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는 그대로, 주4일 근무해 보니…뉴질랜드 창업자 "회사 실적, 직원 만족도 모두 올랐다"

[자동차]by 중앙일보

뉴질랜드 최대 부동산 투자신탁회사

앤드루 반스 설립자 이메일 인터뷰

근무 일수 줄었지만 실적 오히려 개선

특권 아닌 선물이라 여겨 헌신할 준비

업무 집중, 리더십 등 모든 지표 긍정적

韓 주 52시간 격려…심도 있는 논의 필요


1753시간.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뉴질랜드 근로자 평균 근로시간이다. OECD 회원국 평균(1759시간)을 밑돈다. 한국(2024시간)과 비교하면 271시간 적게 일했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으로 같지만, 초과 근무에서 양국의 현실이 갈린다. 한국은 초과 근무가 일상이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주5일 근무가 대부분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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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 근무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자발적으로 주 4일 근무를 시도한 뉴질랜드 기업이 있다. 뉴질랜드 최대 부동산 투자신탁회사 '퍼페추얼 가디언' 이야기다. 이 회사는 지난 3월부터 8주 동안 직원 240명을 대상으로 근무 일수를 주 5일에서 4일로 줄이는 실험을 했다. 급여는 주 5일 치를 그대로 지급했다.


이 회사 티마루(뉴질랜드 남쪽 도시) 지점에서 고객관리 매니저로 일하는 엘리스 갬블린도 이 실험에 참여했다. 쌍둥이 엄마인 엘리스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확실히 늘었고 두 아들의 소프트볼 게임도 직접 코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같이 작은 지점에선 근무 일수 감소가 부담일 수 있지만 비슷한 규모의 넬슨(뉴질랜드 남섬) 지점과 협력이 훨씬 강해졌다. 동료와의 교류와 지원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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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페추얼 가디언 직원인 엘리스 갬블린(왼쪽)은 주 4일을 근무하고 5일치 급여를 제공하는 회사에 실험에 참여한 뒤 큰 만족을 느꼈다. [퍼페추얼 가디언]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근무 일수는 줄었지만, 업무 성과는 오히려 올랐다. 대부분 부서에서 실적이 실험 전보다 좋아졌다. 직원들의 생산성이 올라간 덕분이다.


이 회사 설립자이자 대표인 앤드루 반스는 이번 실험을 회사 정책으로 정식 도입할 계획이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해 "격려한다"면서도 "근로 관련 정책은 사회 구성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반스 대표와의 일문일답.




Q : 이런 실험을 기획한 계기는 무엇인가.


A :

"직원이 주도하는 토론을 강화하고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노동 유연성과 늘어난 개인 시간이 업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실험이 목적과 부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계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오클랜드대 재러드 하르 교수는 정량 분석을, 헬렌 딜레이니 박사는 정성 분석을 맡았다."


Q : 근무 일수 줄이기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근거는.


A :

"실험 결과는 모든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평가 항목은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워라밸), 업무 참여도, 조직 집중도, 그리고 동기 부여였다. 모든 항목이 정성 평가와 정량 평가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근무 일수는 줄었지만, 실험 기간 회사 실적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은, 대부분 팀에서 실적이 오히려 좋아졌다."


Q : 업무 생산성이 개선됐다는 지표가 있나.


A :

"근로자가 업무에 얼마나 참여했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의지가 있는지 보여주는 '업무 참여(Work Engagement)' 항목을 평가해보니 79%에서 84%로 향상됐다. 이는 업무 성과와도 강하게 연결돼 있다. 직원이 리더의 의사소통 능력과 자신감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여주는 '리더십' 항목은 64%에서 82%로 개선됐다. 직원의 헌신도를 나타내는 '조직 집중도(Organizational Commitment)'는 68%에서 88%로 좋아졌다. 직원들은 일에 더욱 고무됐고(66→84%),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68→86%)."


Q : 직원들이 어떻게 달라졌나.


A :

"전반적으로 직원 간 팀워크가 강해졌다. 서로 도우려는 의지가 커졌다고 한다. 간혹 직원이 부재중인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부서는 정보 공유나 업무 이양 기능이 강화됐다고 느꼈다. 일부는 '중요인물(key person) 위험'이 줄었다고도 했다. 중요 인물 위험은 조직에서 핵심 인물이 빠지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말한다."


Q : 직원들 태도에서 두드러진 점은.


A :

"많은 직원은 줄어든 근무 일수가 정당한 권리라기보다 특별한 선물, 또는 특권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회사에 감사와 선의를 갖게 됐고 '회사에 뭘 더 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근무 일수가 줄어든 이후 많은 직원은 쉬는 날에도 일할 용의가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Q : 이번 실험을 실제 회사 정책으로 반영할 계획인가.


A :

"이번 실험을 통해 주 4일제가 회사에 도입 가능한 정책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어떤 방식으로, 또 어떤 팀에 먼저 주 4일제를 도입할지 이사회 및 인사부서와 논의 중이다."


Q : 이번 실험이 다른 조직, 나아가 다른 나라에도 도입 가능하다고 보나.


A :

"다른 회사 또는 정부가 근로 정책을 바꾸거나, 논의하지 않을 만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우리 경험으로 봤을 때 각국 정부는 근로자의 업무 관련 정책을 여러 가지로 실험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같은 이유에서 기업들은 보유한 최고 인적자원에서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뭔가 급진적인 실험을 하는 편이 좋다고 본다. 유연한 노동 정책은 근로자를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또 가족과 친밀하게 만들 수 있다."


Q : 뉴질랜드 사회에서 일반적인 '워라밸'은 어떤가.


A :

"일부 업종과 직장에선 하루 안에 끝내야 할 일정 분량의 업무가 있다. 예를 들어 소는 하루에 두 번 젖을 짜줘야 한다. 그러나 농장에 새 기술이 도입돼 투입해야 할 사람의 노동력은 줄어들 수 있다. 퍼페추얼 가디언에도 분명 특정 업무를 끝내야 하는 데드라인은 존재한다. 그러나 근로자가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업무 방식을 바꿀 여지는 충분히 있다. 이것은 인력 배분 구조 혹은 균형 잡힌 생산성 목표에 대한 얘기다. 우리 실험이 다른 조직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그곳 역시 직원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Q : 한국은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아직 혼선이 많은 데 성공하리라고 보나.


A :

"한국 정부의 시도는 손뼉 쳐줄 만하다. 근로 정책은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구성원 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정책이 바뀌면 사람들이 갖는 기회 역시 바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인과 정책 입안자는 더욱 창의적이어야 하며, 생산성과 업무 기여도 증가 등 증거에 입각한 변화에 귀 기울여야 한다."


Q : 근로 시간이 달라지면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A :

"생각해 볼거리가 많다. 부모가 줄어든 근무 시간 만큼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이것은 나쁜 일일까.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근로자의 정신 건강은 나아질까. 근로자 5명 중 1명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숫자를 줄이는 것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재택근무가 늘면 사무실 규모는 줄어들까. 혹은 도시 설계가 달라질까 등의 질문이다."

☞ 앤드루 반스 퍼페추얼 가디언 CEO는


맥쿼리, 씨티은행 등에서 근무하며 경영인으로서 경력을 쌓은 뒤 베스틴베스트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두 신탁회사인 퍼페추얼 트러스트를 2013년, 가디언 트러스트를 2014년 인수해 퍼페추얼 가디언을 설립했다. 뉴질랜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자산 관리 규모가 1400억 달러(약 157조원)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 가족도 고객으로 뒀다. 장기 투자 및 가치 투자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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