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만 마시던 노인을 후회하게 만든 남자

[비즈]by 잡스엔

퇴사 후 직접 로스팅 공부

5년 간 운영한 커피트럭, 다큐멘터리 제작

“누구나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었으면”

“철이 없었죠. 커피가 좋아서 유학을 하러 갔다는 자체가.” 개그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제작하는 B대면 데이트 시리즈 중 카페 사장 최준의 유행어이다. 서울 연남동에는 이 유행어와 비슷한 삶을 산 카페 사장이 한 명 있다. 퇴사 후 보금자리로 정한 제주도에 카페가 몇 개 없자 로스팅을 직접 배웠다. 좋아하는 커피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 카페를 돌아다니며 사장님 어깨 너머로 커피를 배우고 책으로 커피 지식을 공부했다. 사람들과 커피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고 싶어 5년 동안 커피트럭 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연남동에 정착해 커피 오마카세(주방장 특선)를 제공하고 있다. 바람커피 대표이자 바리스타 이담(55)씨의 이야기다. 구체적인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바람커피 원두 상점을 방문했다.

바람커피 이담 대표 사진. /와이낫

◇ 직장 그만두고 택한 제주도서 커피 공부 시작

-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18년 6월9일 문을 연 바람커피 대표이자 바리스타입니다. 카페 3주년인 2021년 6월 9일 바람커피 원두상점을 추가로 열었어요. 지금은 주로 원두상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 바리스타 활동 전 어떤 일을 했나요.

“컴퓨터 관련 잡지사에서 직장을 다녔어요. 원래 전공이 컴퓨터는 아니었어요.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좋아 잡지사를 택했어요. 1991년도에 입사해 직접 프로그래밍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10년 가까이 일했죠. 그러다 2000년에 벤처(창의적 아이디어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붐이 일어났어요. 주변에서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믿고 벤처기업을 시작했죠. 창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터라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투자하기로 한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운영이 어려웠어요. 생계를 위해 사이트 개발을 대행하는 인터넷 에이전시 회사를 다니기도 했지만 적성과 맞지 않아 결국 퇴사했습니다.”

-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를 갔어요.

“직장 생활할 때 잠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곳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어요. 퇴사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겨 제주도에 오래 있어야겠다고 결심했죠. 2003년도에 제주도로 내려갔는데, 당시 제주도는 지금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자연 경관도 아름답고 여유가 있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2013년까지 약 10년을 살았네요.”

- 커피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요.

“서울에서 지낼 때 커피는 일상에서 당연한 존재였어요. 그런데 제주도는 카페가 많이 없더군요. 제주시에 카페가 몇 개 있는 정도라 제가 살던 교외 지역은 커피를 마시기 어려웠어요. 몇 개월 간 커피 없는 생활을 이어가다 참지 못해 직접 자급자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로스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어떻게 커피를 배웠나요.

“책을 읽으면서 기본 커피 지식을 쌓았어요. 인터넷으로 조사도 하고 커피 동호회에 참여해 커피를 배웠죠. 책으로 공부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제주도에 있는 카페 여러 곳을 찾아갔어요. 사장님들께 커피를 얻어 마시며 귀동냥으로 실전 로스팅 지식을 배웠어요. 업계 선배들이 저에겐 스승 같은 존재예요. 무언가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면, 관련 종사자를 찾아가 질문하는 걸 추천해요.”

커피트럭 풍만이와 이담 바리스타. /본인 제공

◇ 5년 동안 커피 트럭 운영···다큐멘터리까지 제작

- 커피 트럭으로 5년 동안 유랑을 떠났다고요.

“제주도에서 산 지 10년이 흐르니 섬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도에서 잠깐 카페를 운영했었는데, 카페 손님들이 보통 타 지역 여행자들이었어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못 가본 곳이 많다는 걸 깨달았죠.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요. 전국 여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해 카페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트럭 한 대를 마련했어요. 그렇게 2013년 7월 좋아하는 커피를 함께 하는 여행을 떠났어요.”

- 커피 트럭은 어떻게 운영했나요.

“길거리에서 커피 판매를 하는 건 기존 상권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따라서 커피 모임을 상대로 커피트럭을 운영했어요. 예를 들어 강원도를 간다고 하면, 이동 전 미리 강원도 일정을 잡았어요. 북카페 모임, 지역 축제 등이 열리는 곳 말이에요. 1인당 회비 1만원을 내면 여러 원두 커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었어요. 트럭 뒤칸에서 가스불로 로스팅하고 핸드드립 커피를 제공했습니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그 지역을 구경했죠. 한 지역에 짧으면 3일, 길면 한 달 정도 머물렀어요. 한 번 다녀오면 1주일 쉬고 다시 출발하는 형식으로 5년 간 이어갔죠. 강릉·춘천·부산·통영·속초 등 전국을 다녔어요.”

- 생계 유지가 어렵진 않았나요.

“여행 초기에 은행 잔고가 몇 십만원뿐이었어요. 처음부터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기름 넣을 정도만 버는 게 목표였어요. 당시 커피 한 잔이 5000원이니까 하루 10잔을 팔면 유지가 되겠거니 생각했죠. 막상 시작하니 10잔도 못 파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도 굶어 죽진 않았어요. 트럭이다 보니 월세 걱정이 없었어요. 잠도 트럭에서 해결할 수 있었고요. 유랑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많이 챙겨주기도 했고요. 또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휴식기를 가졌어요. 커피트럭에 에어컨이 없었거든요. 휴식기 동안에는 제주도에 마련한 동굴커피에서 머물며 커피 공부도 하고 다음 지역을 기다렸죠.”

- 어떤 일이 기억에 남나요.

“커피 트럭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여행 1년 차에 한 감독이 제 커피 여행기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여름까지 1년 동안 일어난 일을 담았어요. 제8회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첫날 매진이 되기도 했죠.

시골에 갔을 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만난 일도 떠오르네요. 믹스커피만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신 분들이 제 커피를 맛있게 마실 때 행복했어요. 또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지역 카페 사장님들과 친해져 인맥이 생겼죠. 우연히 만난 손님이 따로 출장을 요청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통영에서 만난 시인 친구가 기억에 남아요. 친해져서 집에도 놀러 갔어요. 나중에 그 친구가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상도 받았더라고요. 코로나19가 끝나면 저희 카페에서 도자기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요.”

- 커피 트럭을 운영해보니 어떤가요.

“ 여행을 다니면서 커피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어요. 커피는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커피를 마신 사람들 반응이요. 커피는 사람이 마시는 거잖아요. 사람들의 표정이 중요해요. 맛있는 커피를 마셨을 때 지어지는 기분 좋은 미소를 확인해야 해요. 사람들 반응을 직접 경험하면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커피를 만드는 방향이 잡혀요. 저도 처음 커피 트럭을 시작했을 대는 커피 맛이 거친 편이었어요. 5년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맛이 부드러워졌죠. 책도 쓰고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커피 트럭 여행으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뤘어요.”

이담 바리스타의 커피 트럭 여행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포스터. /본인 제공

◇ “손님과 커피에 대해 깊이 교감하고파” 바람커피 열어

- 5년 만에 연남동에 정착했어요.

“트럭 구조상 쪼그려서 커피를 내려야 했어요. 시간이 흐르니 무릎과 허리가 아프더군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죠. 언제까지고 여행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또 사람들과 더 깊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한곳에 정착해서 매장을 열어야 할까 고민했죠. 그러던 찰나 후배 한 명이 괜찮은 자리가 나왔다며 제게 연남동 카페 창업을 제안했어요. 골목에 위치한 곳이라 입지가 좋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커피를 추구하는 편이 아니라 괜찮았어요. 또 연남동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힙한 곳으로 통해 기본적인 유입 인구가 보장되기도 하고요. 큰 걱정 없이 연남동에 정착해 바람커피를 차렸어요. 제주도하면 바람이잖아요. 제주도에서 커피 공부를 시작했고 제 인생도 바람과 닮아 있어 바람커피라고 이름 지었어요. 수익보다는 커피와 사람이 좋아 발걸음이 닿는 대로 살았거든요.”

- 바람커피는 어떤 카페인가요.

“바람커피는 커피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요. 보통 카페는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 자동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추출한 뒤 손님에게 건네면 끝이에요. 저희는 먼저 손님에게 선호하는 맛을 물어보죠. 그리고 취향에 근접한 원두를 몇 개 추려 소개해요. 향도 맡아보도록 하고요. 원두마다 맛과 향이 달라요. 바람커피투어라는 메뉴를 시킬 경우 여러 원두를 이용해 커피를 여러 잔 제공해요. 일식집 오마카세처럼요.

공부하는 공간이나 지인과 이야기 나누는 공간보다는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인 거죠. 커피는 정서를 건드려요. 누군가는 정신이 깨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아늑해지는 기분을 경험하기도 해요. 커피에서 나오는 맛과 향으로 감정을 교감하는 곳입니다. 또 원두도 따로 판매해 직접 매장에 방문하지 않아도 저희 커피를 맛볼 수 있어요.”

- 일반 카페와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세 가지로 커피 종류를 나누고 있어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커피(브라질, 견과류 맛과 부드러운 단맛)·꽃처럼 향기로운 커피(에티오피아, 신맛과 과일 맛)·전투력을 키워주는 커피(묵직한 바디감이 느껴지는 쓴맛). 때마다 취급하는 원두가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5~20가지 원두가 있어요. 손님 정서에 맞는 커피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요.

만드는 방법도 개선을 했어요. 기존 드립백은 용량이 대부분 7g이에요. 많으면 10g이죠. 하지만 12g은 써야 맛이 풍부하게 우러나와요. 커피 양을 늘려 판매 중인 드립백 맛을 개선했어요. 좋은 생두를 써서 로스팅을 바로 하고 오래 사용하지 않는 건 기본이고요. 더치커피 메뉴의 경우 추출 시간을 신경 써요. 더치커피는 냉수로 커피를 내리다보니 핸드 드립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요. 같은 원두양으로 많은 커피를 뽑기 위해 과추출하는 경우가 있어요. 과추출은 커피에서 퀴퀴한 맛이 나도록 만들어요. 여러 번 테스트를 거쳐 적절한 시간을 찾았어요.”

- 외교부에서 찾기도 했다고요.

“2019년 10월 외교부로부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홍보차 커피 트럭 운영 요청을 받았어요.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강경화 장관도 방문해 커피를 마시기도 했어요. 전국 행사장을 다녔는데 외교부에서 고맙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기세를 몰아 커피 농장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해 라오스에서 커피 농장을 알아보기도 했죠.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기존 계획을 다 취소했어요. 영업 제한도 걸리고 버티자는 마음으로 운영했죠.”

- 코로나19로 매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 원두상점을 추가로 연 이유는요.

"오프라인 매장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어요. 좌석이 다 차면 추가적인 판매가 어렵죠. 손님이 카페에 오래 머물 경우 회전율이 떨어져 그만큼 매출이 줄고요. 하지만 오프라인 공간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해요. 따라서 온라인으로 추가 매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 말에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했죠. 온라인으로 원두를 판매하는 만큼 로스팅 공장을 따로 마련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원두상점을 차린 거에요. 로스팅 공장를 운영하는 김에 시음이나 테이크아웃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어요. 본점이 골목에 위치해있다 보니 이번 기회에 길목에 나와 손님들에게 노출도 시키기도 하고요."

문섭 일러스트 작가와 협업한 포장지에 원두를 판매하고 있다. /와이낫

- 핸드 드립 커피를 고집하는 이유는요.

“핸드 드립은 깔때기 모양의 드리퍼에 간 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 추출해요. 이름처럼 만드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들어가요. 에스프레소 기계를 싫어하진 않아요. 매장마다 필요한 게 다른 거죠. 회전율이 빨라야 하는 곳은 에스프레소 기계가 효율적이에요. 저희는 커피의 맛과 향에 집중하기 때문에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있는 겁니다. 핸드 드립은 원두 굵기나 추출 시간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나거든요. 블렌딩(특성이 다른 2가지 이상 생두를 혼합해 만든 커피)도 자동 기계보다 자유로워요.”

- 바람커피 오픈 이후 언제 가장 보람을 느꼈나요.

“제가 만든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통해 보람을 느껴요. 커피와 맞지 않는다는 손님이 커피를 마신 뒤 커피에서 이런 맛도 나냐며 놀라는 모습을 보면 가장 뿌듯해요. 평소 커피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본 뒤 답변해준 맛과 다른 원두를 골라 커피를 제공하거든요. 로스팅 시간이 과하거나 원두 신선도가 떨어질 때 탄 맛과 쓴맛이 강해요. 저희는 원두를 대량으로 만들지 않고 핸드 드립으로 내리다 보니 맛이 부드럽고 차 같이 느껴져요.”

- 반대로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커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손님이 취향과 상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된다고 이야기할 때 속상해요. 원두 이야기도 하고 손님에게 맞는 커피 선택지를 제시하고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거든요.”

-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한국은 커피 섭취량은 높은 편이지만 프랜차이즈 카페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다양성이 부족해요. 모두가 각자 취향에 맞는 커피를 선택해 마실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따라서 새로 연 원두상점과 원두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집에서도 저희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도록요. 저희 원두를 쓰는 카페도 늘어나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어서 커피를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을 만나 제자로 키우고 싶네요.”

글 CCBB 이도형 인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 중인 이담 바리스타. /와이낫

2021.06.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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