도록 규정해야 했다. 개인 소유 기업은 여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2세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을 일삼다 손가락질 받는 몇몇 오너 일가의 모습과 대비된다.


과감한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아베 박사의 개인적인 성품 영향도 컸다. 그는 경영자이기 전에 오랜 기간 예나 대학 교수이자 과학자였다. 학문에 대한 열정도 커 평생에 걸쳐 많은 재산을 예나 대학에 기부했다. 두뇌, 즉 인재에 대한 집착도 강했다. 기술집약형 기업은 사람이 전부다. 오랜 기간 재단 정관도 직접 챙겼다는 아베. 정관에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자이스는 전 직원 중 16%가 연구 개발 인력이고 총 수익 중 10%를 연구 개발에 재투자한다.


“자이스를 떠난다는 건 동종 경쟁업체로 간다는 게 아니라, 이 산업 자체를 떠나는 겁니다.” 임직원들이 보여주는 자부심은 달리 보면 재단 창립자가 남긴 유산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다.


#. We make it visible


우리가 그나마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자이스 제품은 비전 사업부에서 생산하는 안경 렌즈와 카메라 렌즈 정도다. 하지만, 이외에도 ‘보는 것’과 관련된 많은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일례로 휴대폰에 들어가는 마이크로칩.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그 마이크로칩은 자이스의 반도체 기술로 만들어진다. 전자현미경, 생명과학, 산업용 금속 정밀 측정 사업 등도 주력 사업이다.


본업인 현미경 제조 외에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자이스의 슬로건은 ‘We make it visible’이다. 기업 철학에 의거해 ‘지금까지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과학과 기술’로 의역할 수 있다. 광학에서 과학을 개척해 인간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고자 하는 목표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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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스에서 과거 제조한 현미경. 예나 자이스가 눈에 띈다. 자이스 현미경 사용자 중 노벨상 수상자는 3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중 로베르트 코흐는 자이스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슬로건 주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기본적으로 아주 작은 것을 봐야 할 때 우리는 현미경으로 그것을 관찰할 수 있죠. 별이나 행성처럼 멀리 있는 것을 보려면 플라네타리움(천체투영기)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안경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사물을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죠. 그래서 We make it visible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여주는 단 하나의 문장입니다. 저는 이걸 의무감이라기보단 책임감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자이스 비전 사업부 마케팅 총책임자 롤프(Rolf)가 말하는 슬로건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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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투영관(Planetarium)을 보는 Alina. 자이스는 1923년 세계 최초로 천체투영관을 만들었다. 최초의 달 착륙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져간 카메라도 자이스 제품이다.

기술 한계를 극복하며 얻은 수많은 ‘최초’라는 경험은 지금도 ‘하루 2건 특허 신청’이라는 신화로 이어지고 있다. 퇴직자 베너(Wener) 씨는 자이스에서 보낸 35년을 놓고 “얼룩말을 잡으려는 사자처럼, 사자에게서 도망치려는 얼룩말처럼 정말 쉼 없이 달렸다. 혁신하고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했다”며 “한계를 뛰어넘고자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창업자의 정신이 현미경에서부터 플라네타리움까지 적용돼 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베너 씨는 은퇴 후 오버코헨 인근 알렌(Aalen)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시에 자이스 광학박물관을 찾는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이스 박물관에는 베너 씨와 같은 퇴직 자원 봉사자만 7명에 달한다.


#. 우리에게 이런 순간이 올까


172년간 화려한 길만 걷진 않았다. 부침을 거듭했다. 전후 서독 오버코헨(Oberkochen) 자이스와 동독 예나(Jena) 자이스로 강제 분할되자, 두 기업은 상표권을 놓고 전 세계에서 법정 소송전을 벌였다. 독일 통일 후 합치는 과정에서는 뼈를 깎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었다. 아베 박사와 설립자 칼 자이스의 철학에 어긋나지만 살아남아야 했다. 대신, 실업자에게는 새로운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협력사 취업 등을 지원해줬고 노령 연금 배당을 정확히 지불했다. 연금 지급이 법률로 의무화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전혀 다른 두 집단을 합치는 과정은 ‘우리가 할 수 없으면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책을 번역해 삼성 내부 교육용 자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원래 하나였으나, 나라의 분단으로 갈라섰던 두 조직을 성공적으로 합친 경험은 통일을 준비해야만 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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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스 본사에서 내려다본 오버코헨 전경. 인구 8000명의 아주 작은 도시지만, 자이스로 인해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많은 도시가 됐다.

마지막으로 ‘하루 8시간 근무’와 관련한 작은 일화. 8시간 노동을 결정짓기 전인 1900년 3월, 아베 박사는 사원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했다. 하루 근로 시간인 9시간 동안 한 일을 8시간에 할 수 있는가, 혹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니오’를 선택했다. 사원 중 75% 이상이 근로 시간 단축에 찬성했다. 회사는 다음 달 1일부터 8시간 노동을 실시했다. 우리 기업에게 이런 순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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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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