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기는 짠맛, 동글하면 단맛…요상한데 맛 더 잘느끼는 스푼

[컬처]by 중앙일보

[견물생심] 감각자극형 식기 만드는

‘스티뮤리’ 전진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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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전진현 디자이너가 만든 ‘스티뮤리(stimuli)’ 스푼을 보면 누구라도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질문이다. 생긴 것은 분명 스푼(숟가락)인데 왜 이렇게 생겼을까 궁금증이 인다. 그도 그럴 것이 움푹하게 파인 머리 바닥에 불룩한 혹이 있거나, 가장자리에 도깨비 방망이처럼 돌기가 나 있는가 하면, 손으로 잡는 자루 부분 커브도 평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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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소셜 디자인과 마스터 오브 디자인 석사 과정을 졸업한 전진현 디자이너는 현재 ‘공감각 식기’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공감각’의 사전적 정의는 ‘동시감각의 속성을 지니며, 어떤 감각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감각 간의 전이 현상’이다. 백과사전의 설명을 더 옮기면 ‘본래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감각인상(感覺印象)의 종류와 그 원인이 되는 물리적 자극은 1대 1로 대응한다. 하지만 때로는 감각 영역의 경계를 넘어선 감각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공감각이라 한다’고 쓰여 있다.


예를 들어 소리를 들으면 색이 보인다거나 맛·향기가 느껴지고, 특정 그림을 봤을 때 어떤 교향곡이 들린다거나, 단어에서 색을 느끼는 현상이다. 이는 유전자에 의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인데 90명 중 1명 정도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2010년 네덜란드로 유학 가서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이라는 주제로 실험을 하며 논문을 썼어요. ‘푸른 눈물’ 같은 문학적 표현에 주로 쓰이는 공감각이란 게 뭘까 너무 궁금했죠. 눈으로 보면서 냄새를 느끼고, 특정 단어를 봤을 때 촉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뇌 과학자는 아니지만 디자인 관점에서 다룬다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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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전진현 디자이너는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증폭시켜서 이전에는 몰랐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는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있다. 여러 종류의 디자인 제품 중 특히 테이블 웨어(식기)에 집중하게 된 건 인간의 행위 중 오감을 총동원해 다양한 감각을 음미하는 순간이 음식을 먹을 때이기 때문이다. ‘스티뮤리’라는 브랜드명도 ‘자극(stimulus)’의 복수형인 스티뮬라이(stimuli)에서 따온 건데 사람들이 스티뮤리로 발음하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영화 ‘퍼펙트 센스(2011년 개봉)’를 보다 무릎을 쳤죠. 인류가 후각·미각·청각·시각·촉각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된다는 줄거리인데 주인공인 요리사가 감각을 하나씩 잃을 때마다 차려내는 요리가 흥미로웠어요. 후각을 잃은 상태에선 맛을 강하게 요리해요. 미각을 잃으면 질감을 강하게 하고, 청각을 잃으면 시각적으로 화려한 요리를 만들죠. 내가 갈 방향이 이거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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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맛, 그리고 식기로 범위가 좁혀지면서 ‘스푼’ 디자인이 떠올랐다고 한다. 시각적으로 독특한 변형이 가능하고, 소재에 따라 소리·무게·온도·촉감이 달라질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었다. 전진현 디자이너는 뇌 자극과 감각에 관한 여러 논문을 토대로 디자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개인마다 강도는 다르겠지만 바닥에 혹처럼 볼륨이 있는 동글동글한 형태는 단맛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되요. 막대 사탕을 생각하면 쉽죠. 모난 돌기는 짠맛을 자극해요. 사실 이런 색다른 종류의 디자인은 일단 음미하면서 먹기에 좋잖아요. 시각적으로 호기심을 느끼고, 입에 한 입 넣었다가 돌려도 보고. 일반 스푼을 사용할 때보다 음식을 맛보는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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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뮤리 스푼의 가격은 개당 7만~23만원대. 시장에서 파는 기존의 스푼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하지만 전진현 디자이너에게도 할 말은 있다. 일단 스티뮤리 제품은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는 양산품이 아닌, 디자인 작품이다. 세상에 없던 모양을 만들려면 몰드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생산 공정도 만만치 않다.


“시계는 한 개에 수억 원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하면서 매일 입에 넣는 스푼 디자인에는 왜 그렇게 무관심한지 오히려 제가 놀랐어요. 아무리 비싸도 시계나 보석을 입에 넣지는 않잖아요.”


전진현 디자이너의 스푼은 세라믹,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나무 등 소재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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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은 깨지기 쉬운 게 단점이지만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편안한 무게감을 가졌다. 유럽에서 가장 선호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입에 넣었을 때 가장 깨끗하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세라믹 스푼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일단 가마에 넣고 구울 때 바닥에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세라믹 스푼 자루에는 늘 구멍이 있다. 매달아서 구워야 하기 때문이다. 전진현 디자이너는 자기만의 비법을 고안해 구멍 없이 매끈한 자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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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는 인류가 사용해온 가장 오래된 식기 소재인 데다, 나무 종류에 따른 밀도 차이에서 오는 재미가 크다고 한다. 똑같은 크기의 나무라도 직접 들어보면 무게가 확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 주로 사용하는 나무는 메이플과 흑단이다. 두 나무는 색도 다르지만 밀도, 즉 무게가 확연하게 다르다. 메이플은 부드러운 색감과 문양, 가벼움이 장점이다. 흑단 역시 독특한 색감 때문에 선택했는데 메이플과 반대로 무거워서 좋단다. 특히 흑단은 산지에 따라 문양이 달라서 같은 흑색이어도 그 느낌이 다양하게 나온다. 전진현 디자이너는 흑단에 옻칠을 따로 해서 목재 이상의 색다른 느낌을 입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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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두께를 조절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소재라고 한다. 전진현 디자이너가 입구 둘레의 두께가 다른 나무 컵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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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닿았을 때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컵이에요. 과학적으로 윗입술보다 밑 입술이 더 예민하다고 해요. 그래서 컵을 물었을 때 밑 입술, 윗입술이 닿는 부분의 두께를 다르게 만들어봤죠. 후각을 위해 코를 컵에 깊이 파묻을 수 있도록 입구 길이를 다르게 만들기도 하고, 손의 촉감을 자극하기 위해 컵의 볼륨을 조절하기도 해요. 계속 만지고 싶고, 손에서 놓지 않도록. 이처럼 두께의 변화만으로도 우리 감각의 차이는 확 달라져요. 알면 알수록 우리 몸이 느끼는 감각의 신비로움에 놀라게 되죠. 입술, 눈, 손, 혀에서 느끼는 새로운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테이블 웨어에 계속 몰입하게 되는 이유에요.”


전진현 디자이너의 공감각 식기는 그동안 영국 런던왕립박물관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2019/2014), 미국 쿠퍼휴이트 국립디자인박물관(2018), 덴마크 콜링현대미술관(2017), 프랑스 파리 국립장식미술박물관(2015) 등에서 초청 전시된바 있다. 더불어 유럽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셰프들과 함께 ‘공감각 식사 이벤트’도 꾸준히 열고 있다.


2018년 발행된 옥스퍼드 대학 통합감각 연구소장 찰스 스펜서 교수의 책 『왜 맛있을까』에도 사진과 함께 스티뮤리 제품이 소개됐다. 이 책에서 스펜서 교수는 “이렇게 생긴 도구로 무언가를 먹는다면 어떨 것 같은가? 아마 기억에 더 남을 것이다. 분명 더 자극적이기도 하고”라는 글과 함께 “조만간 이 디자이너의 작품이 아마존에서 판매될지도 모르겠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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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공감각 디자인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일상에서의 새로운 감각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이 스푼, 이 식기로 먹으니 느낌이 다르네. 평소 식사를 빨리 하던 사람이 식기를 천천히 뜯어보면서 속도를 늦추게 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죠. 모든 감각을 열어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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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스티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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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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