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신들 감정 쓰레기통이냐" 화난 직장인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2년

회사원 절반 “여전히 괴롭힘 당해”

피해 신고에 가해자 두둔, 해고까지

7월16일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정부는 기업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이유로 근로자에 불이익을 주면 사용자에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했다.

tvN 제공

법안을 도입한 지 2년여가 됐지만, 많은 직장인은 여전히 직장에서 폭언이나 부당한 지시 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6월 9일 직장인 127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절반(50.1%)은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다. 괴롭힘 유형(복수응답)은 부당한 업무 지시(54.6%)가 가장 많았다. 다음은 언어 폭력(45.4%)·차별 대우(40%)·의견 묵살(32.3%) 순이었다. 직장인 10명 중 8명(77.8%)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피해자 54.6%는 괴롭힘을 당해도 참는다고 했다. 법안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직장 내 괴롭힘은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회사 규모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5월 25일 네이버에서는 40대 직원이 임원의 갑질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이 6월 7일 발표한 사건 중간조사 결과를 보면 직원 A씨는 임원 B씨에게 평소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고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2020년 8월과 9월 A씨 소속 팀원이 연달아 퇴사하자 그 해 10월 B씨는 A씨에게 “팀원 C가 퇴사하면 (A씨는) 나한테 죽어요”라고 말했다.

2020년 11월 A씨는 동료에게 “인력 충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B씨가) 팀원 이탈을 부추기고 있어 스트레스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A씨는 팀원 C가 자신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면담한 날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측은 6월 1일 임원 B씨를 직무 정지했는데, 그전까지 수차례 B씨의 갑질에 대한 제보가 있었는데도 B씨는 임원으로 승진하는 등 사내에서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네이버 노조가 임원 B씨의 갑질 사례를 밝히고 있다. /SBS 뉴스 유튜브 캡처

◇스타트업·중소기업도 마찬가지···사측이 피해자에 보복하기도

직급을 없애거나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등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장점으로 내세우는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직장갑질은 흔한 일이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2021년 1~5월 접수한 메일 제보 1014건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은 532건으로 절반이 넘었다. 괴롭힘 신고 사례 중 스타트업 상사의 폭언과 모욕이 많았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야, 너가 할 줄 아는 게 뭐냐”, “일을 어디서 그따위로 배웠느냐”, “오늘부터 밤 새워 일해 볼 테냐”고 폭언했다.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제출하라 요구하고, 연봉을 40% 삭감하거나 보직을 바꿔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 “대표의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당하다 그만둔 직원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제보도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직원을 해고하고 가해자의 편을 든 사업주가 처음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청주지방법원은 4월 6일 병원의 구내식당을 위탁 운영하는 업체 대표 D씨에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직원 30여명 규모인 이 회사에 다니던 E씨는 2019년 7월 27일 구내식당 관리자 F씨한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내용 증명을 통해 D씨에 신고했다. E씨는 상사였던 F씨에게 업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식도 벼락 맞아라”, “눈알들이 다 빠져라”는 등 폭언과 성적인 욕설을 들었다고 한다.

KBS News 유튜브 캡처

F씨에게 괴롭힘을 당한 다른 직원들이 나서서 사측에 피해 사실을 제보했지만, 경영진은 피해를 호소한 직원의 실명을 밝혀 F씨한테 보복을 당하게 만들었다. E씨가 괴롭힘을 이유로 출근하지 않고 신고하자 무단결근했다며 해고하고, 가해자에게 피해자들의 진술을 녹음한 파일을 전달하기도 했다. 가해자는 녹음 파일을 이용해 피해자 E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F씨가 받은 징계는 견책에 그쳤다. 재판부는 “사측이 피해자에게 취한 조치를 살펴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며 D씨에게 청구된 구약식 벌금 200만원을 넘은 징역형에 처했다.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개정법을 마련했다. 10월 14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벌칙을 강화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면 그 사실을 확인해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괴롭힘 사실을 조사한 사람은 조사 과정에서 안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 사용자나 그의 친인척이 직장 내 괴롭힘을 하면 1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린다.

직장인들은 이 같은 개정안을 도입해도 직장 내 괴롭힘 피해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직장인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선 “500만~1000만원 과태료를 문다고 패가망신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언제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지 의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처벌이 무서워서라도 부하 직원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분위기여야 직장 내 괴롭힘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글 CCBB 영조대왕

2021.06.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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