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음식도 신문처럼 ‘정기 구독’…자가격리 시대의 변화

[더오래]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89)

사회활동을 할 곳이 없다. 집에 머무는 게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 하고 성당, 평생학습관, 도서관, 수영장 등은 방역 때문에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니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


가끔 시간 내서 친구를 만났지만 이제 상대방 입장이 어떨지 몰라 먼저 연락하기 꺼려진다. 따라서 집 안이 직장이고 바깥이 휴식과 교류의 공간이던 우리 부부는 자동으로 자가격리 상태가 되었다.


물론 집에서도 사회활동이 충분하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강좌가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줌’이란 것도 해봤고, 은행 업무는 이체뿐 아니라 계좌개설까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일거리도 온라인으로 오간다. 전자서명 계약부터 피드백 주고받고 계좌에 수입이 입금되는 순간까지 담당자를 볼 일이 없다. 코로나가 물러나도 한번 구축한 비대면 방식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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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클래스e는 각계의 명망 있는 전문가가 나와서 인문학이나 시사에 대해 깊이 있는 강의를 해주는데, 아무 데서나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어 좋다. [사진 EBS 클래스e 화면 캡처]

활동의 변화는 나의 소비생활 형태마저 바꾸었는데 크게 세 가지를 느낀다. 첫째, 온라인 소비와 오프라인 소비가 확실히 나뉘었다. 우선 쇼핑은 거의 온라인 영역으로 들어왔다. 대형마트에는 사람도 많고, 카트 손잡이도 꺼려져 인터넷 쇼핑을 하기 시작했는데, 온라인 몰에는 ‘이런 게 배송이 가능해?’ 하는 것이 다 있었다.


그러니 현금을 만진 지 오래다.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의 ○○페이 같은 것으로 결제하고, 현금은 가끔 새벽시장에 갈 때만 준비한다. 그렇지만 밥이나 커피는 가급적 나가서 해결한다. 시에서 발행한 지역 화폐의 할인 혜택 덕분에 해 먹는 거나 사 먹는 게 큰 차이 없고, 발행 의도대로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한산한 시간대에 동네 식당이나 카페를 찾는다. 바깥바람 쐬는 유일한 시간이다.


둘째, 시장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취미와 지식 콘텐츠에 대한 구매가 늘었다. 혼자 시간 보낼 방법이 필요했나 보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나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 인터넷 EBS 클래스e의 유료회원으로 가입했다. ‘국가가 운영하면서 왜 돈을 받나?’ 싶었지만 월 8900원으로 인문학, 시사, 건강, 재테크 등 전 분야 강의를 아무 때나 마음껏 들을 수 있어 좋다.


일상에서 돈 주고 사는 ‘보이지 않는’ 품목은 꽤 많았다. 우리 집만 해도 정액제로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유료 음악 앱을 통해 노래를 듣거나 내려받으며, 해외여행 갈 때는 책 무게가 부담스러워 e북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유료 앱을 일시적으로 이용했다. 서울에 사는 우리 아이들도 온라인 게임에 매월 정액을 지출한다. 전부 개인 단위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이다.


셋째, ‘구독경제’가 일상화되어있음을 느꼈다. 우연히 도시락 공급 업체를 알게 되어 월~금요일 점심 도시락을 주문했다. 밥은 빼고 1인분에 3500원이니 저렴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도시락 배달인데, 이런 것들을 요즘은 ‘구독서비스’라 부른다.


상식적으로 구독은 ‘읽을 것(讀)을 구매(購)하는’ 것, 따라서 신문과 잡지만 생각나는데 꽃, 그림, 과일, 술, 반찬, 옷, 화장품, 향수, 도시락 같은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것을 구독이라고 한단다. 배달은 배달인데 전문가가 매번 고객 취향, 트랜드, 계절, 날씨 등에 맞춰 챙겨준다는 의미 같다.


혼자서 다양하게 소유하기 힘든 그림·옷 같은 품목은 공유경제 의미가 큰 것 같고, 꽃· 먹거리 등은 제철·신선함과 함께 소비자로서는 ‘오늘은 뭘까?’ 하는 기대감도 큰 경쟁력이겠다.


결국 구독은 내가 직접 가서 고르고 운반하는 수고 없이도 내 마음에 들게 최적의 것을 알아서 제공해주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고, 이미 세상에 다 있는 것 같은데도 뭔가 조금 진화해서 기존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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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사다 꽂으면서 계절에 맞는 꽃을 정기적으로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인터넷을 찾아보니 구독경제가 정말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사진 박헌정]

이처럼 소비생활의 변화를 실감하며 생각해보건대, 세상의 신문물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내 주머닛돈을 빼가는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 통로는 스마트폰이다. 지문이나 여섯 자리 숫자로 1~2초 만에 결제할 때마다 디지털 세계의 친절함을 느낀다.


아직은 이런 방법을 근근이 따라갈 수 있어 편리하고 좋지만 새로운 게 등장할 때마다 “이건 또 뭐야?” 하며 살짝 놀란다. 얼마 전에는 공인인증서가 폐지된다기에 긴장해서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았더니 별로 당황할 건 아니었다.


다들 변화가 빠른 세상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상의 변화는 한순간에 우리를 무식쟁이로 만들지는 않는다. 언제나 조금씩, 충분히 알만한 속도로 다가온다. 그게 함정이다. 시계의 분침처럼 조금씩 꾸준히 바뀌니 늘 똑같다고 여기며 무심하게 지나치다 보면 다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특히 은퇴해서 조직을 떠나면 더 그렇다.


주변에 의견 나눌 사람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감각이 떨어지지 않을까 늘 두렵다.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회사에서는 후배에게, 아이와 함께 살 때는 아이에게 물어보곤 했지만 이제 부부가 스스로 해결하고 알아내야 한다. 등산을 해보면 알겠지만 한번 앞사람과 간격이 벌어지면 해 기우는 빈 산에서 혼자 속도 내서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다. 그러니 힘들어도 놓치면 안 된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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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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