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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서울, 그 모든 골목길의 이야기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by서울문화재단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북촌(北村) 계동(桂洞)길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통칭하는 이름 ‘북촌(北村)’. 원래는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서 ‘북촌’이라고 불렀다니, 우리 조상님들의 작명 센스도 참…. 경복궁 끝자락의 삼청동길이 갤러리와 모던한 상점들의 거리로, 가회동길이 한옥 마을과 전통 공예 공방들의 거리로 떠오르면서 어느새 조금 번잡해진 반면, 창덕궁 그늘 아래 자리잡은 계동길과 창덕궁길(원서동)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고즈넉한 느낌이다.

북촌이야말로 까딱 딴 길로 새고 욕심을 부리자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부족하다. ‘하루에 한 길만’ 가겠다는 콘셉트 아래 오늘도 딱 한 길만 걷기로 했다. 바로 계동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현대 사옥을 끼고 들어서서 정면의 중앙고등학교까지의 700m 정도의 골목.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참 긴 그 골목길,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신진 작가들의 청춘 공방

다른 길로 새지도 않았으나 고작 그 700m를 걷는데 한 시간이 넘게 흘렀다. 사실 3~4년 사이에 이 골목도 참 많이 바뀌긴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 새롭게 더해진 다채로움이 딱 좋은 정도다. 골목골목 가게들의 풍경들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무언가 있던 것을 허물고 들어선 생경함이 아니라 원래 있던 이웃들 사이로 “저도 좀 끼어도 될까요?”라며 인사를 하고 들어온 느낌이랄까.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아닌 게 아니라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참 많이도 들어서 있다. 5년 전, 이 골목이 분주해지기 전부터 두 명의 젊은 여성 공예가들이 자리잡은 금속 공예방 <만듦새>는 어느새 터줏대감이 되었고, 컵 공방 <컵 스토리 Cup Story>, 주얼리 공방 <질리안 제이 케이 Jillian J.K>, 가죽 제품 공방 <닌: nin>에다가 여성들의 감성에 맞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만드는 작가들의 작품만 모아서 파는 <꼬빈이 공방>과 <at there>까지. 더하면 일일이 세기도 손이 부족할 지경이다.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지하에서 투덕투덕 수공예 시계와 액세서리를 만드는 <메탈엣린넨 Metal et Linen>. 위트 있게 꾸며놓은 좁다란 계단을 몇 발짝 내려가면 마치 스팀펑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고수들이 있을 것 같은 지하 작업실이 나온다. 이곳에서 수공예 시계가 주는 독특한 매력을 잠깐 느껴봐도 좋겠다. 마치 개화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물나무 사진관>도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곳이다.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치미를 뚝 떼는 능청스러움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이곳이 가로수길이랑 뭐가 다르겠나. 사실 이 골목은 초입부터 뚜벅뚜벅 들어오다 보면 공간을 거니는 게 아니라 마치 시간 속을 거니는 기분이다. 60, 70년대 시대극을 찍어도 괜찮을 오래된 목욕탕과 식당, 괜히 옷을 한 번 맡겨보고 싶은 수선집과 시골 읍내에서나 마주할법한 철물점에 이르기까지 괜스레 고향집을 찾아온 느낌이 들 정도다.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또 유심히 들여다 보면 골목 곳곳에 숨겨진 고택들이 적지 않다.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불교 잡지 <유심(唯心)>을 발행했던 ‘만해당’은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고, 골목 한 켠에는 인촌 김성수 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이 동네는 학교조차도 범상치 않다. 대동세무고등학교는 1925년에 처음 문을 열었고, <겨울 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진 중앙고등학교는 1908년 ‘기호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되었는데 본관, 서관, 동관이 죄다 사적(史籍)이다. 1919년 1월, 동경 유학생 송계백이 중앙고보(중앙고교) 숙직실로 교사 현상윤을 방문해, 교장 송진우와 함께 한 자리에서 동경 유학생들의 거사 계획을 알리고 ‘2.8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한 것이 계기가 되어 3.1운동이 벌어졌다고 하니 정말 말 그대로 역사의 현장인 게다.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이 곳은 역사적인 현장들조차 ‘나, 역사입네’라고 힘주지 않고 일상 속에 녹아 있고, 그 사이로 또 동시대의 감수성을 담은 문화적인 공간들이 하나 둘 스며들고 있는 공간. 그러니까 골목치고는 꽤나 능청스러운 골목이란 말이다.

박제화된 과거가 아니라 생활 공간으로 존재하는 과거가 현재와 만나 다시 한 번 새로워지는 골목,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시간의 파노라마 ‘북촌 계동길’

INFO 

1. 공방들에서는 다양한 클래스가 준비되어 있다. 수제 모자에서부터 주얼리까지.

만듦새 : 은반지, 장신구 만들기  체험 (예약제)/이외에도 취미반, 전문가반의 금속 공예 강좌가 있다. 02-747-2460

질리안 제이케이 : 팔찌 만들기 체험 (오픈 10:00~19:00 /아무때나 괜찮음), 02-3676-8140

아야 :  모자 제작 수업 (주 1회 4시간 수업 / 월수금 오전 10시~13시, 토일 오후 2~5시), 02-745-5422

 

2. 북촌의 지도를 다운로드 받고 싶다면 http://guide.jongno.go.kr/

종로구에서는 ‘동네 골목길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청운효자동, 삼청동, 부암동 등 총 15개의 코스를 만들었다.

글 박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