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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1700억원 벌었다는 한국 최고 개발자, “사실은…”

by잡스엔

한국에서 프로그래머, 개발자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누굴까? 개발자 출신 경영자인 엔씨소프트 김택진, NXC 김정주,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대표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들이 큰 돈을 번 이유는 개발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회사를 세우고 잘 운영했기 때문이다. 개발자 출신 경영자가 아니라 순수 개발자로 가장 큰 돈을 번 사람은 김상범(54) 전 넥슨 최고창조책임자(CCO)라고 봐야 한다. 지난 2011년 넥슨이 일본에서 상장한 후 그는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가 회사 주식을 팔아 1700억원을 벌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김 이사가 10년만에 당시 실제로 얼마나 벌었는지 입을 열였다. 

김상범 전 넥슨 CCO가 2014년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초창기 온라인 게임 개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벤 제공

“사실 1700억원은 아닙니다. 처음 상장할 때 지분 평가액이 그 정도였습니다. 상장했을 때 한 번에 다 판 것이 아닙니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처분한 주식도 있고, 해외주식이라 세금도 많이 냈습니다. 실제로 통장에 들어온 돈은 그 절반 수준입니다.” 


그는 개발자로 넥슨에 들어가 회사를 떠날 때까지 게임 개발 책임자로 일했다. 한국 최고 개발자가 누군가를 따질 때 후보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바로 김상범이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개발자인 그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생 김상범은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 친구 취미생활은 세운상가에서 전자 부품 조립 키트를 사서 게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성적은 우수한 편으로 가끔 반에서 1등을 했다. 하지만 선생님과 주변 사람에게 “넌 머리가 좋은데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받았다. IQ테스트를 할 때마다 만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155점이 만점이면 155점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IQ는 모릅니다.” 그의 IQ는 일반적인 테스트로 측정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IQ 테스트 만점 그 이상, 측정 불가

하지만 이 똑똑한 학생 머리 속엔 전자회로와 전자부품, 그리고 그것으로 만들 게임기밖에 없었다. “관련 잡지에 나온 회로도를 외우고 트랜지스터나 IC회로를 사서 게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했습니다. 중1~2학년 때 영어로 쓴 전문 기술 서적도 읽었습니다.” 어떤 게임기를 만들었을까? “예를 들어 ‘자동차로 장애물 피하기’ 게임기가 있습니다. 화면 위에 자동차를 점으로 표현하고 장애물을 피해 달리는 게임이었죠. 조정은 버튼이나 조이스틱으로 했습니다.” 잡지에 나온 일본 게임기와 거의 비슷한 제품을 세운상가에서 구한 부품으로 직접 만들었다. 


부품이야 그렇다고 해도 프로그래밍은 어떻게 했을까? “하드웨어로 프로그램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트랜지스터 하나 IC칩 하나와 명령어가 대응하도록 만들었죠. 조이스틱이나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변하도록 설계했습니다. 하드웨어를 직접 조정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기계어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껏 만든 게임기를 며칠 후엔 분해해버리곤 했다. “부품 값이 몇천원씩 했습니다. 새 게임기를 만들 때마다 사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었죠. 아쉽지만 만들어 놓은 게임기를 뜯어 부품을 재활용했습니다.”


당시 그의 꿈은 컴퓨터 장만이었다. 컴퓨터가 없었을 때도 프로그래밍을 미친듯이 공부했다. 나중에 컴퓨터를 구하면 게임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1981년 중2 때 마침내 개인용 컴퓨터를 손에 넣었다. “부모님이 전교 1등을 하면 컴퓨터를 사준다고 했습니다. 다음 시험에 바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일본 샤프 컴퓨터(MZ-80)를 복제한 컴퓨터를 세운상가에서 샀습니다.” 게임에 미쳐 있던 김상범에게 신세계가 열렸다. “게임기를 만들기 위해 부품을 살 필요가 없었어요. 제작비라는 굴레를 벗어나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샤프가 내 놓은 8비트 컴퓨터 MZ-80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프로그래밍을 잘해야 했다. 프로그램 실력이 나날이 늘었다. 그는 학생 시절 이미 국내 최고 프로그래머였다. “큰 컴퓨터 경진대회 생기면 1회 대회에 다 나갔고 대부분 1등을 했습니다. 같은 대회에 2번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만든 경진대회 첫 1등상을 그가 가져갔다. 1984년 과학기술처가 주관한 제1회 전국 퍼스널컴퓨터 경진대회에선 고등학생부 1등을 했다. “삼성전자 대회가 끝나고 삼성전자 관계자가 집까지 찾아와서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 일부를 돈을 주고 사간 기억이 납니다.” 대기업이 중고등학생이 만든 프로그램을 사간 셈이다. 대학원 1학년때 현대전자가 개최한 대회에 나가 팀전과 개인전 1등을 휩쓸었다. 팀전 1등상은 5000만원 상당의 컴퓨터와 주변기기였다. 덕분에 학교에 컴퓨터실 하나가 생겼다. 

주요 컴퓨터 경진대회 1등 휩쓸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가 선택한 대학은 카이스트였다. 당연히 전산과였다. 학부시절에도 김상범은 유명인사였다. 교수가 한학기 동안 해결하라고 준 프로그래밍 프로젝트를 하루만에 끝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매 학기 그런 일을 벌어지자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대학생 시절 대학원생 조교들에게 프로그램을 가르쳤다. 학교에서 천재 공인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해외에서 모셔온 석학 교수님이 하드웨어를 조정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전산과 학생 전체 모두 심지어 교수들도 강의를 들었습니다.” 교수는 코드를 한줄 한줄 칠판에 써가며 설명을 했다. 생소한 분야라 다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고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때 그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저 부분에 에러가 있습니다.” 교수가 곧바로 실수를 인정했다. 


반면 당시 학교 서버 관리를 맡은 교수는 김상범이란 이름만 들어도 골이 아프다고 했다. “직접 만든 게임을 몇 번 학교 서버에 올렸는데 학생들이 너무 게임을 해서 서버가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중엔 후배들이 제가 만든 게임 프로그램 코드를 보고 비슷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더군요.” 남들은 공부하기도 바쁜데 취미로 게임까지 만들어 올리는 그를 친구들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보이는 것과 진실은 다르다”고 했다. 


“한 학기 공부해야 할 프로젝트을 어떻게 하루이틀에 끝내나요? 중고등학교 때 비슷한 것을 해 놓은 게 있어서 살짝 손봐서 올렸습니다. 게임도 대부분 중고등 학교 때 만들어 놓은 걸 약간 바꿔서 올렸습니다. 교수님 실수를 바로 알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중학생 때 게임기 만들 때 기계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드웨어 프로그램 언어는 기계어와 유사합니다. 기계어를 알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교수님 강의를 듣고 이해한 게 아니라 원래 알고 있던 것인데 실수하시기에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그땐 우리 나라에 기계어나 하드웨어 프로그래밍을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 하는 사람들 흔합니다.”


1990년 카이스트 전산과 대학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부 때문에 좌절을 맛봤다.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 수업을 다 들었는데 졸업 논문을 쓰지 못해 학위를 못 받았습니다. 한 분야를 진득하니 오래 파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야 받을 수 있는 게 박사학위입니다. 늘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박사 공부를 할 때 필요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뭐든 빨리 잘하는 것과 하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경지에 이르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포기하고 취직을 생각했는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넥슨 생각이 났습니다.” 


넥슨을 창업한 NXC 김정주 대표는 그와 대학원 친구다. 게임 개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넥슨을 창업할 때 같이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고 대학원에 남았다. “뒤늦게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할 생각을 하니 너무 무안했습니다. 고민하다가 어렵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마친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전화기에서 처음 흘러나온 말이 ‘여보세요’나 ‘김정주입니다’가 아니고 ‘언제부터 출근할거야?’였습니다. 계속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갈 곳이 있다고 생각이 들자 울컥했습니다.” 1998년 넥슨에 입사했다. “처음 입사하니 만들고 있는 게임 개발 팀장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게임은 이미 책임자가 있었습니다. 게임 ‘바람의 나라’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원래 개발 책임자였던 XL게임즈 송재경 대표가 회사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사실은 내가 바람의 도우미”

넥슨 사람들은 바람의 나라를 맡은 그가 며칠씩 자지도 않고 일했다고 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아침에 만들기 시작해서 그날 밤 게임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요즘 게임은 규모가 커서 불가능하지만 그땐 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넣은 다음엔 사람들 반응을 지켜본 다음 다시 게임을 고쳤다. “당시 게임을 한 분들 중에는 ‘바람의 도우미’라는 상담원 캐릭터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야, 바람의 도우미 나와’라고 하면 나타나서 이용자들 제안, 불만 등을 듣고 회사에 전달했죠. 사실은 그게 저였습니다.” 


상담원인 척하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이용자들은 상담원이 아니라 개발팀장에게 불만을 직접 이야기한 셈이다. 게임에서 나오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게임을 수정했다. 밤을 세는 일도 많았다. 말하자면 아침에 게임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해 저녁에 게임에 적용하고 이용자 반응을 보고 밤새 게임을 고쳤다. “이 사이클에 들어가면 퇴근을 못합니다. 근데 그게 너무 재밌어서 72시간 계속 컴퓨터 앞에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일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게임을 만드는 게임을 한 것 같습니다.” 그가 기획한 각종 이벤트와 퀘스트, 고객응대로 고객들도 즐거워했다. 사용자와 실시간 반응하면서 계속 변화하는 게임이라는 틀을 만든 것이다. 

1996년 초기 바람의나라 로딩화면.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그가 처음 맡았던 1998년 바람의 나라는 매출이 없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대고 1년이 지난 1999년 바람의 나라는 매출 10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바람의 나라로 천재성을 입증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람의 나라는 김정주 대표의 상상력이 낳은 작품입니다. 송재경 대표가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대학원 시절 어느 날 정주가 ‘인터넷으로 파이널판타지를 여러명이 동시에 하는거야. 재밌겠지, 죽이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파이널판타지는 일본 스퀘어사가 만든 세계적인 게임기용 게임이었다. “그때는 도저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게임은 당연히 한 명 아니면 두 명이 서로 상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여러 명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상상하기 힘든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재경이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채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채팅 엔진에 그래픽을 얹으면 구현할 수 있다’고 했죠. 둘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바로 세계 최초 그래픽 기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죠.” 

넥슨 게임 카트라이더. /넥슨 공식홈페이지 캡처

바람의 나라의 성공 이후 넥슨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일본 상장으로 일차 정점을 찍었을 때 그는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투자자로 변신했다. “직접 투자한 곳이 수십군데입니다. 아실만한 곳이라면 건강관리 앱을 만드는 눔, 뷰티 앱 미미박스 등에 투자했습니다. 또 본앤젤스, 카카오벤처스, 퓨처플레이, 스파크랩 같은 창업투자회사에도 투자했습니다. 투자한 창업투자회사가 투자한 회사까지 합치면 수백군데에 투자한 셈입니다.” 국내 최고 수준 개발자의 투자 실적은 어떨까?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 막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투자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내가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는거야’라고 묻더군요. ‘못 돌려받는다고 봐야지’라고 말해줬습니다. 원하는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 이만큼 투자하겠다고 정한 금액 대부분을 이미 투자했습니다. 아직 수익을 실현한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먹고 살 돈만 남기고 초기 스타트업 투자”

돈만 생각하면 실패한 투자다. 넥슨은 지난해 매출 3조1306억원(2930억엔)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영업이익도 1조1907억원(1115억엔)으로 역대 최대다. 말하자면 넥슨은 지금 전성기다. 넥슨 주가총액은 상장 당시 약 8조원이었다. 하지만 최근 시가총액은 30조원이 넘는다. 거의 4배가 올랐다. 만약 그가 그냥 주식을 가지고 있었으면 주식 평가액이 6000억원에 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힘든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려고 넥슨 주식을 팔았습니다. 요즘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업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투자를 시작했을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 가는대로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렇게 했습니다. 처음에 먹고 살 때 쓸 돈은 빼고 투자했습니다. 수익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투자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사업모델보다는 사람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좋아도 망할 곳은 망하더군요. 반면 비즈니스 모델은 엉성해도 창업팀이 똑똑하면 시장 변화에 맞춰 스스로 변하면서 길을 찾습니다.” 또 머리로 이해가 안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웠다. “사실 눔이나 미미박스 사업모델을 처음 들었을 때도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어도 이해 못하는 일이 점점 늘어납니다. 미래는 젊은 친구들에게 맡겨야죠.” 그가 투자한 기업 대표들에게 당부하는 것이 있다. “성공해서 투자하라고 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투자한 것처럼 나중에 당신 같은 후배에게 투자하라고 부탁합니다. 투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창업했다가 돈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개발자 후배나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예전에는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어야 열심히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고도 그때 그렇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듯하다.


글 CCBB 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