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없으면 인정 못받아"…나이키 만족하던 아들이 변했다

[라이프]by 중앙일보

[명품호황 미스터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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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명품 브랜드는 경제적 기반을 닦은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명품 업계에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친 ‘MZ세대’가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백화점 큰 손 ‘영 앤 리치’


2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명품 매출에서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8년 38.2%에서 2019년 41.4%, 2020년 44.9%로 상승했다. 신세계 백화점에서도 지난해 명품 매출 비중에서 30대가 39.8%를 차지해, 명품구매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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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은 명품 매출 신장률도 매년 높아가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20대 명품 매출 신장률은 2018년 27.5%였지만 지난해 37.7%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30대의 명품 매출 신장률도 16.3%에서 28.1%로 올랐다. 업계에선 2030의 명품 사랑이 코로나19 한파마저 비껴갔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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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소비의 주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청년층 현실은 어둡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9%로 전체 평균 실업률(4%)의 배가 넘었다. 고용 한파에도 2030, 심지어 특별한 수입이 없는 10대 조차 명품을 원하고 구매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명품 홀릭 배경엔 ‘플렉스’ 문화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50대 직장인 강모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예전 같으면 ‘나이키’에 만족했던 아이가 얼마 전부터 60만 원 대 명품 브랜드 스니커즈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의 일부 고등학생들 중엔 명품 매장에 자신의 전담 셀러(상담사)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풍문도 돈다. 명품 스니커즈나 지갑, 외투 등을 사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들도 있다. 10대들 사이에선 “명품을 쟁취하지 못하면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명품 업계 관계자는 “20대는 물론 10대까지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등 명품 소비층이 확대됐다”며 “명품이 과거엔 돈 있는 사람의 소비품이었다면 지금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가 원하는 것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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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명품 소비엔 대중 매체의 영향이 크다. 유튜브엔 10대와 20대 초반 인플루언서들이 ‘명품백 하울(구매한 물건을 품평하는 영상)’‘명품 언박싱(구매한 상품을 개봉하는 영상)’ 등의 콘텐트를 올리고 있고, 주 시청 층이 10대 20대인 이른바 학원물 드라마에서도 주요 인물들이 명품을 예사로 입고 들고나온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여신강림(tvN)’의 남자 주인공 차은우는 교복 위에 발맹·톰브라운·생로랑 등의 의상을 겹쳐 입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전문가들은 MZ세대의 명품 열풍을 설명하려면 ‘플렉스(flex)’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플렉스는 힙합 문화 중 하나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한다’는 의미다. ‘고등래퍼’ 등 힙합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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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Mnet 고등래퍼

이들은 ‘열심히 돈 모아서 명품 사는 것’을 자부심이자 당당함으로 표현한다. 한때 숨기는 것이 대세였던 명품 브랜드의 로고도 요즘엔 대 놓고 드러내는 디자인이 많다. 어렵게 마련했으니 티가 나야 한다는 논리다.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벼락거지’된 2030, 집 못 사니 즐기자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명품 소비를 부추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찌감치 내 집 마련에 성공해 부의 추월차선을 탄 30대가 명품 소비의 신흥 세력이라면, 그렇지 못한 20·30세대는 치솟은 집값에 집 구매를 포기하고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강남 8학군에서 자란 이 모(34) 씨는 2017년 결혼하면서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아파트 구매 대신 전세를 선택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아파트 매매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매매를 포기했다. 이 씨는 “2억만 대출하면 살 수 있었던 아파트를 지금은 10억을 더 주고 사야 한다는 현실에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맞벌이 월급으로 사고 싶은 거 실컷 사고,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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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유행을 탄 욜로(yolo) 바람도 다시 분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며 살자(you only live once)’는 의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수도권 부동산 자산 가격 급상승으로 젊은 층은 평생 돈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현재의 소비를 즐기려는 욜로 문화가 돌아오고 있다”며 “한때 개그맨 김생민의 인기로 저축이 붐을 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기보다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하려는 성향이 더 강해 졌다”고 말했다.



명품은 합리적 소비


위험해 보이는 젊은 세대의 명품 소비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명품은 단순히 물건이 아닌 투자이자 환금성 있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약 4~5년 전부터 20·30세대가 명품 시계 시장에 대거 진입했어요. 워낙 중고 거래에 익숙한데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해서 딱 팔리는 제품이나 브랜드만 사요. 취미생활처럼 얼마 즐기다가 자기가 산 가격이나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팔아 돈을 버는거죠.” 한 시계업계 관계자의 말에서 왜 롤렉스 등 일부 브랜드 특정 모델이 품귀현상을 빚는지 이유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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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들은 명품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 아닌 ‘잠시 빌려 쓰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때론 명품이야말로 ‘가성비’ 좋은 선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샤넬 가방을 700만원에 구매해 사용하다가 650만원에 되팔면 50만원으로 샤넬을 누린 셈이 된다. 혹시 운이 좋아 그사이 800만원으로 가방 가격이 뛰면 오히려 100만원을 벌었다고 여기는 식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부동산처럼 ‘가치있는 똘똘한 하나’에 아낌없이 쓰는 ‘집중소비’가 명품 시장을 견인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며 “앞으로도 중고 플랫폼을 잘 활용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환금성이 좋은 명품 선호 현상이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지연·배정원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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