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멧돼지 우는 야생서 혼캠하는 전직 디자이너의 사연

‘야생·생존 캠핑’으로 유튜브서 주목 

의류디자이너에서 1인 크리에이터로

텐트 없이 산에서 1박


텐트도 없이 ‘비박’에 가까운 캠핑을 하는 여성 유튜버가 있다. 큰 배낭을 메고 등장한 주인공은 산 속에서 “오늘은 텐트없이 쉘터만으로 1박을 하려고 합니다”고 설명했다. 한밤 중엔 고라니 우는 소리와 멧돼지 돌아다니는 소리가 그대로 영상에 담겼다. 매번 자기보다 큰 배낭을 매고 험난한 여행을 혼자 떠난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유튜브 ‘리랑온에어’ 채널·아웃도어 의류브랜드 ‘리앙’ 김이랑 대표. /김이랑(리랑) 대표 제공.

유튜브 ‘리랑온에어’ 채널·아웃도어 의류브랜드 ‘리앙’ 김이랑 대표. /김이랑(리랑) 대표 제공.

김이랑(34)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대학 졸업장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입사를 해 의류 디자이너로 10년 넘게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왔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지만 코로나 여파로 생산처에 문제가 생겼다. 그때 터닝포인트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8년부터 취미로 올리던 유튜브 캠핑 영상이 알고리즘에 걸리면서 조회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 그녀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 삼아 본격 ‘1인 크리에이터’가 됐다.

‘야생·생존 캠핑’… 로망을 실천하는 일

구독자 20만. ‘리랑온에어’는 여행보다 모험에 가까운 ‘생존 캠핑’을 하는 유튜버 리랑(본명 김이랑)의 채널이다. 실제 캠핑부터 촬영, 편집까지 모두 혼자 책임진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 속에서 생존캠핑을 하고,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텐트 없이 1박, 비바람 치는 산 정상에서 캠핑하는 영상 등 모두 조회수 100만을 넘어섰다. 이렇게 모험에 가까운 야생 캠핑을 ‘1주에 한번씩’ 한다.


“오래 전부터 캠핑을 하다 보니 계속 같은 패턴이라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좀 새로운 것, 또 뭘 해볼까 하는 도전의식이 불탔어요. 제가 영화 ‘Wild’(2014)를 재밌게 봤거든요. 여자 혼자서 미 대륙을 횡단한 여행기인데 그게 제 로망이었어요. 또 외국 부시크래프트(숲과 들판에서 최소한의 장비로 생존하는 캠핑) 하시는 분들 보면 장면 하나 하나가 너무 멋있어 보이기도 했죠. 그렇게 자연에서 생존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캠핑을 시작하게 됐어요.”

영화 ‘Wild’ 스틸컷. / ‘Wild’ 공식 포토.

/김이랑 대표 제공.

-특별히 ‘혼캠’(혼자+캠핑·혼자서 떠나는 캠핑을 뜻하는 신조어)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혼자 가면 오롯이 자연을 느끼고 힐링 할 수 있어요. 또 할 수 있는 것들도 무궁무진해져요. 예를 들어 바다로 캠핑을 가면 해양 생물 체험도 해보고, 여기저기 마음 가는대로 둘러볼 수도 있죠. 그런데 동행인과 가면 이야기 하는데 초점이 맞춰지더라구요. 게다가 평일에 같이 갈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하하”


유튜브서 접하는 그녀의 캠핑지는 대부분 비바람이 몰아치고, 한파인데다 인적도 드문 지역이다. 게다가 배가 끊기면 오도 가도 못하는 섬에서 혼자 고립되기 일쑤다. 추운 날씨에 손과 발은 굳고 텐트는 바람에 날아가기 일보 직전인 가운데도 흔들림 없이 초연하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초긍정적’ 대답이 돌아왔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겠지만, 제가 밖에 캠핑 나가서 1년을 지내는 것도, 1개월을 지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힘든 부분도 ‘아 이벤트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 나의 추억 하나가 생겼는데, 경험 하나가 생겼는데 이런 느낌이죠. 평소 겁도 없는 편이어서 더 대담하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올해 초에 덕적도로 캠핑을 갔을 때가 있었어요. 1박2일을 계획하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비도 엄청 쏟아지는 바람에 고립돼서 3박4일이 됐어요. 힘듦과 행복의 극과극을 맛봤다고 해야 할까요…. 첫날은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저 혼자 화목난로 떼면서 즉석으로 굴도 캐서 구워먹고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다음날 폭풍우가 몰아쳐서 손발은 얼고, 장비는 다 날아가고, 쓰레기도 치워야해서 정말 멘붕이었어요. 날씨 때문에 택시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죠. 운 좋게 동네 주민분의 차를 얻어 타고 민박집에 가서 쉴 수 있었어요. 그 때 느낀 나른함과 행복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김이랑 대표 제공.

그녀가 고생했던 만큼 해당 영상은 조회수 100만을 가볍게 넘어섰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캠핑하는 리랑온에어 콘텐츠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인 구독자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 한국의 숨은 명소들에 관심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제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멋진 곳을 찾아가고 캠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잖아요. 그럼 외국인 구독자분들이 여기는 한국의 어디냐고 많이 물어봐요. 한국 광고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장소가 많으니까 ‘예쁘다, 아름답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수록 더더욱 한국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소개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김이랑 대표 제공.

“본인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즐거워”

리랑온에어 채널은 2018년부터 시작했지만, 구독자 수가 늘고 콘텐츠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다. 유튜브 채널 수입은 달마다 들쑥날쑥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그녀는 직장인 시절 받았던 월급 300만~400만원보다 많이 번다고 했다. 가장 많이 나올 때는 4~5배까지도 나온다는 설명이다. 혼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물어봤다.


“콘텐츠 만드는 데 구독자분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고 있어요. 좋은 코멘트도 있지만 날카로운 코멘트도 있는데 제 콘텐츠를 보시는 분들의 전반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있어요. 또 저는 캠핑을 갈 때 보시는 분들도 함께하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생생하게 현장을 담아내려고 많이 노력해요. 제가 직접 편집도 하니까 리얼함이 더 살아나는 것 같아요.”

/김이랑 대표 제공.

-캠핑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요?


“저는 고민하고 있을 때 일단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해요. 그쪽 분야에서 잘 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배워갈 수도 있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하다보면 늘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장비도 처음에는 핸드폰으로 찍고, 편집도 핸드폰 어플로 하다가 6개월 후 편집용으로 노트북 사고, 몇 달 뒤 카메라 사고 하는 식이었죠. 또 캠핑 콘텐츠는 특히 본인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힘들거나 즐겁지 않으면 보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항상 본인이 즐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야합니다. 그런 부분들을 현실성 있게 담아주시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코로나로 힘드신 분들이 많은데 앞으로도 구독자분들이 제 영상을 통해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대리만족할 수 있도록 좋은 영상을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어요. 또 제 본업이기도 하지만, 잠시 숨 고르고 있는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리앙’도 다시 진행을 하려고 합니다. 비슷비슷한 아웃도어 의류에서 벗어나 일반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제품으로 디자인 샘플링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마 가을쯤이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캠핑을 다니다 보면 특히 유명하다는 노지나 산에 쓰레기가 많은게 자주 보여요. 많은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분들이 ‘클린캠핑’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저도 그 부분에 동감합니다. 등산이나 캠핑 마무리를 끝까지 잘 하고 오면 캠핑 자체도 기분이 좋아져요. 또 다음에 다른 곳을 갔을 때 쓰레기 없이 깨끗한 곳을 가면 기분이 좋거든요. 그런 선순환 문화가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 CCBB 이은

2021.06.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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