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사각등으로 2억7000만원 대박 낸 공무원

170여년 전 조선 왕실의 밤 잔치를 환하게 밝혔던 사각유리등이 한 공무원의 손길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박물관에 있는 사각등 유물을 누구나 쉽게 조립해 만들 수 있는 문화 상품으로 만들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남다른 의미를 더해 MZ세대를 사로잡았다. 약 6개월 만에 9200여개가 팔려나가면서 약 2억7600만원 매출을 올렸다. 최근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재청이 선정한 최우수 적극 행정 사례로 뽑히기도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 이지혜(37) 주무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이지혜 주무관. /본인 제공

-자기소개해 주세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 소속 이지혜 디자이너입니다.”


국민대 전시디자인학을 전공한 이지혜 주무관은 대학 졸업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8년간 일했다. 전시 업무를 맡아 유물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했다. 이후 시흥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간 디자이너로 2년 넘게 일하면서 청년 공간센터를 디자인했다. 청년을 위한 공간을 개성 있게 연출하는 일이었다. 일은 재밌었지만 마음 한쪽엔 아쉬움이 커졌다. 다시 전통문화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다. 2018년 4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에 임용돼 지금까지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24살 때부터 유물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유물에 담긴 역사와 가치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전시 공간을 연출하는 일이에요.


유물은 선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물건이에요. 이러한 유물을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국가 유물과 관련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보람을 느꼈고, 자부심이 컸어요. 또 유물을 직접 다루면서 많은 역사적 정보와 지식을 얻는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학술적 연구 자료를 토대로 대중에게 유물과 관련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일을 해요. 유물마다 크기, 성분, 재질, 특성이 다릅니다. 유물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고유의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게 전시해야 해요.


전시장에 유물을 그냥 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유물에 담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그래서 학예사와 긴밀하게 소통합니다. 유물을 어떻게 연출할지 함께 연구해요.


먼저 유물 위치와 구성 등을 기획하기 위해 평면도를 설계합니다. 수십번 도면을 고쳐보면서 최적의 공간 디자인을 찾아요. 이후 3D 도면으로 바꿉니다. 공간감과 입체감을 검토하면서 여러 유물이 잘 어우러지는지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또 유물이 돋보일 수 있게 공간의 색상부터 조명까지 선정하고 연출합니다. 유물을 어떤 각도로 놓아야 가장 안전할지도 연구해요. 


유물이기 때문에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에요. 전시 과정에서 유물이 훼손된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섬세하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해요. 


유물을 어떤 위치에 어떤 방법으로 놓을지부터 전시함 창이 닫히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맡아요. 이름표를 넣는 위치와 각도까지 확인합니다. 전시 중에도 끊임없이 살펴보고 위치를 조정해요. 현재 상설전시실 3개 층을 담당하고 있어요. 총 7개 실의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매일 곳곳을 다니면서 유물 전시 상황을 살펴요. 하루 평균 1만2000보 이상을 걷습니다. 전시 공간 디자인 업무 외에도 그래픽 홍보물, 박물관 안내문 등을 기획하고 담당 학예사분들과 유물 관련 미팅을 합니다.”

‘숙종대왕 호시절에’ 포스터, 왕세자책봉 옥인 등. /문화재청 공식 블로그

-맡은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요.


“작년 5월 조선 제19대 왕 숙종 서거 3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숙종대왕 호시절에’라는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역사 관련 전시는 스토리가 중요해요. 어떤 내용을 담을지 기획합니다. 당시 학예사와 협업이 잘 이뤄졌어요. 팀워크가 잘 맞았죠. 스토리 구성이 좋았고, 다함께 즐겁게 일해서 기억에 남아요.”


최근 이지혜 주무관은 문화 상품 개발에도 나섰다. ‘조선 왕실 사각등 제작 꾸러미’ 문화상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화제다. 사각유리등은 조선 왕실에서 밤에 열리는 잔치 때 연회장을 밝히기 위해 걸어놨던 유리로 만든 등이다. 조선 왕실에서 야간 잔치를 시작한 건 1828년부터다. 원래는 잔치 당일 이른 아침에 행사를 열었는데, 순조의 왕세자였던 효명세자가 밤 잔치를 처음으로 열었다. 연회장을 환하게 하기 위해 사각 유리등을 만들어 궁궐 처마에 걸었다는 기록과 그림이 1848년 의궤에 남아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 B1 왕실의례실에서 이 사각유리등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사각유리등은 작년 6월 국립고궁박물관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뽑히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 사업은 한 달에 한 번씩 박물관 블로그나 홈페이지 등에 유물을 한 점씩 소개하는 사업이다. 사각유리등을 소개하자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디자인이 예쁘다’ ‘조선 왕실에 저런 등이 있었다니’ ‘갖고 싶다’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각유리등을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소개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평소 손재주가 좋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이지혜 주무관이 홍보 제품의 기획·제작을 맡았다. 이 주무관은 고민 끝에 사각유리등을 ‘DIY(Do It Yourself·소비자가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상품) 키트’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누구나 쉽게 나무 판재, 아크릴, 스티커, LED 초를 직접 조립해 유리등을 완성할 수 있다. 실물을 비슷하게 재현하면서 크기는 가로 13.5㎝, 세로 11㎝, 높이 37.5㎝(원 가로세로 45㎝, 높이 37.4㎝)로 줄였다. 


사각유리등. /국립고궁박물관

-완성품이 아닌 제작 키트로 기획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평소 만드는 걸 좋아해요. 카드 지갑, 간단한 주방 도구, 미니 테이블 등도 직접 만들어요. DIY 등 공예에 관심이 워낙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DIY 키트를 떠올렸어요. 


물건을 직접 조립하면서 완성 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잖아요. 정성을 쏟은 물건일수록 더 특별함을 느끼죠. 직접 만드는 과정을 거쳐 상품의 소장 가치를 높이고자 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제작 키트가 더 인기를 얻은 것 같아요.


제품 디자인, 설계, 제작 등을 총괄했습니다. 작년 9월 방탄소년단이 경복궁을 찾아 공연을 촬영했을 때 이 사각유리등을 선물하기도 했어요.”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디테일한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최대한 실물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유리에 있는 꽃, 나비, 나무 등의 그림도 실제 유물에 있는 문양 그대로 가져왔어요. 색상이 훼손된 부분만 색 보정을 했습니다. 또 이 그림을 스티커로 만들어 쉽게 붙일 수 있게 했어요. 또 스티커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최대한 얇은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조명이다 보니 아크릴 투과율도 고민했어요. 실제 유물과 가장 유사한 소재와 색상을 골랐습니다. 고리 장식도 발품을 팔아서 직접 하나하나 선택했어요.


포인트는 조명이에요. 실제 유물에는 유리 안에 등잔이나 초를 꽂았어요. 비슷한 느낌을 주고 싶어 흔들리는 촛불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LED 초로 제작해 은은하면서 흔들리는 빛을 내게끔 했습니다.”


조선왕실의 밤잔치를 밝혔던 사각 유리등을 보고 개발한 ‘조립형 사각등’. 유리 안에 등잔이나 초를 꽂았던 왕실 유물과 달리 움직이는 LED 초를 넣었다. 흔들거리는 느낌을 줘 실제 촛불같이 연출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이렇게 ‘조선왕실 사각등 제작 키트’가 탄생했다. 처음엔 판매용이 아니었다. 작년 10월 문화축전 이벤트 선물용으로 1000개를 무료 배포했는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이벤트 선물을 받기 위한 신청자만 1만명이 몰렸다. 이후 상품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해 11월 문화 상품으로 제작해 판매를 시작했다. 판매 시작 이후 10분 만에 제품이 동날 정도로 품절 대란이 일어났다. 현재 5차 판매 진행중이다. 4월 7일 기준 9204개(개당 3만원)가 팔렸다. 매출은 2억7600만원에 달한다.


현재 문화재청은 이 사각등에 대해 디자인 특허 출원을 했다. 또 국립고궁박물관 현관 등 야외 조명기구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경복궁에도 설치할 예정이다. 이지혜 주무관은 지난 3월 문화재청이 선정한 1분기 적극 행정 최우수 사례로 뽑혔다.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조선왕실 사각등을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반응이 정말 좋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가 있나요.


“큰 관심을 받아서 뿌듯했어요. 얼떨떨하기도 해요. 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좋은 성과가 나와서 정말 좋습니다. 작년에 이벤트 선물을 못받으신 분들이 상품으로 꼭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이번에 상품으로 제작하고 나서 ‘문화재청이 우리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거 만든 공무원은 상 줘야 한다’ 등의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또 다른 문화 상품을 기획하고 있어요. 오는 7월 ‘안녕 모란’이라는 상반기 특별전에 맞춰 출시할 예정입니다. 전시 디자인 업무도 열심히 할 예정이에요. 하반기에 열리는 경복궁 특별전을 잘 기획하고 싶어요.


산업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가 롤 모델이에요. 인테리어, 가구, 조명, 옷, 제품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활발하게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죠. 카림 라시드처럼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요.


“많은 분께서 유물에 관해 많은 관심을 주시면 좋겠어요. ‘박물관의 이런 부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어떤 유물이 더 궁금하다’ 등 피드백을 주시면 전시 기획을 개선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글 CCBB 귤​

2021.06.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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