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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월세 15만원짜리 살다 월 2천 버는 전직 UDT 저격수

by잡스엔

청담 헤어샵 하움 최하능 대표

어려운 집안 형편에 19살 특수부대 입대

돈 벌려 시작한 미용업 월 매출 8000만원

4시30분 출근 “워라밸 따지면 성공 못해”

“월급 50만원 받던 스탭 시절,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출근하고 밤 11시에 퇴근했어요. 자정까지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집에 가면 새벽 1시였습니다. 지금도 헤어 디자이너는 고3 수험생이라 생각해요.” 

최하능 하움 대표. /jobsN

19살 소년은 대학교 입학 대신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남들이 학교에 다닐 때 돈을 벌어야 했다. 돈 문제가 해결이 안 되자 전역을 결심하고 헤어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꿨다. 마산의 보증금 200만원 방을 빼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서울 청담동을 찾았다. 스물셋 막내 스탭은 11년 뒤 억대 연봉을 버는 청담 헤어샵 원장님이자 구독자 5만명을 보유한 유튜버가 됐다. 아직은 더 달리고 싶다는 청담 헤어샵 하움 최하능(34) 대표를 만났다.

◇억대 연봉 번다는 말에 선택한 미용 일

-UDT 출신 헤어 디자이너다. 이력이 독특한데.

“19살이던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해군 특수전전단(UDT·Underwater Demolition Team)에서 복무했다. 공격팀에서 1년 정도 있다가 저격수로 발탁, 3년을 보냈다. 소말리아로 파병을 가 해적 소탕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공부는 잘 못 했지만, 운동은 조금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체대 입시를 준비했다. 한체대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다른 곳은 붙고 한체대만 떨어졌다. 집안이 재수할 형편도 아니었고,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직업군인을 알아보다 UDT라는 부대를 알았고, 지원했다. 선택받은 극소수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제대를 결심한 계기는.

“집안 형편 때문이다. 군인 월급으로 나 혼자 먹고 살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가족까지 도와야 하는 상황이라 힘에 부쳤다. 이 일을 하면서 평생 먹고 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미군이랑 함께 훈련할 때가 많았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월급을 4배 이상 받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부대에서 하는 고생만큼 사회에서 노력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전역하기로 했다.” 

-돈을 많이 버는 일로 미용을 택했다. 이유가 있나.

“이렇게까지 오래 미용을 할 줄은 몰랐다. 트레이너를 할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복무할 때 우연히 청담동 헤어 디자이너가 억대 연봉을 벌고, 빌딩도 몇 채씩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용에 관심이 가던 찰나에 톱 헤어 디자이너 차홍 원장님이 출연한 방송을 봤다. 저 사람에게 미용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하기 전부터 조금씩 준비했다. 미용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땄다. 부대에서는 이발병한테 어깨 너머로 실무를 배웠다.”

jobsN

-전역하자마자 청담동으로 올라왔다고 들었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자취방에 살고 있었다. 방을 뺀 뒤 이것저것 경비를 쓰고 남은 돈이 150만원이었다. 이 돈과 캐리어 하나를 끌고 서울로 올라와 차홍 원장님을 찾아갔다. 사실 그때는 미용 업계에 대해 잘 몰랐다. 이력서를 써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업장을 찾아가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일을 배울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무작정 찾아간 날이 하필 차홍 면접 날이었다. 처음에는 이력서를 쓰지 않았으면 지원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5개월 뒤 채용이 있으니 그때 지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총 3번을 전화해 면접 기회를 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마침 마지막에 다른 직원이 전화를 받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작정 미용실에 찾아갔다.

이런 행동이 자칫 버릇없어 보일 수 있지만, 다행히 원장님이 좋게 봐주셨다. 미용실을 찾아온 자초지종을 듣고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 곳이 없어 모텔을 잡든 인천에 살던 UDT 동기의 집에 신세를 지려 했는데, 회사 근처 기숙사에 바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2009년 말 23살 나이에 미용 일에 뛰어들었다.”

◇매일 새벽 4시 30분 일어나 출근···부족한 수입에 헬스장서 알바도

-막내 시절은 어땠나.

“일 배우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군기 때문에 힘들었다. 선배들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고등학교 때 일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다. 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군기가 군대랑 비슷했다. 자신감으로 넘쳤던 20대 초반이라 목소리도 크게 내고 했다. 한 마디로 좀 튀는 애였다. 이를 마음에 안 들어하던 선배들이 몇 있었다. 그래서 반말로 싫은 소리를 하거나 따로 불러서 혼내기도 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치열하게 일을 배웠다고.

“어디에서 남보다 3시간 일찍 시작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미용실이 오전 9시에 문을 열면 청소를 시작한다. 그래서 새벽 6시에 출근해 매장 문을 열고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른 사람이 문을 여는 게 아닌가. 경쟁심이 붙어 새벽 5시 30분에 출근하다 어느 순간 출근 시간이 5시로 바뀌었다.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했다. 아침 9시까지 개인 연습을 하고 매장 일이 오후 8~9시에 끝나면 혼자 2시간 더 연습하고 오후 11시에 퇴근했다. 일이 끝나면 곧장 헬스장으로 가 1시간 운동했다. 집에 와서 자리에 누우면 새벽 1시였다. 그게 하루 일과였다.

처음에는 스탭(인턴)으로 근무했다. 월급이 80만원이었다. 기숙사비나 식비 등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은 50만원대였다. 헬스장에 갈 돈이 없었다. 헬스장 마감 시간이 자정 무렵이었는데, 관장님께 헬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테니 운동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니 운동이 끝나고 청소하고 문을 닫고 가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4년 반을 보내고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디자이너는 고객을 직접 받아 머리를 할 수 있다. 스탭은 디자이너를 옆에서 돕는 보조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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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로 승진하면 수입이 늘지 않나.

“디자이너가 된 뒤에도 월급은 2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디자이너로도 4년 반을 일했는데, 기본급이 150만원이었다. 첫 2년은 많이 받을 때 250만원 정도 벌었다. 마지막 2년 6개월은 개인 매출이 잘 나왔다. 월 매출이 1000만원대 이하였는데, 어느 순간 3000만~4000만원대로 올랐다.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여신머리’로 알려진 긴머리 웨이브펌 시술 사진을 올렸는데, 이걸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급격하게 늘었다. 마지막에는 월 매출 5000만원대 이상을 찍었다. 월 매출과 수입은 다르다. 미용실마다 다른데, 인센티브로 매출의 28~45%를 받는다. 많을 때는 1년에 2억~3억원을 벌었다.”

-차홍에서 9년을 보내고 2019년 3월 독립했다.

“회사 인사 시스템이 바뀌어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약서에 같은 업종으로 매장 근처에 샵을 열지 못하는 조항이 있어 잠깐 다른 미용실에서 일하다 2019년 3월 하움을 열었다. 하움을 열고 한때 월 매출이 8000만원까지 올랐다. 많을 때는 하루에 손님을 25명까지 받았다. 그런데 몰리는 손님을 다 받으니 손님들의 만족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일일 10팀 정도만 시술해드리고 있다. 매장에서는 나를 포함해 디자이너 8명이 일하고 있다. 스탭이 13명, 매니저가 1명이다.

-군인 시절보다 수입이 크게 늘었다. 그런데도 소비에 신중한 편이라고.

“일부러 안 쓰는 건 아니다. 사실 한 달에 통장에 2000만원씩 들어오면 물건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원래 소비를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옷도 그렇고, 멋진 차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도 마찬가지다. 돈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부가적인 수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이 일을 하게 해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벌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인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좋은 차에 큰 돈을 써도 상관없겠지만, 돈을 쓰지 않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용 용품을 파는 쇼핑몰도 시작했고, 다른 투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어쨌든 큰 돈을 만지기 위해 미용을 시작했으니 목표는 이룬 셈인데.

“면접 때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런데 돈이 없어본 사람은 돈이 없으면 얼마나 힘든지 너무나 잘 안다. 나는 직원 면접을 볼 때도 돈에 대한 목표가 있는지를 본다. 아무리 어떤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언젠가 열정은 식는다. 그때 이런 목적이 없으면 쉽게 내려놓게 되고, 때로는 무너진다. 나는 어린 직원들한테 ‘아무리 일이 좋아도, 돈이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나쁜 게 아니다. 물론 돈만 잘 벌면 된다는 마인드는 지양해야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처음엔 돈을 벌고 싶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10년 넘게 일하는 동안 미용에 대한 애정과 꿈이 더 커졌다. 주변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면서 일에 대한 사랑과 욕심이 더 커진 것 같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가장 싫어한다고 들었다.

“워라밸이 필요하다는 직원은 안 뽑는다. 일반 회사나 공공기관과 미용 업계는 근무 환경 자체가 다르다. 공무원이 퇴근 이후 여가를 즐기겠다는 건 결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기술이 필요한 업계에서 워라밸을 따지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일과 삶을 구분하면 일과 삶이 하나인 사람과 경쟁 자체를 할 수 없다. 나는 직원들이 다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을 삶에 스며들게 하라고 이야기한다. 일이 즐거우면, 그 삶이 더 즐거운 것 아닌가. 굳이 일은 힘든 거라고 못박아 놓을 필요가 뭐가 있나. 미용은 원래 즐거운 일이다. 손님 머리를 해 드리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시술이 잘 끝나 손님이 기뻐하면 직원도 뿌듯하다. 그러면 고객이 단 1명이라도 디자이너는 즐겁다. 그 일을 잘하려고 개인 시간을 투자해 연습하는 게 잘못된 일인가. 우리는 항상 고3 수험생이라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 워라밸은 어느 정도 무언가를 이루고 난 뒤에 즐겨도 늦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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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제 워라밸을 누려도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지금 멈추면 나는 여기에서 끝이다. 더 못 올라간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 5시 30분에 눈을 떴다. 굳이 일찍 나올 필요가 없지 않나. 사람이기에 당연히 ‘조금 더 잘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런 마음과 매일 싸운다. 평소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오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나온다. 이 루틴을 멈추면 나는 여기까지인 거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정점에서 떨어질 거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가난 때문에 방황하는 청년에게 조언 한 마디 해달라.

“친구들을 집에 못 데려올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가 아르헨티나에서 7년 정도 살았다. 그때는 주변 사람들이 다 돈이 없으니까 가난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매일 라면만 먹고 살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았다. 취약계층이라 학교 다닐 때 급식비는 물론이고 교복이나 학비도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그런데 내가 잘 될 수 있던 이유는 가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형편이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안 살았을 거다. 돈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은 것도, 돈이 없으면 얼마나 삶이 비참한지 배운 것도 가난 덕분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돈 때문에 불행해질 수는 있다.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당장 힘든 친구들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난 힘들어 죽겠는데, 뭐라는 거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 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가난을 겪은 사람만큼 돈에 대한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걸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이 없으면 조금씩 모으는 재미도 있다. 남보다 돈 버는 재미도 크다. 당장은 모르겠지만, 남보다 더 강한 멘탈을 다지고 있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은. 

“취약계층 출신이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다. 금전적인 지원을 하기보다, 교육기관을 세우고 싶은 꿈이 있다. 현재 서울 강남구청을 통해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취약계층 학생 30여명을 뽑고 있다. 미용 교육을 지원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미용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거다. 전 세계에 하움이란 헤어샵을 열고, 제품도 판매하고 싶다.”

글 CCBB 영조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