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군단이 펼치는 핑크빛 판타지

[컬처]by 서울문화재단

팝아티스트 도파민최

털북숭이 몸통에 삐죽 나온 팔다리, 표정 없는 얼굴, 남자도 여자도 아닌 묘한 생명체. 팝아티스트 도파민최가 창조한 도파민의 모습이다. 그는 신경호르몬의 일종인 도파민을 가상의 생명체로 설정하고, 이들이 뇌 속에서 펼치는 ‘행복과 중독의 아이러닉’을 핑크빛 판타지로 구현한다. 회화뿐 아니라 아트토이,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실험해온 시도는 2017년 9월 영국 사치 갤러리 스타트 아트페어 참여로 이어지기도 했다. 도파민최의 첫 개인전 <도파민 랩>(4월 23일~5월 14일)이 열리는 서울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도파민 군단이 펼치는 핑크빛 판타지

팝아티스트 도파민최

도파민 군단이 펼치는 핑크빛 판타지

나이키 베이퍼맥스 바이럴 영상 컬래버레이션. 나이키 코리아, 2017.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들이 페인팅, 오브제, 영상설치, 퍼포먼스까지 다양한데요.

 

추계예술대에서 판화를, 영국 킹스턴대에서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어요. 판화를 전공할 때 배운 것도 많았지만,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예술을 하고 싶었죠. 순수예술이 엘리트주의로 빠지는 경향도 싫었고, 스스로 어떤 분야의 작가라고 한정짓기보다 넓은 의미의 시각예술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도파민 캐릭터를 창조할 때 염두에 둔 이미지가 있나요?

 

도파민 하면 사람들은 화학기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저는 뇌 속에서 도파민이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의인화해 표현했어요. 인간의 행복과 관련 있지만 중독되게도 하는 이중성을 띤 호르몬이기 때문에, 귀여우면서 괴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파민을 상징하는 주요 색채가 핑크인데, 굉장히 오묘하고 아름답지만 폭력적인 색이거든요. 중독성이 있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뭔가 욕구를 던져준다고 할까요?

 

도파민의 표정이 없는 게 특이하네요.

 

눈썹과 입이 없거든요. 간혹 크게 중독된 상태를 표현하려고 입을 그릴 때가 있지만, 그 외에는 없어요. 표정이 없는 대신 팔다리를 통해 액션을 부여하고, 뇌 속 호르몬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몸통에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털을 입혔어요. 또 숫자와 밀접한 호르몬이기 때문에 도파민을 생각할 때 군단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군단이 모여 서로 싸우는 이미지 작업들이 만들어졌죠.

도파민 군단이 펼치는 핑크빛 판타지

스타트 아트페어 전시 모습. 사치 갤러리, 영국 런던, 2017.

수많은 신경호르몬 중에서 도파민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예전부터 탐구해왔던 주제가 ‘행복과 중독의 아이러닉’이었어요. 그때 제가 중독된 게 게임, 영화, 드라마처럼 브라운관 속 가상세계더라고요. 초기에는 가상현실 자체를 그림과 판화로 표현했어요. 그러다 영국 유학을 가서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중독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됐죠. 연구해보니 어떤 대상에 중독될 때 도파민 호르몬이 영항을 주더라고요. 행복해지기 위해 도파민이 필요하지만, 이 도파민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중독되는 거죠.

 

인간의 행복을 관장하는 호르몬은 더 다양할 텐데, 도파민 외에 새로운 캐릭터가 나올 수도 있을까요?

 

중독에 관련된 모든 호르몬들을 다 그려야 하는지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제 역할이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도파민에 대해 더 집약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파민이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에 대한 작업을 할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은 대중성을 띤 작업을 하는 데 영향을 준 작가가 있나요?

 

일본 만화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 영국의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를 좋아했어요. 제 작품과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아우라도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전시를 하는 태도나 전시장 풍경 자체가 정말 좋았거든요.

도파민 군단이 펼치는 핑크빛 판타지

Brewing Company, ‘thebooth’ 컬래버레이션 전시. 아트토이컬쳐, 2017.

기존 작품에서 주로 평면회화의 주인공이었던 도파민이 입체적인 아트토이로 대중과 만난 계기가 2015년 <아트토이컬쳐> 전시였죠?

 

2015년부터 3년 연속 ‘키치스’(KITSCHS)라는 작가 그룹의 일원으로 <아트토이컬쳐>에 나갔어요. 일종의 크루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돼요. 그전에도 국내 전시에 몇 차례 참여했지만, 도파민최라는 이름으로는 이때 국내 데뷔를 한 셈인데요. 당시 아트토이는 50개만 한정 제작하고 복제 외에는 후가공부터 도색까지 다 수작업으로 마무리했어요. 키치스와의 전시를 계기로 2017년 3월 진화랑에서 <슴가전>이라는 전시에 참여했고, 그게 잘돼서 9월에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 아트페어에도 참여했죠. 예술성과 상업성 중 하나만 추구해야 한다는 제약을 두고 싶지 않아요. 그냥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 순간에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죠. 나이키 베이퍼맥스의 바이럴 마케팅을 위한 영상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도파민 군단이 펼치는 핑크빛 판타지

'도파민 랩' 전시장 전경.

지금까지 30여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지만 <도파민 랩>은 첫 개인전이라 감회가 새로웠을 텐데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새로운 시도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4월 23일 전시 첫날 퍼포먼스를 했어요. 제가 ‘도파민 박사’ 콘셉트로 등장해서 플라스크나 비커에 물감을 담고, 그걸 도파민 물질이라 생각하고 뿌리면서 형상을 만들고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제가 그리는 캔버스 자체, 물감 자체를 실험하고 진찰하는 느낌이었어요. 청진기를 가지고 캔버스에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요.

 

<도파민 랩(lab)>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실험적인 시도였겠네요.

 

전시 제목도 도파민이라는 주제로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작업 영상을 벽에 빔으로 쏴서 그림을 그려봤어요. 예를 들면 컴퓨터로 그린 이미지를 확대해 빔으로 쏘면, 벽에 비친 이미지는 아름답고 이미 완성된 것 같지만 손으로 가리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름다워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되죠. 앞으로 몇 가지 빔을 동시에 쏘거나 각도를 바꾸기도 하고, 이미지를 여기저기 쏘기도 하면서 변주하는 식의 설치미술을 시도하고 싶어요.

 

도파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중독’이라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지만, 단순히 ‘중독은 나쁜 것이다, 중독되지 말자’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달리 보면 중독은 어떤 대상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거든요. 삶이란 행복 추구와 중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그 이중성 사이에서 추구하는 균형을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중독의 자극성도 보여주고 싶어요. 인간의 뇌는 근육보다 더 예민하고 신비로운 존재예요. 저는 그걸 도파민 호르몬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즉 도파민을 통해 뇌 속 판타지를 보여주었으면 해요.

 

올해 입주한 신당창작아케이드는 기존에 입주했던 작업실 환경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

 

올해 1월에 입주했는데 위치 면에서는 어떤 레지던시보다 좋아요. 재료상이나 을지로도 가깝고, 충무로도 가깝잖아요. 패션 관련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겐 동대문도 가까워서 좋죠. 또 작업실이 시장 밑에 있기 때문에 한국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작업실에만 갇힌 느낌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오늘의 서울’을 느낄 수 있죠.

 

공예 분야에 특화된 레지던시잖아요. 아트토이를 제작하며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고민해왔으니 특별한 영감을 줄 것 같은데요.

 

다른 장르에서도 배울 것이 많지만 전 특히 공예 분야에서 어떤 물성의 재료들이 있는지, 다른 작가들은 이를 작품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했어요. 다양한 분들이 있어서 재미있더라고요. 입주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어 좋아요. 현재 35명이 입주해 있는데, 친하게 지내는 작가들을 ‘횟집 라인’이라고 불러요. 저희 작업실 근처에 회센터가 있거든요.

 

입주작가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입주작가 학습공동체(CoP) 프로젝트인데요. 류종대(아트퍼니처), 한용범(세라믹), 안소라(옻칠공예), 이정형(기타 디자인),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 작가가 <레트로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1920년대에 대한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1920년대 신문 중 하루를 정해서 그날 실린 사건들을 차용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되, 작품은 현재를 반영하는 거죠. 이를테면 ‘김아무개 씨가 순사들에게 쫓겨 방앗간에 숨었다’는 기사가 있다면, 당시의 방앗간을 배경으로 제가 조형물을 만들거나 그래픽으로 벽지를 제작할 수도 있고요. 안소라 작가는 옻칠공예 작품을, 이정형 작가는 당시에도 있었던 기타를 만들 테고, 소반을 주로 만드는 류종대 작가는 1920년대에 있음 직한 가구를 만들지 않을까 해요. 전시는 9월이나 10월쯤으로 예정하고 있어요.

 

글. 고경원 자유기고가

사진. 최성열

사진제공. 도파민최

2018.07.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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