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이성계가 계시받은…상이암 ‘왕의숲’서 새 희망을 품다

[여행]by 헤럴드경제

여의주 풍수·기도후 건국…‘킹메이커’ 명당

기둥 하나에 가지가 9개 연리지 ‘화백나무’

야영장 등 ‘왕의숲’ 생태휴양지로 재정비

개 훈련장·경주장 갖춘 ‘오수테마파크’도

12만그루 편백 군락 등 ‘쇄신여행지’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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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산의 청정생태 한복판에 놓인 상이암에 2021년 신축년 희망의 아침햇살이 찾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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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산 청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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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개 능선이 태극 모양으로 휘감아 모여드는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 상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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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상이암 ‘三淸洞’ 어필각과 향로봉(여의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하여, 물질 세계와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습니다. 물질은 색(色)인데, 색은 본래 없는 것이니 공입니다. 공에서 나온 것이 색이기도 하지요. 번뇌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건강하게 자연의 이치로 살아가시면 됩니다.”


상이암 대선스님은 성수산(해발 876m) ‘왕의 숲길’ 트레킹을 하는 동안 청정 생태를 호흡하며 자신의 암자로 찾은 자연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려워요 스니~임~”이라고 누군가 담임쌤에게 하듯 응석을 부리면, 대선 스님은 말씀을 보탠다.


“저기 저, 조선 태조께서 쓰신 삼성동(三淸洞) 어필각 뒤 동산 보이시죠. 기도한 후 왕이 된 곳이라 여의봉(용이 문 여의주 형세의 봉우리)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오래전 부터 마을 아이들은 향로봉이라 불렀습니다. 봄이 되면 저곳에 진달래꽃 가득 피는데, 향을 피운 것 같아서죠.”


부연 설명을 듣고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참뜻에 조금 더 접근한다. 같은 것인데 다르지만, 정치의 색이든 아이들이 묘사한 색이든 결국 같은 것. 우리 삶의 숱한 양상들이 ‘차별 없는 비움’의 상태를 지향하고, 혼란은 평온으로 나아가며, 방탄소년단이 노래하듯 삶은 계속되고(Life goes on), 코로나 망령,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도 자연인의 마음 속에 묵직하게 내려 앉는다.


성수산 꼭대기서 내려다 보면 상이암은 9개 능선-계곡이 나선처럼 이어지다가 모이는 곳에 있어, 형세로 보면 풍수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듯, 태극 모양이요, ‘용이 문 여의주 지점’이다.


왕건은 894년 큰 꿈을 가슴에 품던 17세 때, 이성계는 개혁 군부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한지 2년쯤 지난 1390년 남원 황산전투에서 왜적을 소탕한 직후, 각각 이곳을 찾아 백일기도를 하고 훗날 각각 고려, 조선을 개국하는 태조가 됐다. 그들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계시’와 관련해 왕건은 기쁨에 겨워 ‘환희담(歡喜潭)’ 음각비를 새겼고, 이성계는 ‘상이(上耳:귀에 들린 천상의 소리)’라는 암자 명칭을 부여했다.


신비스럽게도, ‘여의주 풍수’와 ‘기도후 대권’이라는 두 개의 팩트는 인과관계로 엮이어, 이곳을 ‘킹 메이커’ 최고 명당으로 만들었다. 킹도 그냥 킹이 아니라 500년 왕조의 으뜸이다.


영험한 것을 믿지 않더라도, 새해 첫 거리두기 트레킹을 임실 성수산 상이암 ‘왕의 숲’으로 잡고, 향로봉에 이르러, 숱한 능선과 계곡, 나무를 비집고 스며드는 2021년 신축년 아침 햇살을 맞으면, 최소한 심신 방역, 면역력 증진 기회를 얻고, 나아가 강한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된다. 이 부풀어 오르는 필부필부들의 희망 역시 팩트다.


더 신기한 것이 있는데, 팩트라서 안쓸 수가 없다. 용 같이 긴 울퉁불퉁 아홉개 능선이 앞다투어 모이는(九龍爭珠:구룡쟁주) 상이암에 50m 높이로 우뚝 선 화백나무(수령 120년)는 하나의 기둥에서 난 아홉개의 가지가 마치 한몸 처럼 붙어 곧게 위로 뻗어있다. 왜들 이러는지. 팩트중심주의 기자가 리얼리즘 이외의 요소를 철저히 차단하자고 마음 먹지만, 하필 또 아홉이 한몸이라니.


상이암을 중심에 둔 성수산이 우리 국민에게 주는 또하나의 축복은 매우 건강한 식생이다. 임실군은 성수산을 내년까지 국민 산림휴양지로 새롭게 단장한다. 일명 ‘왕의 숲’ 생태휴양지로, 100억원을 들여 산림레포츠시설, 야영장, 레일형 루지, 어드벤처 시설 등을 만들고, 휴양림도 친환경적으로 정비한다.


이미 구간 별로는 아침맞이길, 야자매트길 같은 아기자기한 이름의 산책로가 잘 단장돼 있고, 편백나무 힐링공간, 생태수목원도 방역수칙을 잘 지킨 트레킹족들을 반긴다.


성수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태조 이성계 기도터 상이암’ 표지판 방향 임도로 1.5㎞ 올라가면 상이암 주차장에 도달하고, 여기서 경사진 숲속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상이암에 이른다.


방문자 센터가 근사하게 들어설 성수산 초입부터 ‘왕의 숲길’ 새 단장을 위한 분주한 손길이 이어진다. 수변탐방로, 구룡천 생태연못, 편백나무숲 등을 지나는 동안 참나무, 도토리, 산뽕, 메타세콰이어, 리기다소나무, 오동, 은행나무 등을 만나는데, 편백은 무려 12만 그루가 군락을 이룬다.


숱한 국민들의 희망을 품은 돌탑무지를 수십개 지나, 상이암에 이르면, 화백나무가 신비한 자태로 우뚝 서 있고, 산신각 근처에 이 숲의 깃대종 청실배나무가 신축년 희망을 찾아온 자연인들을 내려다 본다. 이도령이 춘향의 첫날 밤에 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있던 그 청실배이다. 맛도 좋고 한방에서 독성,골염,어혈 제거 등 치료제로도 쓰인다. 언덕의 청실배나무와 경내 복판의 화백나무가 마주보며 “걱정마, 잘 될거야” 덕담하는 듯 하다. 이곳은 일제침략기 의병들의 항일 거점이기도 했다.


임실은 이같은 신년 ‘쇄신 여행’지로의 면모에 치즈 등 건강음식, 섬진강 청정생태 뿐 만 아니라, 사람과 개의 의리로도 유명하다. 초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주인을 살린 개는 실화다.


거령현(지금의 임실 오수 영천리)에 살던 김개인이 동네 잔치에 갔다가 술 취해 돌아오는 길에 상리부근 풀밭에 잠들었을 때 불이 나 화마가 김개인을 덮치려하자, 기르던 개가 개울물에 몸을 적시고 불 끄기를 반복하다 주인을 구한 뒤 숨졌다는 얘기다. 김씨는 개의 묻은 자리에 지팡이를 꽂았는데, 실제 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고려 문인 최자가 쓴 보한집(1230년)에 전한 얘기다. 이 일로 마을 이름은 개오(獒), 나무수(樹), 오수가 됐다. 시장엔 오수개 동상이 있고, 다리이름은 의견(義犬)교가 됐으며, 아이들 놀이터, 개 훈련장·경주장, 캠핑장, 철쭉연못 등을 갖춘 오수테마파크가 만들어졌다.


임실은 순우리말로 ‘그리운 임이 사는 마을’이고, 한자어(任實)로는 ‘소담스런 열매를 책임지는 곳’이다. 임실엔 어려움 속에서도 결실을 이뤄내고, 사람을 구해내는 에너지가 있다.


[자료·취재 도움 : 임실군 문화관광치즈과]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2021.01.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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