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by안혜연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다즐링은 북인도의 홍차 산지 다즐링에서 재배되는 차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홍차지만, 마치 녹차처럼 부드럽고 은은하다. 화사한 향이 풍긴다. 굳이 설탕 한 스푼을 넣지 않아도 은근한 단맛이 돌아서 혀에 착 감기는 차, 다즐링. 떫지 않을 만큼 적당히 우려낸 차 한 모금을 입안에 물고 살며시 눈을 감으면, 아직도 북인도 다즐링의 끝없이 펼쳐진 차밭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즐링의 고향, 인도 다즐링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다즐링으로 향하는 차, 잠시 휴식시간.

다즐링으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다. 다즐링에 가기 위한 관문 도시, 실리구리에서 운전기사를 포함해 무려 12명이나 탑승할 수 있는 놀라운 지프에 몸을 구겨 넣었다. 3시간 남짓. 아담한 키의 차나무를 수없이 지났고, 원숭이가 먹을 것을 내놓으라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는 울창한 숲도 지나쳤다. 다즐링에 당도했을 때는 땅보다 하늘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멀리 아랫마을 풍경이 미니어처처럼 자그맣게 보이는데,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처럼 아득하게 멀었다.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추측이 불가능한 다즐링의 날씨

다즐링을 찾은 건 7월, 몬순 시즌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락가락하며 변덕을 부렸다. 티 없이 맑았다가도 갑자기 비를 쏟아냈다. 어떤 날에는 비가 안개처럼 사뿐히 내려앉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하늘에 구멍 난 듯 장대비를 퍼부을 때도 있었다. 오죽하면 지명이 다즐링이겠는가. 티베트어로 ‘도르지’는 천둥을, ‘링’은 장소를 뜻하니 다즐링은 천둥 치는 곳이란 의미. 몬순 시즌이 끝나고 9월이나 10월쯤 다즐링에 가면 맑고 청명한 하늘의 다즐링을 만날 수 있다는데 7월에 다녀온 나는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 뿐이다.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다즐링, 가파른 차밭 풍경

높은 산, 서늘한 기온. 햇볕과 구름이 적당히 번갈아가며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과 안개가 많은 편이고 때때로 내리는 비가 다즐링을 촉촉이 적셔준다. 중국에서 건너온 소엽종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초우라스타 광장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가면 소란스러운 시장과 다른 도시로 가는 지프들이 뒤엉켜 혼을 쏙 빼놓는다. 이 틈을 비집고 꿋꿋하게 40분 남짓 걸어 내려가면 탁 트인 차밭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보이는 다원은 해피밸리 다원. 여기서부터 수십 곳에 달하는 다원이 능선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노련한 손끝에서 탄생하는 향긋한 홍차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왼쪽) 새 잎이 돋아난 차나무 (오른쪽) 차 만드는 데 쓰는 잎은 위에서부터 5장뿐이다.

다즐링의 다원에서 만날 수 있는 소엽종 차나무는 무릎까지 오는 아담한 키다. 작고 섬세하고 여려서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차나무에는 수백 장의 잎이 달렸지만, 그중 차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잎은 위에서부터 5장뿐이다. 가장 위에 돋아난 첫 번째 잎은 연한 연둣빛으로 뾰족하고 아기처럼 보송보송 솜털이 돋아있다. 찻잎을 따는 사람은 대부분 아주머니다. 희끗희끗하게 센 머리카락, 얼굴에 주름이 짙게 팬 할머니도 여럿이다. 너른 차밭을 헤집고 다니며 손으로 찻잎을 딴다. 재빠른 손놀림. 얼핏 보면 아무 찻잎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꺾어 바구니에 집어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합당한 조건에 맞는 찻잎만 골라서 바구니에 넣고 있다.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왼쪽) 차를 재배하는 일은 보기보다 훨씬 고단하다 (오른쪽) 차밭의 여인들 

차 따는 여인들은 마치 산을 타듯 자연스럽게 산을 오르락내리락한다. 평지를 걷는 것처럼 느긋하고 노련한 걸음걸이다. 여인들은 비탈진 산길을 주춤주춤 한 발 한 발 짚어가며 다닌다. 쉬는 시간에는 보온병에 담아온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거나 우산으로 볕을 가린 채 드러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차를 재배하는 일은 보기보다 훨씬 고단하다.

한 잔의 홍차가 테이블 위에 오르기까지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찻잎이 한 잔의 홍차가 되어 테이블 위에 오르기까지, 길고 긴 여행을 한다. 수확한 잎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수분을 줄이기 위해 공장으로 옮겨진다. 자연적으로 말릴 때는 찻잎이 겹치지 않도록 얇게 펼쳐놓고 16시간 정도 두어 수분을 줄인다. 인공적으로 말리는 것은 자연적으로 말릴 때보다 빨리 마른다. 선선한 바람이 나오는 기계 위에 잎을 펼쳐놓으면 잎이 점점 시들어가면서 수분이 빠진다.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는 차 공장에서는 거의 인공 위조로 찻잎을 말린다.

차향 따라 떠나는 인도 다즐링

한 잔의 홍차가 테이블 위에 오르기까지!

이렇게 만들어진 홍차는 자국에서 소비하기도 하지만 차 생산이 어려운 유럽, 미국 등으로 수출한다. 티 캐디에 담기거나 은박 봉지에 밀봉 혹은 티백 속에 담겨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상점에 진열된다. 그러면 홍차를 즐기는 사람이 냉큼 집어간다. 팔팔 끓는 물속에 찻잎을 넣으면 다즐링 특유의 독특한 빛깔이 우러나 한 잔의 다즐링이 완성된다. 티포트에서 찻잔으로 옮겨지고 찻잔 속의 홍차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찻잎은 오랜 여정을 마치고 우리에게 따듯한 기운과 홍차 특유의 진한 향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