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폈다, 내려오니라” 남도 산사 노스님의 ‘들뜬 핸드폰’
순천 금둔사에 활짝 핀 홍매
꽃가루 지켜 벌이 날아들게
추우면 꽃잎 오므려 꽃술 보호
“겨울 매화가 향이 더 진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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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신(芳信) : 꽃 피는 소식
“긍게, 처음이랑게. 이렇게 일찍 핀 적이 없었당게.”
지허스님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엄동설한에 핀 매화가 대견했겠지만, 워낙 소년처럼 맑은 스님이다. 핸드폰 너머로 붉은 매화 앞에서 환히 웃는 스님의 얼굴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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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금둔사 지허스님에 전화를 넣은 건 12월 초순이었다. 지난겨울 시작한 코로나 사태가 다시 겨울이 돌아와도 끝나지 않아서였다. 1년째 이어진 겨울 같은 나날이 이젠 버겁다 싶었을 때, 굳이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금둔사 매화가 생각났다. 매화 피면 알려달라고, 당장 달려가겠다고 고개 숙여 여쭈었다.
12월 24일. 다시 전화를 넣었다. 스님 목소리에서 반가운 기색이 전해졌다.
“희한한 일이제. 며칠 전 겁나게 추웠을 때 있지 않았능가. 여그는 산속이어서 영하 16도로 떨어지고 그랬어야. 그때 꽃망울이 올라오더라고. 지금은 몇 개가 열렸고. 아직은 쬐만해. 그래도 이게 어디여. 고맙지, 기특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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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그러니까 음력으로 11월 14일. 금전산(668m) 기슭에 걸터앉은 금둔사에 들었다. 요사채 앞 매실나무 한 그루가 붉은 기운을 머금어 화사했다. 가지마다 두서너 송이씩, 얼추 100송이 가까이 핀 듯했다. 스님이 아이처럼 신이 나 말했다.
“크리스마스 날 확 펴 부렸당게. 나가 야들을 심은 게 35년 전이여. 여태 이렇게 일찍 핀 적이 없었네. 음력으로 12월 8일이 성도일이여. 석가모니가 도를 깨친 날. 용하게도 그날은 꼭 매화가 피었는디, 올핸 한 달이나 먼저 펴 부렸네. 이게 뭔 조화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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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金芚) : 부처가 발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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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는 작은 사찰이다. 바로 옆 조계산 자락에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어 이름도 크게 밀린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안다. 특히 사진작가 사이에선 유명하다. 여느 매화보다 여기 매화가 일찍 피어서다. 해마다 2월이면 매화 보겠다고 팔도에서 카메라 메고 찾아온다.
절은 작아도 역사는 길다. 백제 위덕왕 30년(서기 583)에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제법 번창했었다. 통일신라 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금둔사의 명맥이 끊긴 것은 정유재란(1597) 때다. 난리 통에 가람이 전소했다. 이후 금둔사는 오랜 세월 폐사지였다. 1970년대까지 산 아래 주민이 금전산 중턱 절터까지 올라와 밭농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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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를 다시 일으킨 주인공이 지허다. 1979년 금전산 기슭에서 무너지고 부서진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을 발견하고서다. 그 뒤로 그는 길 닦고 돌 쌓으며 버려진 절을 다시 세웠다. 산 아랫마을에서 600년 묵은 노거수의 씨앗 한 움큼을 받아와 금둔사 곳곳에 뿌린 건 1985년의 일이다. 그 씨앗 중에서 6개가 살아남아 이 매운 계절 꽃을 피운다.
“가지를 가져다 심으면 길어야 40년 밖에 못 사네. 씨앗이 싹을 틔우면 백 년도 넘게 살고. 매화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그렇게 기다리던 꽃이 피니 반갑제. 고맙고 반가운디, 부끄럽네. 65년 중노릇을 했는데 여직 화두를 못 풀었잖어. 이놈들은 풀었고. 시방은 매화가 부처네. 화두를 풀면 부처가 되니게. 금둔사(金芚寺)가 부처가 싹을 틔우는 절이란 뜻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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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일치(禪農一致) : 노동이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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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은 1941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났다. 금둔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벌교 앞바다다. 열다섯 살에 선암사로 출가했고, 선암사 주지를 세 번 지냈다. 선암사와 금둔사를 오가다 2012년부터 금둔사에서 죽 지내고 있다.
“혼자 살어. 혼자 다 하제. 농사짓고, 밥 해묵고, 땔감 허고. 팔십 노인이 땔감 하러 산을 다닌당게. 밥, 국. 김치. 이렇게 세 개 놓고 먹는데 맛있어. 밥은 팔십 년을 먹어도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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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선농일치’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농사 짓는 게 참선이라는 뜻일 테다. 실제로 금둔사는 밭이 많다. 절 주위로 차밭이 있고, 대웅전 곁에 배추밭이 있다. 배추, 고추, 갓 등을 손수 키운다. 이른바 자급자족 선방 생활이다. 요사채 옆 헛간 앞에 스님이 해놓은 장작이 수북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의심한다고 들었네. 나 같은 중에게는 정말 창피한 얘기네. 불교가, 아니 종교가 하는 일이 사람들이 마음을 바로 쓰게 하는 것인디. 지금 그렇지 못하다는 것 아닌가. 싸워야 할 건 사람이 아닌디. 안타깝네. 부끄럽고.”
지허스님은 차(茶)의 대가다. 선암사 동구 그 유명한 차밭을 만든 주인공이다. 여전히 그는 찻잎을 따고, 차를 덖고, 차를 내는 과정을 혼자서 다 한다. 금둔사 주위에도 1만 평(약 3만3000㎡) 규모의 차밭을 일궜지만, 4년쯤 전 넘어져 갈비뼈를 다친 뒤로 예전처럼 많이 만들진 못한다. 스님이 차를 내주었다.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향과 맛이 매화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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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월매(臘月梅) : 섣달의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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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꽃 이름이다. 나무 이름을 부르려면 매실나무라 해야 한다. 사과나무를 사과꽃나무라고 하지 않듯이 매실을 맺으니 매실나무다. 매화는 매실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매화는 꽃 중의 꽃이다. 예부터 난초·국화·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불렸거니와 잎사귀 한장 없어도 도도히 꽃을 피우는 매화 앞에 옛 문사들이 기꺼이 찬사를 바쳤다. 이를테면 ‘백화괴(百花魁)’는 백 가지 꽃의 우두머리라는 뜻이고 ‘화형(花兄)’은 모든 꽃의 맏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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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색깔에 따라 달리 불린다. 한겨울에도 피는 매화가 금둔사 매화처럼 홍매다. 청매도 있고, 백매도 있다. 금둔사 매화는 홍매 중에서도 납월매라 한다. 음력 섣달에 피는 홍매를 가리킨다. 아직 나비가 없는 계절이어서 납월매는 향기가 강하다. 매향(梅香). 이 은은하면서 자극적인, 싱그러우면서도 매혹적인 향을 어떻게 표현할까. 지허스님은 이른 봄날 아침나절이면 경내가 매향으로 그윽하다고 했다. 금둔사에는 납월매 6그루 말고도 100여 그루의 매실나무가 더 있다.
“매화가 말여. 꽃이 피면 아무리 추워도 안 죽어. 추우면 꽃잎을 요래 오므려. 꽃 안을 지켜야 하니게. 꽃가루를 지켜야 벌레든 새든 날아드니게. 너무 헤프게 살아서 코로나가 온 것 아니겄어? 이제 좀 덜 다니고 덜 만나고 덜 먹어야 쓰겄제. 그렇게 버텨야지, 별수가 있겠는가? 그리움은 떨어져 있어야 생기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한 걸 모르네.”
순천=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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