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 갇힌 몸을 열다 : 교정 교화 지향의 해외 춤 활동

필리핀 세부(Cebu) 지방 교정 당국(CPDRC)이 춤으로 교정 활동을 펼친 사실이 10년 전 국내 언론에 더러 보도된 바 있다. 휴양 관광 도시로 이름난 세부는 7천 개 넘는 섬들의 나라 필리핀 중부에 위치한다. 우리 외교부의 사이트를 비롯하여 언론 보도 등은 마약 밀매 등 필리핀의 불안한 치안을 환기해왔으며, 치안이 불안한 그 만큼 교도소 구금자가 많을 것은 짐작 가능하다. 2009년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뜨기 전, 2007년에 그의 〈스릴러〉에 맞춘 재소자들의 집단무를 유튜브에 업로드하고부터 세부 교도소의 춤 교정 활동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한 줄기 빛… 갇힌 몸을 열다 : 교

세부 교도소 춤

부패하며 열악했던 교도소 내의 폭동이 계기가 되어 세부의 주지사가 동생을 교도소장에 임명했고 그 동생은 2004년 교정 활동에 춤을 도입하였다. 교도소 내 기강 확립, 체력 단련, 재범률 저하 그리고 재소자의 사회 복귀 적응을 위해 세부 교도소는 매일 일정 시간 춤 수련을 시행해왔다. 핑크 플로이드, 마이클 잭슨 등 유명 가수의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쓴 춤이 교정 효과를 나타내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된다. 2008년부터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재소자들의 집단무를 외부 공개하는 정기 행사를 열었고 싸이, 원더걸스 등의 노래도 춤곡으로 등장하였다.(올해 1월부터 이 정기 행사는 불투명한 이유로 일단 폐지되었다.)

 

전문 안무가 두어 사람의 지도로 만들어진 세부 교도소 춤은 거대한 매스 게임을 연상시키는 대형 집단무가 축을 이루며 때로는 패러디한 장면이나 숭고한 순간도 등장한다. 세부 교도소의 춤 교정 활동은 재소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호응을 받는 것 같다. 이와 함께 춤 수련을 강제하고 수련을 거부하면 체벌을 가하는 등의 부작용도 지적되었다. 살인, 강간, 마약 거래 등 강력 사범들을 비롯 2천 재소자를 수용하는 교도소 환경에 비추어 재소자들이 춤 (행사) 덕분에 과거를 딛고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다는 소감들은 상당히 수긍이 간다.

 

세부 교도소와 페루 리마의 교도소의 춤 교정 사례는 국내에 보도로 알려졌었다. 교도소 내의 인권 그리고 예능에 대해 인식이 점차 호전되는 것으로 관측되는 국내에서도 교도소 내의 춤을 재평가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교도소 내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교정 프로그램이 범죄의 근절책은 아니겠으나 춤 교정 활동의 다면적 효과는 관심을 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카운티, 뉴멕시코, 인디아나주, 덴버, 요크카운티, 산머테이오, 산타클라라, 우드번, 캐나다의 오타와 등지의 교도소와 영국 런던의 홀로웨이 교도소에서 실행된 춤 교정 활동들은 이 같은 추세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짚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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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아 프로젝트

여류 연출가 존스(Rhodessa Jones)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90년대 이래 여성 수감자들을 위한 공연 〈메데아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즉흥 연기, 자기 고백의 대사, 춤적 움직임을 결합한 이 공연은 수감자들과 공동으로 만들어졌고, 주먹과 발을 차거나 손바닥을 치는 동작을 강조한 부분들은 교도소의 길들이기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수감자)들의 응어리를 강렬하게 대변하는 효과가 있었다. HIV 감염자이던 흑인 여성 스텝토(C. Steptoe)는 정맥 약물 구입비를 대기 위해 절도를 저지르며 감옥을 드나든 전과자였다. 자기를 담당하던 의사를 통해 〈메데아 프로젝트〉와 연결된 스텝토는 자신의 사연을 존스에게 털어놓는다. 존스의 손으로 〈메데아 프로젝트〉는 2008년부터 스텝토와 HIV 감염 여성들이 출연해서 스텝토가 사연을 말하고 HIV 감염 여성들이 출산권(出産權)을 강조하는 버전으로 확장되었다. 이 공연은 교정 시설뿐 아니라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올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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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춤 교정 활동을 20년간 지속해온 슬로트닉(Susan Slotnick)의 피켜스인플라이트 무용단

춤 교정 활동은 거의 대부분 소년원을 비롯하여 청소년과 여성 재소자 위주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 교도소로는 영국 최대 규모였던 런던의 홀로웨이 교도소에서 댄스 유나이티드(Dance United)는 재소자 참여 춤 프로그램을 6년간 연 데 이어 수년간 영국 전역의 교도소에서 3주 간의 집중 공연 프로젝트를 실행한 바 있다. 댄스 유나이티드는 거리 청소년과 재소자를 위한 춤 재단으로서 청소년 춤 교육 아카데미를 런던과 영국 여러 지역에서 상설 운영하는 중이다. 허버트(T. Herbert)는 16살에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학교 성적은 낮았고 방황 끝에 그녀는 춤에 몰입해서 램버트 발레 스쿨에 진학하였다. 지금은 댄스 유나이티드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댄스 유나이티드는 영국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베를린에서도 프로그램을 수행하였다. 영국의 비영리 국제 조직인 교육발전재단에서도 춤이 자기 신뢰감과 소통 능력 향상을 바탕으로 소년원 소녀들의 재범률을 저하시키는 데 현저한 효과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와 유사한 취지에서 재소자들에게 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 조직이 영국에서 느는 추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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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소년원 춤 교정 활동을 20년간 지속해온 크라우스(Ehud Krauss)의 춤 교정 교육, (우)춤 교정 활동을 20년간 지속해온 로스(Janice Ross)의 춤 교정 교육

캐나다 안무가 제니(Claire Jenny)는 2004년부터 오타와대학 범죄학 교수와 함께 재소자들의 춤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무용가와 범죄학자 간의 공동 작업이 흔치는 않은 현실 속에서 그들은 재소자 스스로 몸을 학대(自虐)하는 경향을 주목하고 구금된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데 작업의 초점을 맞추었다. 어느 재소자가 몸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난생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듯이 여성 재소자들은 춤 프로그램에서 몸을 지각하는 행위가 소중하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 장기간의 워크숍은 이후 프랑스와 캐나다 퀘벡의 교도소들에서 새 프로그램으로 지속되었다. 미국의 스탠포드대학도 춤을 통한 갱생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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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Claire Jenny)가 진행한 춤 교정 활동 공연

교정 활동이 대개 폐쇄된 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탓에 국내 교정 활동에서 예능이 주도하는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교도소 내의 춤이라 하면 보여주기 식의 위안의 춤 공연을 연상하는 발상은 오늘날 지극히 낡은 것이 되고 있다. 위에 예시된 세계 각지의 춤 교정 활동들은 대체로 지난 20여년 사이에 이뤄졌다. 이들 활동은, 단적으로 말해, 보여주는 위안 차원이 아니라 재소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그 활동에서 춤을 전수하는 교습이 주축을 이룰지라도 일방적 전달을 벗어나 재소자 각자와 교습자 간의 인간적 공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하여, 재소자를 구금시킨 죄목은 괄호 쳐지고 춤추는 자아가 재소자를 대신한다.

 

재소자들은 몸과 함께 자기 결정권마저 구금된다. 그러나 자신들의 마음마저 구금되는 것은 아니다. 감방에서 독서에 몰입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 같다. 재소자들에게 제공하는 춤과 예능 프로그램은 교정 목표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춤 교정 프로그램은 사회 안전 차원에서 아니면 시민-개인의 차원에서 진행될 수 있다. 여러 춤 프로그램에서 재소자들을 춤 초보자가 아니라 개개인을 전문인 동료처럼 전제하는 상호교류적 태도는 어느 차원이 효과적인지 시사하는 바 크다.

 

재소자들이 춤을 통해 자기 충족감과 인간 동료로 대우받음으로써 심경의 변화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재소자로서의 신원이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재소자와 교습 무용인 모두의) 춤추는 자아로서의 정체성이 현장을 주도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춤 교정 활동이 결정적으로 몸이 마음을 구하는 계기로서 소중하다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춤 교정 활동을 실행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결코 시혜라 생각지 않는다. 춤 교정 활동에 얽힌 감동의 실화들이 흔한 것은 대개 인격적 만남으로 진행되는 때문이라 생각된다.

참고 자료

  1. 20년간 미국 뉴욕주에서 교정 춤 활동을 해온 Susan Slotnick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들의 소감 영상 [바로가기]
  2. 세부교도소에서의 춤 교정 활동 영상 [바로가기]
  3. 존스가 연출한 메데아 프로젝트 소개 영상 [바로가기]
  4. 오타와대학과 제니가 작업한 춤 교정 활동 소개 영상 [바로가기]

김채현 춤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2017.05.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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