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하루

[여행]by 안혜연

태국 방콕의 운하마을, 방루앙에서 보낸 소중한 시간들을 끄집어냈다. 여행하는 방법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꼭 대단한 볼거리를 봐야 여행인가? 우두커니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수다 떠는 것도 여행이고 슬렁슬렁 동네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행이다. 해가 막 퍼지기 시작한 이른 아침부터 밤이 내릴 때까지, 마을을 휘젓고 다닌 일상처럼 잔잔한 여행 이야기.

상상 속 수상가옥은

물 위에 떠있는 수상가옥, 방루앙 하우스는 지난 방콕여행 중 가장 기대되는 잠자리인 동시에 가장 걱정되는 숙소였다. 상상 속 수상가옥은 이랬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어렵사리 집을 떠받치고 있는 위태로운 광경. 대번에 후줄근하고 낙후된 주변 환경이 그려졌다. 전날 밤, 찾아가는 길이 험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다 이내 잠이 들었다.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차분하고 조용한 마을 풍경.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아직은 여행자가 많지 않다.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이따금씩 여행자를 태우고 지나가는 배.

다음날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차 안으로 머리를 쑥 디밀고 집 주인이 건넨 유일한 단서, 태국어로 적힌 주소를 내밀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차를 몰았고 군말 없이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골목 끝자락에 집주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온화한 얼굴의 할머니였다. 반갑게 맞아주신 덕분에 낯선 동네가 한없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며칠간 우리 집, 방루앙 하우스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내가 머릿속에 그려 보았던 수상가옥과는 사뭇 다른 풍경.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모기가 많았던 건 함정이다.

방루앙 하우스는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발 밑에 물이 찰방찰방 흐르는 수상가옥인데, 내부는 완벽하게 손봐 말끔했다. 실내 장식과 청결에 한껏 신경 쓴 모습. 통유리 너머로 물길이 보였는데 발코니에 나가 앉아 있으면 이따금씩 여행자를 태운 배가 지나다니곤 했다. 유유자적 뱃놀이에 신이 난 여행자들을 향해 양손을 번쩍 들어 반기면 그들도 나도 웃는 얼굴이 되었다.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배를 타고 탁발하러 나온 스님.

이른 아침엔 스님이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물길을 가로질렀다. 탁발에 나선 것. 탁발은 승려들이 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수행자로서 상업적인 일에 종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탁발을 입에 풀칠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옆집 아주머니는 소박한 아침거리를 준비해 스님에게 바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을 했다. 스님은 답례로 법문을 들려주었다.

조촐한 인형극, 아티스트 하우스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왼쪽) 매일 2시, 인형극을 한다. 수요일은 쉬는 날. (오른쪽) 아티스트 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인형극. 무료다.

마을의 중심에는 아담한 커뮤니티 공간, 아티스트 하우스가 있다.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아티스트 하우스에서 조촐한 인형극이 펼쳐진다. 무심한 표정의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사람들이 주인공인 인형을 들고 벌이는 쇼다. 인도의 라마야나를 태국식으로 개작한 라마끼안을 주제로 공연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관객을 공연에 참여시켜 잔재미를 더하는데, 운이 좋으면 연기자 대신 인형을 움직이는 배우가 될 수도!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왼쪽) 카페와 상점으로 운영하는 아티스트 하우스 내부. (오른쪽) 운하를 바라보며 마시는 쌉싸름한 커피 한 잔.

아티스트 하우스 1층은 카페 겸 상점으로 꾸렸다. 그윽하고 진한 커피향에 이끌려 궁둥이를 붙여 보았다. 방콕, 도시의 복작거림에 치이다 이곳에 오니 마치 수시간 걸려 외딴 시골 마을에 닿은 것처럼 평화로웠다. 상점에는 손 가는 물건이 제법 많았다. 단연 눈에 띄는 아이템은 마을의 냄새가 짙게 밴 엽서 따위의 소소한 물건들.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운하마을 방루앙의 풍경을 담은 기념품, 자석.

어슬렁 어슬렁 동네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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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뭇한 표정으로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국수가게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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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을 푸짐하게 얹은 쌀국수. 국물이 뜨거웠지만 이열치열 맛있게 먹었다.

점심은 동네 사람들이 드나드는 국숫집에서 해결했다. 때로는 가이드북을 덮어두고 발길 닿는 대로, 감으로 식당을 고르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식당 주인은 국수를 말아주고는 내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낯선 외국인이 땀방울까지 흘려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몹시 흡족했나 보다. 투박하지만 인심을 듬뿍 담아 내준 쌀국수 한 그릇은 단돈 40밧(약 1,300원).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운하마을 방루앙,  물 위에서 보낸

(왼쪽) 꼬치구이 파는 아주머니. 즉석에서 구워 연기와 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오른쪽) 다림질을 하다가 멈추고 포즈를 취해준 세탁소 아저씨. 더워서 웃옷은 훌러덩!

왕궁, 왓 포, 왓 아룬. 방콕에서 널리 알려진 여행지에 가면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동네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수수한 볼거리를 찾아다니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마을의 빨래를 책임지는 세탁소 아저씨, 순찰하다 말고 사진 찍자며 휴대전화를 들이대는 명랑한 경찰 총각, 굳게 닫힌 사원을 부러 열어젖히며 구경시켜주는 스님을 만난다. 처음 찾은 동네가 그토록 익숙하고 사랑스럽게 다가왔던 이유, 살가운 이웃들 때문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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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에게 밥을 던지고 있는 태국 사람들.

BangLuang House

1378 Soi jaransanitwong 3, Thapra, Bangkok Yai, Bangkok, Thailand 10600

+66 (0)89-668-0808 

service@bangluanghouse.com

www.bangluanghouse.com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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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탈을 쓴 백수. 버스타고 제주여행(중앙북스) / 이지시티방콕(피그마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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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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