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비슷한 영국 왕실과 한국 재벌가 웨딩 드레스

지난 4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던 현대그룹 일가의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은 웨딩드레스가 화제가 됐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결혼식이었는데, 이때 그의 신부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시어머니인 김영명 예올 재단 이사장의 것을 대물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드레스는 김 이사장의 두 딸도 결혼식에서 입었던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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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의 딸과 며느리가 입는 웨딩드레스에는 일련의 공식이 있다. 신부의 취향 대신 기업 이미지에 따라 웨딩드레스를 선택하게 되는데, 일단 가슴·어깨 등 몸이 노출되지 않는 단아한 디자인을 선택한다. 이번 정 부사장의 신부 역시 7월의 더운 여름날 진행된 예식이엇지만 레이스가 턱밑까지 올라오고 손등을 덮는 긴 소매의 드레스를 입었다.


그런데 이 드레스, 영국 왕실 결혼식에 등장했던 드레스들과 묘하게 닮았다. 추자현·우효광, 이선균·전혜진 부부 등 많은 국내 스타들의 결혼 예복을 담당했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최재훈 대표(최재훈드레스)는 "긴팔에 목이 올라오는 하이 네크라인, 긴 트레인(면사포)과 베일의 드레스는 영국 왕실 웨딩드레스의 기본 공식"이라며 "이번 현대가의 드레스 또한 노출을 최소화한 디자인으로 클래식하면서도 귀족적인 이미지의 로열 웨딩드레스였다"고 설명했다. 재벌가의 웨딩드레스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이미지를 연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국 왕실의 웨딩드레스와 같은 코드를 가진다는 의미다.


노출 없는 단아함이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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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 역시 노출이 거의 없는 단정한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택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 왕세자빈 케이트 미들턴이 2011년 결혼식에서 입은 웨딩드레스는 목과 어깨·소매를 모두 레이스로 감싼 모습이었다. 영국 디자이너 사라 버튼이 만든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로 알려졌는데, 가슴 중앙 부분이 V자로 깊게 파여 있는 걸 빼고는 정 부사장의 신부가 입었던 드레스와 거의 흡사하다. 당시 영국 웨딩 전문 매체 ‘로열웨딩’은 이 드레스에 대해 “전형적인 영국풍 드레스”라며 “영국의 전통을 이었을뿐 아니라 현대적이고 특별한 여성 캐릭터를 나타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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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 드레스 역시 ‘우아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레이스 켈리가 1956년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와의 결혼식 때 입었던 것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결혼식에서 목이 높게 올라오고 앞부분에 작은 단추가 줄지어 달린 긴 소매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레이스 vs 새틴


삼성가 역시 노출을 최대한 줄인 드레스를 선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레이스 대신 흰색 실크(새틴)로 된 웨딩드레스를 선택한 모습이 많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결혼 당시 보트 네크라인에 7부 소매의 심플한 디자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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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결혼했던 배우 고현정은 결혼식에서 옷깃을 진주로 장식한 반소매 새틴 드레스를 입었다. 앞 중심에 작은 단추가 줄이어 달린 모습은 그레이스 켈리의 드레스와 같았다. 또 다른 웨딩 사진으로 목과 팔 전체를 전부 레이스로 가린 드레스를 입은 사진도 함께 공개됐었다.


이미지 컨설턴트 강진주 소장은 “원래 재벌가의 웨딩드레스는 노출이 심하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몸을 가리는 드레스 상의 부분의 소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진다”며 “새틴은 전통적인 우아함을, 레이스는 젊은 우아함, 즉 ‘뉴 엘레강스’ 룩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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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은 잘 입지 않는 긴소매 웨딩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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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외동딸 앤 공주의 웨딩드레스. 사진 로열웨딩

긴 소매 웨딩드레스도 재벌가와 유럽 왕실의 여인들이 공통으로 선택하는 웨딩드레스의 특징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한국의 신부들은 이 드레스를 잘 선택하지 않는다. 최 대표는 그 이유를 "기본적으로 긴팔 하이네크라인 디자인의 드레스는 얼굴이 작고 목이 긴 서양인 체형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동양인 체형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재벌가가 긴 소매 드레스를 선택하는 것은 신부 몸의 노출을 줄이는 방법의 하나로 보인다. 두산매거진 박서원 대표와 결혼한 조수애 전 JTBC 아나운서는 라운드 네크라인에 손등까지 오는 긴 소매 드레스를 입었다. 이례적으로 현대비에스앤씨 정대선 사장과 결혼한 노현정 전 아나운서만이 팔 전체를 드러낸 민소매 스타일 드레스를 입었다. 그렇지만 디자인 자체는 다른 신부들과 마찬가지로 단아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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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주 소장은 “긴 소매 드레스=남자의 (와이)셔츠라고 생각하면 된다. 긴 소매가 격식을 제대로 갖췄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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