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타는 것은 옳은 일일까
코끼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고 난 뒤에도 코끼리 등에 올라탈 수 있을까 |
며칠 전 한 코끼리의 장례식 사진을 보았다. 평생 관광객을 등에 태우며 학대당한 코끼리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태국 파타야에서 수십 년간 사람들을 태워오다 현지 동물 단체에 구조되었지만 노령인데다 몸이 축날 대로 축난 상태라 쇠약해진 몸을 견디지 못해 죽고 말았다. 지난 여행길에 만났던 코끼리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인도 암베르의 코끼리들, 여전히 그대로일까?
암베르 성에 오르는 방법
웅장한 모습의 암베르성 |
암베르는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에서 11km쯤 떨어진 곳이다. 자이푸르 시내에서 허름한 로컬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30분 남짓 달리면 성 입구에 도착한다. 거대한 바위가 많아서 험준해 보이는 산 중턱에 암베르 성이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험한 지형을 이용해 적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지은 성답게 덩치가 크고 듬직하다. 삶은 호박에 우유를 섞어 놓은 듯 노르스름한 빛깔을 띠는데 섬세함과 화려함이 돋보인다.
암베르 성 꼭대기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걷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 아래서 대기 중인 코끼리를 타는 것이다. 색색으로 곱게 단장한 코끼리의 넓은 등에는 무려 성인 4명이 한꺼번에 탈 수 있다. 현지 물가에 비하면 만만치 않은 요금을 치러야 하지만, 옛 시절 왕이나 누리던 호사를 경험을 하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에게 제법 인기다. 암베르 성에 오르는 방법, 내겐 한 가지뿐이었다. 걸어가는 것. 웬만해서는 동물을 타지 않는다.
(왼쪽) 꼭대기까지 손님을 실어나른 뒤 곧바로 내려오는 코끼리 (오른쪽) 코끼리를 제멋대로 부리는 몰이꾼 |
옳은 일일까?
몰이꾼의 손에 들린 험악한 흉기 |
아주 오래전 태국의 칸차나부리에 가서 코끼리를 탔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짧은 일정의 트레킹 코스에서 코끼리를 탈 기회가 있었다. 코끼리 한 마리의 등에 무게가 제법 나가는 성인 세 사람이 올라탔다. 몰이꾼은 코끼리를 재촉해 정해진 길을 따라 정글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본능에 충실했던 코끼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배설했고 매달린 열매에 관심을 보였으며 등 위에 태운 사람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는지 가던 길을 멈춰서기도 했다.
그때 못 볼 꼴을 보고야 말았다. 코끼리가 딴짓을 할라치면 몰이꾼이 뾰족한 쇠꼬챙이로 머리를 쿡쿡 찍어댔다. 미안한 감정이나 죄책감 따위는 없는 듯 보였다. 그때 이후로 동물을 타지 않기로 했다. 물론, 타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몽골에 가서 드넓은 대지를 지나야 하는데 차는 없고 말만 있다면? 말을 타게 될 것이다. 적어도 재미 삼아 동물을 타거나 춤을 추게 하려고 학대까지 해가며 벌이는 동물 쇼 따위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끼리가 인간의 말을 따르기까지
코끼리 학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태국 북쪽 지방에서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한 끔찍한 의식을 치른다. 어린 야생 코끼리를 어미에게서 강제로 떼어낸 뒤 아기 코끼리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만한 작은 틀을 만들어 코끼리를 몰아넣는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고 때리는 일을 인정사정없이 반복해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든다. 코끼리에게 행해지는 잔혹한 학대, 파잔 의식이다. 이 과정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코끼리도 있고 정신 장애를 겪는 코끼리도 있다.
코끼리는 야생 동물이다. 야생 코끼리를 상상해 보라. 화가 치밀면 사람을 짓밟기도 하는 야성을 지닌 코끼리가 고분고분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몇 사람이 올라타도 내치지 않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코끼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코끼리를 타지 않는 것, 동물 학대로 이루어지는 공연에 눈길 주지 않는 것. 아주 작은 실천이지만 코끼리를 돕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암베르 성으로 향했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동물 쇼에 동원되고 있는 코끼리 |
코끼리가 동원되는 쇼를 보지 않는 것, 코끼리를 돕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