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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평등한 것은 햇빛밖에 없다

연극 <햇빛샤워>

by서울문화재단

연극 <햇빛샤워>
연극 <햇빛샤워>
빛 광(光), 미칠 광(狂). 제 이름은 광자입니다.

광자는 사는 게 힘들다. 부모님은 술과 담배로 그녀에게 ‘고아’라는 명칭만 던져놓고 일찍 떠나버렸다. 그녀는 악착같이 노력하지 않으면 ‘반지하 월세방’을 벗어날 수 없다. 동교는 바라는 게 있다. 동교도 고아이다. 아무 관계없던 고아원에서 아무 관계없는 이름을 받은 동교는 사람들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다.

연극 <햇빛샤워>는 그런 광자가 동교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연극 <햇빛샤워>

광자와 동교

광자는 잘 살고 싶다. 그녀는 이름 때문에, 이름이 그녀의 인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10대 때 그녀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학우를 폭행한 전과가 있어서 개명조차 쉽지 않다. 7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요구하는 전직 형사에게 그보다 부족한 돈과 그녀의 몸을 주고 의뢰를 맡긴다.

광자는 항상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여 구멍난 삶을 메꾸려고 한다. 직장에서 매니저가 되기 위해 과장과 잠자리를 갖기도 하고 뒷돈을 빼돌리기 위해 직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광자는 자신이 얻어야 하는 것, 얻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관계를 맺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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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매일 연탄을 나르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나눔을 잊지 않는다. 다같이 잘 살기를 바라면서 이웃들과 연탄을 나눈다. 이를 알게 된 구청에서 동교의 자원사업을 크게 벌이고 동교에게 감투를 씌워주려 하자, 사람들은 잇속을 챙기며 동교와 이해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하지만 동교가 원하는 건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채로 사라지는 것뿐이다.

광자와 동교는 참 다르다. 살아가는 방식, 가난을 대하는 태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사람들에게 광자는 ‘썅년’이고 동교는 ‘착한 청년’이다. 광자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 하지만 동교는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그 둘은 닮았다. 둘 다 ‘고아’이고 ‘가난’하다. 살아가는 방식은 판이하지만 둘 다 구멍 있는 삶이다. 광자는 이름이 구멍이라고 생각하고 동교는 관계가 구멍이다. 광자와 동교는 그 구멍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결국 죽어서도 구멍에서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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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는 썅년입니다

광자가 저지른 일만을 나열해본다면 누구든 광자를 욕할 것이다. 진급하기 위해 유부남인 상사에게 몸을 내주었고 그런 일은 여러 번 있었다. 극 중 인물들에게 그녀에 관해 물어보니 ‘이름대로 미친년’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쉽사리 광자를 욕할 수 없다. 그녀가 행한 행동은 옳지 않다. 도덕적으로나 사회 규범을 따지면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구멍에서 빠져나오려 악착같이 노력하는 것을 보면 비난보다도 동정심 혹은 동질감이 먼저 마음에 가득 찬다.

광자는 자신의 이름만이 그녀를 이런 구멍을 빠뜨린 것으로 생각하며 이름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몸이 좋지 않아 약 지을 돈에 얼굴을 찡그리다가도 햇빛이 약이 된다고 하자 소중히 햇빛을 받아 몸에 문지른다. 사회가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는 이름을 바꾸는 것을 막아설 때, 광자에게 평등하게 빛을 나눠준 것은 햇빛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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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빠질 수 있는 싱크홀

연극 <햇빛샤워>는 극적인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광자는 아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모든 게 잘 흘러갈 것 같다가도 나락으로 빠져든다. 광자는 결국 “내가 이광자다!”라고 외치며 구멍에 빠지고 만다. 다만 이 극적인 서사에서 조금의 아쉬운 점은 광자가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은 느리다고 느껴질 정도로 친절히 묘사하면서 동교와 광자의 죽음은 급작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연극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햇빛샤워>의 처음과 결말에는 싱크홀이 등장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싱크홀을 흘깃 바라보면서도 그냥 지나쳐간다. 아직 그 싱크홀에는 누구도 빠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다시 싱크홀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싱크홀 바로 앞에 멈춘다. 누구든 싱크홀에 빠질 수 있다. 이번에는 지나쳐갔지만, 다음엔 멈추지 못하고 내가 빠질 수도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가 아닐까.

글. 블로그 기자단 5기 문화가인 노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