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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다랑쉬오름 ~ 아끈다랑쉬

꼭 걷고 싶은 제주 가을길

by아이러브제주

꼭 걷고 싶은 제주 가을길

가을이 곱게 물든 길을 걷다

꼭 걷고 싶은 제주 가을길

 

길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걸었기에 길이 되었고 나는 이 순간 다른 이의 흔적을 밟으며 길을 걷는다.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섬은 길을 통해야만 갈 수 있다. 섬을 가기 위한 바닷길일 수도 있고 나뭇잎이 섬세하게 떠는 숲길이거나 도시를 통과하는 도로, 오밀조밀 담을 따라 연결되는 골목길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길이 있다. 눈에 보이는 길부터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보이지 않은 길까지.

 

수많은 길 가운데에서 가을 제주여행에서 만날 길은 억새가 물결치는 오름길이며 설렘으로 다가오는 숲길이고 갯내음 물씬 풍기는 바닷길이다. 느림을 게으름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은 길, 산책하듯 유유히 걸으며 세상의 번잡함과 끝없이 밀려드는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새로운 삶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다면 이 또한 길을 걸었기에 받게 되는 선물이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류시화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빈 들녘의 바람이 그리워질 때 나는 제주의 억새길을 간다. 가을이 무르익는 시월이 가까워지면 제주 어디를 가도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억새가 맞아준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나부끼는 억새가 손끝에 잡힐 것만 같다. 그들 속에는 바람의 요정이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디선가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이 부르는 듯한 유혹의 노래가 들린다. 어찌할 수 없이 빠져들게 되는 억새의 노랫소리다. 억새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길을 걸으며 그 유혹의 소리에 대한 답가를 부른다. 아스팔트로 다져진 도로에서 벗어나 흙길을 걷는 이 순간이 참으로 고맙다. 오름을 업거나 앞에 안으며 또는 오름 사이로 난 길을 단순히 억새길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모태이다. 그 길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이며 오름길은 제주 사람들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걷기이자 순수의 자연으로 걸어가는 여정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 끝에 서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짙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꼭 걷고 싶은 제주 가을길

다랑쉬는 달을 의미한다. 원형의 굼부리는 달덩이가 쏙 들어가 있는 듯 둥글게 파여 있고 키 큰 나무보다는 초지로 되어 있어 그 생김새가 확연히 드러난다. 분화구 바깥 둘레는 1,500m, 깊이는 115m에 이른다.

꼭 걷고 싶은 제주 가을길

올가을 걷고 싶은 길은 다랑쉬에서 아끈다랑쉬로 이어지는 오름길이다. 억새의 춤사위가 가장 아름다운 길로 어머니와 그 자식을 연결하는 탯줄처럼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어 함께 걸어야 더욱 멋스럽다.

꼭 걷고 싶은 제주 가을길

억새꽃이 처음 필 때는 붉은 빛을 띤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청춘을 보내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처럼 점차 빛바랜 은빛으로 변하는 억새, 능선을 가득 메운 저 억새물결도 짧은 가을 동안 생애를 살고 있다.

다랑쉬오름 ~ 아끈다랑쉬

제주에서 오름 하면 흔히들 용눈이오름을 떠올린다. 용눈이오름은 김영갑이 살아생전에 너무나 사랑하여 유명해진 오름이다. 능선의 곡선미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용눈이오름을 여왕이라고 하기에는 그 자태가 너무나 여성적이다. 여왕은 위엄과 포용력을 함께 갖춰야 하는 법. 많은 이들이 제주 오름의 여왕을 다랑쉬오름으로 꼽는 이유는 쉽게 오를 수 없는 위엄을 갖춘 데다 커다란 달을 품고 있는 원형 굼부리가 범접할 수 없는 美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억새의 춤은 초입의 삼나무 숲을 통과하자마자 시작된다. 제주 오름의 여왕다운 가파른 사면을 타고 억새가 춤을 춘다. 등산로가 없었을 때는 정상을 향해 거의 수직에 가깝게 난 길을 숨이 차도록 힘겨워하며 올랐었다. 지금은 지그재그로 등산로가 놓여있어 힘들긴 하지만 오를만하다. 오름 바깥면의 은빛 억새의 춤사위는 굼부리 능선에 다다라 절정에 이른다. 굼부리 안은 달이 떨어져 구멍을 만든 듯 둥글게 움푹 들어가 있고 그 안에서는 억새의 군무가 한창이다. 다랑쉬오름이 초대형 바구니에 억새를 가득 채워 건네는 가을 선물이다. 저곳에 봄과 여름에는 들꽃과 풀들이 지천이었다. 지금은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억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몸짓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가을을 가장 가을답게 만드는 억새에게 주연의 자리를 내주고 보일 듯 말듯 오름에 피어난 가을 들꽃들…. 절굿대, 당잔대, 쑥부쟁이가 억새 속에서 가을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억새 줄기 아래에서는 야고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꼭 걷고 싶은 제주 가을길

1. 가을꽃 쑥부쟁이가 피어있고 점차 오름은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 2. 오름은 그 안에서는 그 위용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오름 바깥에서 오름을 바라볼 때 제대로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3. 다랑쉬오름 굼부리를 걷다보면 제주의 가을에 흠뻑 빠져 하릴없이 걷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4. 다랑쉬 오름 하산 길에 아래를 굽어보면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아끈다랑쉬가 새초롬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보인다. 5. 가을을 향유하고 싶다면 그 안에 완전히 몸과 마음을 담궈야 한다.

굼부리를 빙 돌아 나와 시작점으로 향한다. 이웃한 아끈다랑쉬로 가기 위함이다. 하산길의 풍경은 또 새롭다. 바쁘게 위로만 향하느라 보지 못했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아끈다랑쉬가 새초롬하게 누워있다. 어떤 이가 커다란 원형의 우주선을 보는 듯하다는 덜 낭만적인 이야기를 한다. 다른 묘사할 말을 찾고 싶지만 원형의 굼부리와 테두리처럼 보이는 능선은 꽤나 UFO를 닮아 보인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와 건너편의 소로를 걸어 작은 다랑쉬로 향한다. 다랑쉬가 382m의 비고를 자랑하는데 반해 아끈다랑쉬는 58m에 불과하다. 다랑쉬오름에 아끈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는데, 제주 말로 ‘아끈’은 ‘작은’을 뜻한다. 다랑쉬가 지구라면 아끈다랑쉬는 달쯤 되지 않을까. 지구와 달처럼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도 서로를 놓지 않으며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 두 개의 오름이 모자지간을 보는 듯 다정해 보이는 이유는 가까이 있는데다 크기가 확연히 비교되는 것도 있지만 그 둘이 함께 가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둘은 가을이면 함께 억새의 무대를 펼친다. 가을에는 작은 다랑쉬가 더 이상 작아 보이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작지만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처럼. 아끈다랑쉬의 억새 물결이 유난히 출렁거린다. 어미는 언젠가 독립해 나가야 할 자식을 위해 용기를 북돋운다. 그 격려에 힘입어 가을날의 아끈다랑쉬는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올 수 있었다. 유난히 많은 억새가 춤을 추고 능선에서는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큰 소리를 내어 목청껏 노래한다. 바람 부는 대로 흐느끼듯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간다. 제 키보다 큰 억새와 나란히 걷다보면 가을이 가슴 깊은 곳으로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걸어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저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부터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한라산 자락까지…… 가슴에 담아갈 수 있는 풍경이 너무나 과분하다. 가을날, 오름길의 억새는 울지 않았다. 모진 바람을 이기고 있는 힘껏 노래하며 가을을 찬미하고 있다.

 

에디터 / 황정희

사진 / 오진권

다랑쉬오름 ~ 아끈다랑쉬

다랑쉬오름(382m)에서 바로 이웃한 아끈다랑쉬(58m)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가을이면 억새가 물결치는 명품 오름길이 된다. 다랑쉬오름은 비고가 꽤 있는 오름이지만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오르는 데 무리가 없으며 아끈다랑쉬는 가볍게 산책하듯이 오를 수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하며 주차는 다랑쉬오름 안내소 옆 주차장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