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영원으로 남는 예술

[컬처]by 서울문화재단
타투 전성시대라 할 만큼 요즘 타투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타투를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 홍보 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타투이스트로 변신, 타인에게 ‘영원’을 선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타투이스트 이서하. 그가 소개하는 타투 예술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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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실습 모델이 되어준 포르투갈 타투 강사. 2. 타투를 처음 연습할 때 돼지껍데기를 사용했다.

역마살 낀 회사원의 타투 정착기

진부한 시작일 수 있지만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약 2년간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의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서울시의 문화예술 홍보가 업이었지만 정작 내가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예술가로서의 삶에 교집합 따윈 전혀 없던 내가 타투이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여행이었다.

 

퇴사 당시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도 계속되었던 천직에 관한 고민은 자연스레 다른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잠시 쉬었다 오려고 했던 여정은 2년이 넘게 이어졌다. 가까운 동남아시아부터 인도, 조금 거리가 있는 유럽의 끝 포르투갈까지 역마살을 풀어내며 떠돌아 다녔다. 한창 유행인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까지는 아니더라도 쉬는 김에 이왕이면 여기저기 마음껏 다녀보자는 심산이었다.

 

타투이스트로서의 시발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의 3개월 여행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특별한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타투이스트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과 달리 타투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하지만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나에게 맞는 조건의 스튜디오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행 비자로 유럽에 머물 수 있는 최대 기간은 3개월인데, 보통 포르투갈의 타투 과정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이었다. 당시 머물던 곳은 포르투갈의 제2의 도시 포르투였다. 인터넷으로 포르투의 모든 타투 스튜디오를 검색해 무작정 찾아가기 시작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6개월 과정의 수업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루 5시간씩 수강했다. 교육이라기보다 사사에 가까웠다. 아직도 나의 어깨에 남아 있는 스승이자 친구였던 강사의 타투를 보며, 나의 시작점과 초심을 되새긴다. 필연적으로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그리고 또 나에게 타투는 여행의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타인에게 ‘영원’을, 혹은 ‘영원에 가까운’ 무언가를 남기는 직업, 매혹적이지 않은가?

예술과 시술 사이, 그 미묘한 어딘가에서 정당성을 외치다

타투, 영원으로 남는 예술 타투, 영원으로 남는 예술

3, 4. 최근의 작업물들.

타투는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만 불법이다. 그로 인해 포르투갈에서 취득한 타투이스트 자격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얼마 전 BBC에서 한국의 타투이스트에 대한 기사를 소개했다. 외국인의 눈에도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드는 한국에서 타투가 불법이라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나 보다.

 

내가 조명하고 싶은 부분은 타투가 합법이 아닌 이유와 그로 인한 인과 관계가 아니다. 한국에 정착하여 접하는 타투의 환경은 다른 곳과 제법 온도차가 있다. 법적인 지위뿐만 아니라 타투에 대한 인식과 관련하여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다.

 

여행을 떠나기 전 회사원이었던 과거의 나는 타투 ‘알못’(알지도 못하는)이었다. 외국의 유명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타투를 보면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울시내에서 타투를 한 사람들을 보면 거리감을 느꼈다. 이처럼 좁아진 시야로 계속 지냈다면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절대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단 과거의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투를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긴다.

 

포르투갈에서 타투 수강을 시작하며 느꼈던 건 예술로서의 타투에 대한, 그리고 타투이스트에 대한 존중이었다. 타투이스트는 사람의 몸에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로서 온전한 존중을 받는다. 내가 불량한 것이라 여기고 일탈로 시작했던 타투가 그들에게는 예술의 한 장르였다. 그것은 남녀노소, 인종에 구애받지 않았다. 내가 타투를 배우던 스튜디오에 어르신들이 찾아와 자신의 상처나 삶의 흔적을 보여주며 타투로 보완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일이 흔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타투는 도입기를 지나 성장기쯤 와 있을지 모른다. 그 성장통은 제법 강렬하다. 그 안에서 타투를 선호하거나 혐오하거나, 그 중간의 어디쯤 존재하는 우리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여기서 감히 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다.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한국에서 만난 타투와 연관된 사람들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불량’이나 ‘조폭’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들은 타지에서 타투를 익힌 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고 서슴없이 정보를 공유해줬다. 그리고 타투이스트마다 다를 수 있지만 ‘시술’이라는 단어보다는 ‘작업’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싶다. 타투이스트는 시술이 아닌 예술을 이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타투이스트로 살아간다는 것

타투, 영원으로 남는 예술

5. 포르투갈에서 타투 과정을 이수한 후 받은 타투이스트 자격증. 위생 교육에 대한 필기시험에서 70% 이상 득점하고, 실기 실습을 거쳐야 취득할 수 있다.

타투는 매 순간이 모험이다. 같은 크기와 모양을 그린다 하더라도 사람의 피부는 성별과 인종 그리고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내가 다루는 대상은 스케치북이나 죽어 있는 사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늘 잊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영원으로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 늘 영광스럽다.

 

오늘도 나는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기시감을 느낀다. 회사원 시절 나의 직업과 크게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홍보할 때는 무언가를 글로 남기려 끄적거렸듯이, 이제는 그림을 끄적거리고 있다. 타투이스트로 살되 카피이스트(copyist)가 되지 않기 위해, 또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삶이란 여정에서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

글·사진 이서하 (타투이스트)

INKBURN 소속이며 SNS에서는 타투이스트 ‘ROZY’ 혹은 ‘lil P’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져 있다. 인스타그램 lil_p__tatts.

2017.12.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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