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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관리비 더 낼게요.. 우리 경비아저씨 자르지 마세요

by잡스엔

“XX놈아 니가 X같이 얘기했잖아. 눈깔도 X같이 떴잖아. 눈깔도. X같이 생겨가지고. 저리 꺼져. 꺼져 꺼져 꺼져. 꺼지라고 꺼져.”


6이 충격적인 욕설을 1시간 가까이 들은 사람은 지체 장애가 있는 60대 경비원 A씨였다. 지난 4월 26일 50대 여성 B씨는 경비원 A씨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폭행까지 했다. 아파트 차단기를 열어주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A씨는 큰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지난 4월 50대 여성이 지체 장애가 있는 60대 경비원에게 폭언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MBC 방송 캡처

서울시 성동구는 경비원 호칭 개선 운동을 하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

이 장면은 A씨가 가슴에 차고 있던 휴대용 카메라 ‘보디캠’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이 보디캠은 아파트 주민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경비원에 달아준 것이었다. 잊을 만 하면 터졌던 다른 아파트의 경비원 갑질 사건을 보면서 경비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월 주민 회의에서 결정했다. 또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아파트 주민들은 위로금 모금도 시작했다. 한 주민이 단체 대화방에 모금을 제안하자 “십시일반 모아보자”, “약소하지만 동참하겠다”는 글이 이어졌다. 반나절 만에 100만원 가까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아파트는 ‘착한 아파트’로 불리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간 경비원 갑질 논란에 휘말린 아파트가 많았지만, 이처럼 ‘착한 아파트’도 있다. 아직 살만한 세상임을 보여준 아파트에 관해 알아봤다.

경비원 아니라 ‘관리원’이에요

서울시 성동구는 4월부터 지역 내 아파트 146개 단지 전체를 대상으로 아파트 경비원 호칭 개선 운동을 진하고 있다. 구는 작년 9월 경비원을 대상으로 '경비원 호칭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아파트 ‘경비원’ 호칭 이미지에 대해서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새로운 호칭으로는 관리원, 보안관, 정비원 등 중 관리원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 삼환아파트에 붙은 대자보. /SBS

구는 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경비원 호칭 개선뿐 아니라 휴게시간 존중, 부당한 업무 요구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의 자존감을 높이고, 인식개선으로 상호가 존중하는 공동주택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잇따른 경비원 갑질 사건과 입주민 갑질과 폭행에 시달리다 작년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씨 사건이 계기였다. 


실제로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관리 업무를 맡은 근로자의 명찰에는 ‘관리원’이라고 적혀있다. 또 아파트 게시판에는 경비원 호칭 개선 운동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입주민들도 경비원 호칭 개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경비원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존중받아 마땅한 필수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그동안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했다. 이어 “경비원 호칭 개선 운동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주택 문화가 만들어지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관리비 더 낼게요. 해고하지 말아 주세요”

입주민이 직접 나서서 경비원의 일자리를 지켜낸 아파트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불안한 고용 상황으로 인해 경비원과 환경미화원이 해고당할 처지에 놓이자 입주민이 나섰다. 2019년 경기 하남에 있는 하남자이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은 회의를 열어 아파트 단지 내 CCTV 수를 늘리고 무인 택배함을 설치해 경비원 15명 중 5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안 입주민들은 경비원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주민투표 결과 총투표율은 79%였다. ‘경비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78.9%로 압도적이었다. 


경비원 수를 유지하기 위해 추가로 발생하는 가구당 월 관리비는 3800원 정도였다. 대다수 주민은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고작 몇천원 아끼자고 입주민을 위해 고생하는 경비원을 해고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해고를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선 입주민들로 인해 경비원들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금송힐스빌 모습. /MBC, 조선DB

작년 11월 부산 해운대구 좌동 삼환아파트도 입주민이 직접 나서 경비원의 해고를 막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어려워지자 ‘아파트 관리비가 많다’는 민원이 나왔다. 이에 관리비 절감을 위해 경비원을 8명에서 4명으로 줄이자는 투표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한 주민이 ‘사람은 비용이 아니다’는 내용의 글을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글 작성자는 “한 사람의 일터를 없애는 일은 그 사람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기에 가능한 조심하고,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경비 아저씨와 인사하는 모습이나 경비 아저씨들이 봄이면 꽃잎을, 가을이면 낙엽을 쓸어 담으며 주민의 발밑을 돌봐주시는 것을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다.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고민해 볼 수 있기 바란다”고 적었다. 


이에 다른 입주민도 답글을 적었다. “조금씩 도와서 한 사람의 일자리를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일 아닌가요” “함께 삽시다” 등의 응원 글을 남겼다. 경비원 해고 안건에 대한 입주민 찬반 투표 결과 찬성 38.2%(136세대), 반대 48.6%(173세대)였다. 안건은 입주민 75%(267세대) 이상 참여해 과반수(178세대) 찬성해야 통과할 수 있었다. 안건이 통과됐다면 아파트 관리비가 가구당 많게는 월 2만원 이상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돈보다 사람을 택했다.

투병 중인 경비원 위해 모금 활동도

아픈 경비원을 위해 주민들이 모금 활동을 한 아파트도 있다. 작년 9월 서울 서대문구 금송힐스빌에서 10년간 일한 한대수 경비원은 갑작스럽게 췌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일을 그만뒀다. 이를 안 주민들은 한대수 경비원을 위해 성금을 모았다. 88세대 중 약 50세대가 동참해 500만원 정도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주민이 찾아와 성금 하기도 했다. 

또 주민들은 한대수 경비원이 건강하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 경비원을 새로 뽑지 않기로 했다. 현재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시간표를 짜서 교대로 근무를 서고 있다고 한다. 모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주민들은 평소에도 경비원을 ‘경비 선생님’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 주민 단톡방에도 경비원을 포함할 만큼 경비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해 훈훈함을 전했다.


부산 해운대구 경동제이드 아파트도 2018년 암 투병 중인 경비원 2명 위해 모금 활동을 벌여 화제였다. 직장암과 신장암에 걸린 40대 중반의 경비원 2명을 돕기 위해 나섰다. 두 경비원은 3년 넘게 해당 아파트에서 경비와 보안업무를 담당했다. 사연을 들은 아파트 측은 동별 입구에 모금함을 설치했다. 불과 한 달도 안 돼 20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또 ‘꼭 쾌차하셔서 아파트로 돌아오세요’ 등의 응원 편지도 들어있었다. 주민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성금과 메시지를 받은 한 경비원은 감사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글 CCBB 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