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고양이가 많은 섬, 아오시마
마을 주민보다 고양이가 더 많은 섬, 일본의 아오시마. <동물농장>에 등장해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 곳이다. 주민은 스무 명 남짓, 고양이는 수백 마리에 이른다. 고양이만 보면 반사적으로 눈과 손, 마음이 가는 내겐 천국 같았던 섬. 수많은 애묘가 여러분께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틀림없이 행복할 것!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왼쪽) 아오시마로 가는 작은 배. (오른쪽) 배라서 탑승자 명단을 적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탄 나는 여섯 번째 손님. |
고양이 섬 아오시마로 가기 위해서는 전날 마쓰야마역 앞에 숙소를 정하는 게 좋다. 열차를 타고 이요 나가하마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출발 시간이 아주 이르기 때문. 아오시마로 가는 배는 오전 8시와 오후 2시 30분 하루 두 편뿐이다. 오전에 들어가야 고양이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첫 배 시간에 맞춰 나가하마항에 도착하려면 마쓰야마역에서 출발하는 오전 6시 4분 열차를 타야 한다. 고양이들을 만나러 갈 생각에 한껏 들떠 전날 늦게 잠들었는데 오전 5시쯤 되니 눈이 번쩍 떠졌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호텔을 나섰다. 칼같이 떠나는 열차에 무사히 몸을 실었다. 열차는 조용한 마을을 벗어나 점점 깊숙한 시골 마을로 향했다. 차창 너머로 뿌연 아침 빛이 감싼 바다가 어렴풋이 보였다. 앞에 이요가 들어간 마을이 여럿 나와 몇 차례 움찔하였으나 일본의 기차는 시간을 아주 잘 지킨다. 7시 17분, 이요 나가하마에서 내렸다.
역에서 나가하마항까지는 느긋한 걸음으로 3분.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고양이 장난감을 손에 쥔 청년 넷, 얼굴에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쓰여있는 일본 아가씨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사람이 섬으로 출발했다. 물길을 가르며 힘차게 돌진한 배는 곧 아오시마에 닿았다. 항구엔 고양이 수십 마리가 마중 나와 있었다. ‘얘는 어디서 왔을까?’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항구 앞을 지키는 고양이들 |
상상을 초월하는 고양이 밀도
생김새도 무늬도 성격도 제각각인 고양이 무리 |
(왼쪽) 혀로 구석구석 핥아가며 몸단장을 하는 고양이. (오른쪽) 도시락에 관심을 보이며 머리부터 디미는 용감한 녀석! |
고양이 섬 아오시마는 작고 아담하다. 구글 지도를 확대해보니 꼭 물고기를 닮았다. 오래전에는 1000여 명의 주민이 살았지만 대부분 섬을 떠나고 그 자리를 고양이가 대신하게 되었다. 고깃 그물을 갉아먹는 쥐를 잡으려 고양이를 데려왔던 게 이렇게 번졌단다. 고양이가 많은 걸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머릿속에 ‘이런 모습이겠다.’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지만 막상 발 디딘 아오시마의 길고양이 밀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항구에 발을 디디자마자 길고양이들이 발아래로 모여들었다. 눈치 백단.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압도되어 고양이 사이에 그대로 쪼그리고 앉았다. 몇 마리 용감무쌍하고 적극적이기까지 한 고양이는 도톰한 앞발로 나와 내 가방을 톡톡 건드리며 조사했다.
일단 묵직한 짐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져간 음식의 일부를 먹어치우기로 하고 항구 앞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치킨 얹은 덮밥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밥 한 술 뜨려 하면 고양이가 허벅지를 꾹 밟고 치킨으로 돌진하는 통에 도시락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결국 서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밥을 먹었다. 귀여운 녀석들. 철모르는 강아지처럼 어찌나 졸졸 따라다니던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항구 앞에 대기실이 있었다. 여기서 먹을 걸 그랬지.
(왼쪽) 한적한 마을 풍경 (오른쪽) 곰돌이를 닮은 발바닥 |
고양이는 해치지 않는다.
(왼쪽) 신사로 가는 길, 앞장서는 고양이 안내원 (오른쪽) 아담한 신사가 몇 개 있다. |
본격 섬 탐방에 나섰다. 인적은 드물었지만 고양이가 없는 곳은 없었다. 바닷가로 이어지는 계단, 골목 사이 좁은 틈, 어부가 손질을 위해 둔 그물 사이에. 어딜 가든 고양이와 함께였다. 붙임성이 끝내주는 아오시마 고양이들은 한국에서 보아왔던 길고양이와 아주 달랐다.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은 눈빛부터, 발걸음마저 불안에 휩싸여 있지만 이곳 길고양이들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수풀을 헤치고 멀찌감치 떨어진 신사를 찾아가는 길에는 길고양이 안내원도 만났다. 어디서부터인가 따라붙은 고양이가 나란히 걸으며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신사로 안내하듯 한 걸음 앞서 나갔다. 나무를 타는 재주를 뽐내 나도 모르게 물개 박수를 쳤다.
그늘 아래 낮잠 삼매경 |
(왼쪽) 어떻게 이런 자세로 잠이 들 수 있는 걸까. (오른쪽) 깨우지 마세요. 좋은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아침에 제법 활기찬 모습을 보였던 고양이들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낮잠을 잔다. 고양이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궁둥이를 붙이고 발아래 고양이를 둔 채 잠이 들었다. 차분했던 아오시마의 오후. 섬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얼굴엔 평온함이 서려 있었다. 고양이가 사람을 해치지 않듯, 사람도 고양이를 해치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규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 섬. 아오시마는 고양이에게 낙원과 같은 곳이다. 고양이를 격하게 아끼는 내게도 마찬가지. 언젠가 한국에도 이런 곳이 생겼으면 좋겠단 상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여쁜 고양이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겠지?
꿀 같은 시간 |
* 찾아가는 방법
마쓰야마(松山)역에서 JR 요산선 (이요 나가하마 경유편) 승차, 이요 나가하마 (伊予長浜?)역 하차 후 나가하마(長浜)항까지 도보 3분
* 꼭 메모해 두어야 하는 시간표
① JR 요산선 (이요 나가하마행) : 마쓰야마역 출발 06:04
(※ 이 열차를 타야 한다. 다음 열차는 6시 58분에 출발, 8시 10분 도착하므로 첫 배를 놓친다.)
② 아오시마행 배 : 나가하마항 출발 08:00, 14:30 / 아오시마 출발 08:45, 16:15
(※ 숙식을 위한 시설이 전혀 없다. 숙박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니 마지막 배를 타고 나와야 한다.)
* 알아두면 유용한 꿀팁
슈퍼는 물론이고 그 흔한 자판기도 없다. 본인이 먹을 물과 음식, 고양이에게 줄 사료와 간식 등을 육지에서 충분히 싸가지고 가야 한다. 먹이는 정해진 장소에서만 주도록 하고 나올 때는 쓰레기를 몽땅 가지고 나온다. 주민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할 것.
* 참고하면 좋은 사이트
JR 시코쿠 노선 및 시간표 http://www.jr-shikoku.co.jp/global/kr/dia.htm
시코쿠 관광협회 http://www.shikoku.gr.jp
아오시마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