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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by안혜연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도심 한가운데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 우리에겐 참 낯설다. 동네에 납골당이 들어선다고 하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거세게 항의하는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지 않은가. 죽음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게, 남일처럼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지척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게 우리에겐 영 불편하고 거북하게 느껴진다.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할 것만 같았던 파리의 공동묘지는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삶과 죽음의 얄팍한 경계, 몽파르나스 묘지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몽파르나스 묘지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조각공원을 닮은, 운치 있는 무덤가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파리의 날씨는 늘 이런 식이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하늘이 파랬었다. 오늘만큼은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역시나 허튼 기대였다. 급한 대로 비를 피해 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다. 음산한 날씨, 무덤에 둘러싸여 있으면 으스스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머무는 도시적인 공간. 파리의 공동묘지들은 대체로 그랬다. 나무가 우거진 길은 메타세콰이아 길 저리 가라 할 만큼 운치 있었고 조용히 산책하기 좋았으며 무덤들은 마치 조각공원을 보는 듯 예술적이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먼저 간 남편 생각이 나서 들른 듯, 꽃 한 다발을 품에 안은 채 걷고 있었다.

 

대체로 우중충한 빛깔을 띠는 무덤가를 걷다가 산뜻한 무덤을 발견했다. 볼록하게 나온 고양이 배 위에 'Ricardo'라고 쓰여 있었다. 뉘 집 귀한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나 들여다봤더니 형형색색의 조각으로 이름난 조각가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의 작품. 퐁피두 센터 앞 스트라빈스키 분수가 바로 그녀의 솜씨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고양이는 어시스턴트로 그녀와 함께했던 리카르도를 위해 만든 무덤. 에이즈로 너무 빨리 세상을 등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만든 조각이다. 역시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고양이 모양의 무덤. 뉘 집 귀한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나 했는데 아니었군!

격렬하고 자유분방했던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Charles Pierre Baudelaire, 『여자의 일생』을 선보인 19세기 소설가 기 드 모파상 Guy de Maupassant, 개성이 강한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 Constantin Brancusi와 오십 자드킨 Ossip Zadkin, 사진작가 만 레이 Man Ray,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 등이 몽파르나스 묘지에 잠들어있다. 작가이자 사상가로 활약한 부부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와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는 죽어서도 부부, 함께 묻혔다.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왼쪽) 격렬하고 자유분방했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무덤 (오른쪽)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이 잠든 곳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사진작가 만 레이의 묘

등골이 오싹해지는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산책 중인 사람들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원하는 무덤을 찾아가려면 이 안내판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파리의 공동묘지들은 대체로 무섭거나 을씨년스럽지 않은데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세계의 오싹한 여행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지하의 거대 공동묘지인 카타콤. 해가 들지 않는 지하에 있어서 실제로 서늘하기도 하지만 유골들이 장작처럼 빼곡하게 쌓인 풍경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좁은 터널이 수 킬로미터에 이른다. 유령이 불쑥 튀어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한 공간.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지하 공동묘지로 내려가는 길

한때 파리 중심부에는 엄청난 슬럼가가 형성돼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대거 몰리면서 인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주택 밀집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지만 도시 기반 시설은 한없이 취약하기만 했다. 위생에 대한 개념이 전무한 상태여서 오물이 넘쳐 흘렀고 전염병이 나돌았다. 이러한 환경 탓에 많은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고 또 묻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더 큰 문제는 묘지에 높이 쌓인 시체들이 썩어가면서 발생했다. 비가 올 때마다 시체더미에서 나온 병균들이 흙과 지하수로 스며들었다. 우물을 쓰던 때였는데 독극물을 퍼마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왼쪽) 공동묘지 내 조각들 (오른쪽) 차곡차곡 쌓인 유골들

그래서 취해진 조치가 시내 묘지 철거. 시체들을 지하로 옮기자는 대안이 나왔다. 마땅한 터로 버려진 채석장이 선택됐다. 센강의 퐁네프 등을 짓는데 쓰인 돌들을 캐낸 빈자리. 그 자리에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이들의 유골이 쌓아 올려지기 시작했다. 사제는 기도를 올렸고 인부는 수레에 시체를 싣고 지하로 날랐다. 벽을 쌓는 것처럼 차곡차곡 뼈를 쌓고 두개골을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옮겨진 유골이 무려 6백만구나 된단다.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미로처럼 좁은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의 흔적들

카타콤은 공포 체험처럼 한 무리씩 들여보낸다. 미리 예약을 해두지 않으면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못지않게 기다려야 한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깊숙한 지하로 내려가면 찬 공기가 감돌며 등골이 오싹해진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솜털이 곤두서며 소름이 쫙 끼친다. 1700~1800년대에 이곳에 묻힌 망자들의 유골이 사방에 있다. 손 짚을 곳, 몸 기댈 데가 없을 정도로 무수하다. 그 와중에 해골로 하트, 십자가 모양을 낸 인부들의 놀라운 패기!

시내 한복판, 파리의 공동묘지

사방에 해골들이 널려 있어서 기댈 곳이 없다.

파리의 카타콤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도 있다. 에펠탑을 뒤집어 놓은 새빨간 포스터,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카타콤에는 비공개 구간도 있다고 한다. 모험한답시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몹시 위험한 행동이다. 길이 미로처럼 꼬인데다 물이 스며들어 미끄럽다. 아래로 내려가면 휴대전화도 무용지물. 위험한 짓은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앞사람을 놓쳐 홀로 남겨지면 바짝 긴장하게 되니 부지런히 쫓아가야 한다. 관람 시간은 45분 남짓, 2km 가량 걸어야 한다. 임신부, 폐쇄공포증이 있거나 심장 질환을 앓고 있다면 입장을 고민해 볼 것!

Cimetière du Montparnasse 몽파르나스 묘지

3 Boulevard Edgar Quinet, 75014

01 44 10 86 50

08:00-18:00 (토요일 08:30부터, 일요일 09:00부터)

 

Catacombes 카타콤

1 Avenue du Colonel Henri Rol-Tanguy, 75014 

01 43 22 47 63

10:00-20:00 (월요일과 공휴일 휴무, 입장료 12€)

www.catacombes.paris.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