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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특별한 추억’을 새겨준 서울의 극장들

종로 ‘국제극장’, 충무로 ‘대한극장’… 옛 극장의 추억

by서울문화재단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영화’가 있습니다. 50대 이상 중년 남성들은 극장에서 쌍절곤을 돌리는 이소룡과 <외팔이 드라곤>시리즈의 왕우를 보고 나와 친구들과 ‘거리 대결’을 벌인 기억이 있을 겁니다. 중년 여성들도 <로마의 휴일>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 등 고전 명작을 보며 웃고 울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곳곳에 있고, 다양한 영화가 매주 쏟아져 나와 영화를 보는 일이 큰 즐거움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예전에는 극장에 가기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설렜습니다. 극장 예매 시스템이 없던 시절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서야 했습니다. 특히 화제작이 개봉할 때는 그 줄의 길이가 매우 길었습니다. 매표소 앞에서 시작된 줄은 극장 인근 주택가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 줄이 극장 매표소 줄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암표상도 많았습니다. 암표상들이 노리는 대상은 주로 데이트하는 남녀였습니다. 데이트 상대를 줄 세워놓는 게 미안한 남성들이 생색을 내기 위해 지갑을 잘 열었으니까요.

종로 ‘국제극장’, 충무로 ‘대한극장

사진1 종로구 세종로에 있던 국제극장.

원조 ‘영화 1번지’ 종로와 충무로

우리나라에 극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1910년대였습니다. 서울 종로에 우미관과 단성사가 처음 생겼고, 을지로 국도극장(개관 당시 이름은 ‘황금연예관’이었다가 광복 이후 개칭)도 그 시기에 개관했습니다. 1930년에는 충무로에 스카라극장(처음에는 ‘약초극장’이었다가 광복 후 ‘수도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62년에 다시 개칭)이 생겼고, 광복 후 중앙극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또 1957년에는 충무로에 명보극장도 들어섰고,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과 세기극장은 1960년에 개관했습니다. 세기극장은 1979년 서울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사진1>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현 광화문빌딩 자리에 있던 국제극장 전경입니다. 1956년 국제문화관으로 문을 연 이 극장은 1959년 3월 국제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영화 개봉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개관을 앞두고 ‘근일개관(近日開館)’이라는 간판을 붙여놨네요. 당시 개관 기념작으로 앤서니 만 감독이 연출한 마리오 란자 주연의 <세레나데>가 상영됐습니다. 1,600석 규모의 이 극장에서는 <자유부인> <연산군> 등 유명 한국 영화를 비롯해 <러브스토리> <대부> <타워링> 등 대작 외화들이 관객과 만났습니다. 국제극장은 1985년 서울시의 재개발계획에 의해 헐릴 때까지 20여 년간 80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2,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대한극장은 1956년 1,900여 관람석을 갖추고 개관했습니다. 이 극장에서는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킬링 필드> <마지막 황제> 등 주로 대작들을 상영했습니다. <사진2>는 1958년 대한극장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 극장에서는 <위성내습>이라는 SF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이 영화는 잭 아널드 감독이 연출한 3D영화인데 영화 제목 앞에 ‘입체영화(立體映畵)’라고 한자 약자로 써놓았어요. 이 영화의 원제는 ‘잇 케임 프롬 아우터 스페이스(It came from Outer Space)’로 외계인이 인간을 조종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000년 5월 신축 공사를 위해 잠시 문을 닫았던 이 극장은 2001년 12월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의 8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재탄생했습니다.


위에 거론된 극장들은 모두 개봉관입니다. 개봉관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는 재개봉관으로 넘어간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들어가서 두 편을 볼수 있는 동시상영관에서 그 ‘생명’을 마감했습니다.

종로 ‘국제극장’, 충무로 ‘대한극장

사진2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대한극장의 1958년 모습.

필름이 끊어지면 격려의 박수를 보내던 옛 극장의 추억

요즘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안락한 의자와 온몸을 감싸는 음향 등 최첨단 시설을 갖췄습니다. 또 영화 화면에 맞춰 의자가 움직이고, 바람과 물이 나오는 특수 상영관도 생겼습니다. 이런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매우 편안하지만 옛날 극장처럼 추억이 쌓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에 아버지, 어머니 손을 잡고 처음 극장에 간 날이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영화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형 화면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상영 중간에 필름이 끊어져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짜증을 내지 않고, 영사 기사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영화 상영 중에도 이동 판매원이 과자와 음료수를 팔러 다녔습니다. 사이다 한 병을 사주시며 “재미있느냐”고 물으시던 어머니의 밝은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물론 지금 어린 세대들은 멀티플렉스가 추억의 갈피에 자리 잡겠죠. 그래서 훗날 ‘내가 어릴 때 극장이 이랬어’라고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겁니다.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