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작은 책방
여행 중 우연히 만나는 보물
소심한 책방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종이의 질감, 책장이 넘어가는 느낌, 책을 소유하는 것까지 그야말로 책의 모든 것을 사랑했던 두 여자가 손을 잡고 제주 동쪽 끄트머리 종달리에 책방을 열었다. 지금이야 종달리에도 예쁜 가게가 여럿 생겼지만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돌담에 억새밭, 바람밖에 없는 작은 동네였다고. 누가 이 먼 곳까지 책을 사러 올지, 책방을 하기엔 너무 엉뚱한 곳은 아닐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가뜩이나 책방 크기도 작은 데다가 이런저런 고민까지 많아 마음은 절로 소심해졌고 책방이라는 단어에서 서점과는 다른 정겨움과 친근함을 느낀 장인애, 현미라 두 대표님은 이 모든 것을 반영해 “소심한 책방”이라 이름 지었다. 걱정과는 달리 소심한 책방은 따뜻하고 아늑한 종달리 풍경 속에 잘 녹아들어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는 보물 같은 존재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1. 기존의 건물을 그대로 살려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2. 책은 물론 소품류도 판매한다. 3. 다양한 종류의 책을 여유롭게 살펴보자 |
소심한 책방의 책장은 더디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두 분 다 결혼생활에, 아이도 돌봐야 하니 많은 시간을 책방에 쏟을 수 없어 느리면 느린 대로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 채워 넣고 있다. 제주관련도서, 그림책, 소설, 만화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두 대표가 느리게나마 애를 쓰고 있는 것을 아는지 손님들은 오히려 이런 게으르고 느린 느낌을 소심한 책방의 개성으로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소심한 책방은 공간 자체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창고용으로 지었던 건물을 그대로 살려 아기자기하고,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행복함을 느끼게 한다. 공간이 좁아서 책을 여유롭게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손님을 볼 때면 두 대표님은 안타깝다고 말하지만 손님들이 책을 보다 양해를 구하고 웃으며 양보하며 좁은 통로를 지나는 모습을 보니 공간의 좁음과 배려가 소심한 책방을 더욱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소심한 책방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책장을 비우고 채우며, 책을 사랑하며, 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얻고 나누면서 지내고 싶다고 한다. 그저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도 늘 지금의 자리에서, 제주에서 가장 작고, 가장 오래된 책방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소심한 책방이 지금의 소심한 모습 그대로 남길 바라본다.
소심한책방 : 제주시 구좌읍 종달동길 29-6 / 070-8147-0848 / www.sosimbook.com 월~목 10:00~18:00, 금~일 13:00~19:00
그냥 책이 좋아서
라이킷
책을 싫어했던 소녀가 대학생이 되어 책을 접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어렸을 땐 너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니까 오히려 읽기 싫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접한 책은 너무 재미있었고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죠.” 제주에 처음으로 독립출판전문점을 연 안주희 씨의 말이다. 대학에서는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신문사 편집기자로 일하며 쉬는 날에는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며 놀았다. 그리고 여행 왔던 제주에 반해 제주로 왔고 2년 후 칠성로에 ‘라이킷’이라는 책방을 열었다. 책을 만나고 난 뒤, 그녀의 인생은 늘 책과 함께였다.
1. 라이킷만의 테마 판매대, 현재는 고양이를 주제로 진행 중 2.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한 독립출판물들 3.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독창적인 책을 살펴본다. 4. 안쪽에서 바라 본 라이킷의 전경 |
‘책방오픈’이라는 작은 간판을 내건 라이킷에 들어서면 다른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책들이 가득하다. 「계간 홀로」, 「STREETS LODON」, 「내가 30대가 됐다」 등 제목만 봐도 흥미가 생기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책들이다. 이곳에서 맘에 드는 책을 골라 읽어본다면 책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도 책에 대한 애정이 퐁퐁 샘솟을 듯하다. 제주도 책방답게 제주도에 대한 책을 모아 두기도 했다. 한 번 왔던 손님이 다시 왔을 때 새로운 책을 찾을 수 있도록 신간을 부지런히 갖추려고 하고 있지만 섬이라는 지리적인 여건상 정보를 얻기도 힘들고 다른 서점이나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없어 힘든 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늘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라이킷은 독립출판물처럼 통통 튀고 늘 변화하는 책방이 될 것이다. 책방 내부를 둘러보았더니 커다란 테이블에서는 고양이와 관련된 책은 물론 소품, 문구류들을 모아놓고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테마 판매대로 지금은 고양이에 대한 물건을 진열되어있지만 2개월에 한 번씩 다른 주제를 가지고 바꿔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라이킷이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것,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을 돕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남들이 강요할 땐 책을 싫어했던 소녀가 스스로 책의 매력에 눈을 뜨고 결국 책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라이킷을 찾고 책에 매력에 흠뻑 빠져보길 바란다. 제주 칠성로에 라이킷이 ‘책방오픈’ 중이다.
라이킷 : 제주시 칠성로길 42-2, 1층 / 010-3325-8796 / 12:00~20:00(매주 수요일 휴무)
조용한 마을의 작은 책방
라바북스앤모어
제주 남쪽 마을 위미리에 ‘라바북스’가 문을 열었다. 라바란 프랑스어로 그곳이라는 뜻으로 책방 주인 재유 씨가 직장인 시절 취미 삼아 냈던 사진집 이름에서 따왔다. 깔끔하고 심플한 인테리어에 책이 약간, 귀여운 소품과 그림이 약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다. 실제로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간판도 없어서 마을 주민도 이곳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기웃거리곤 했단다. “책 가게라기엔 책이 너무 없어서 저라도 어떤 곳인지 궁금했을 것 같아요.” 라며 주인장 재유 씨는 멋쩍은 듯 웃었다.
1. 사진이 멋진 일본, 호주 등의 외국 잡지들 2. 중고서적 코너, 앞으로 더욱 채워갈 예정 3. 자체 발간하는 사진집 「LABAS」, 얼마 전 5호가 발행되었다. 4. 깔끔한 인테리어의 라바북스 |
문을 연 지 3개월 남짓, 아직 책의 수는 적지만 사진집, 외국잡지, 독립출판물, 제주관련도서 등 알차게 갖춘 라바북스는 아주 훌륭한 책방이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책은 모두 재유 씨가 직접 살펴보고 좋은 책으로만 고르고 있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하나씩 책장을 가득 메워나갈 계획이다. 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엿보이는 책장, 이것이 작은 책방만의 매력이 아닐까. 그래도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베스트셀러 등을 보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다고 하니 라바북스의 책장은 더욱 다양하게 채워져 갈 것이다.
누구나 딱히 일이 힘든 것도 아닌데 몸과 마음이 지치는 그런 때가 있다. 재유 씨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왔고 마침 아는 지인이 제주에서 카페를 오픈한다고 하기에 ‘그럼 나도 옆에서 뭔가 해볼까, 취미 삼아 사진집을 만들기도 했으니 작업실 겸 책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이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덕분인지 치킨집이었던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묘하게 마음이 놓이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안락한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위미리는 여행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용하고 한적해서 좋은 동네다. 라바북스를 찾은 사람들이 책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와 조용한 마을에 평화로움과 따뜻함을 더하고 있다.
라바북스앤모어 :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87 1층(가운데) / 010-4416-0444 / www.labas-book.com 12:00~19:00 (매주 수요일, 셋째 주 목요일 휴무)
에디터 / 김지은
사진 / 오진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