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얼음골, 최악 폭염에도 얼어 있었다

에어컨처럼 찬바람 부는 냉장고 피서지

8월 하순까지 바위틈 얼음 관측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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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8월 7일)가 지났지만, 전국은 여전히 불덩이처럼 뜨겁다. 바깥 활동이 어려울 만큼 폭염이 이어지는 탓에 해수욕장마저 파리가 날린다지만, 경남 밀양에서는 이 여름에 외려 북적거리는 ‘야외’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224호 경남 밀양 얼음골이다.

밀양 얼음골은 재약산(1189m) 북쪽 600m 지점에 있는 계곡으로 한여름에도 에어컨처럼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다. 산비탈을 따라 3만㎡ 정도 널찍한 너덜겅이 펼쳐지는데, 바위틈으로 냉기가 새어 나오는 신비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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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 가마솥더위를 실감했던 지난 8일, 밀양 시민이 사랑한다는 피서지 얼음골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얼음골 입구는 피서객으로 빽빽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얼음골 매표소까지 5분을 걸어가는데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땀이 쏟아졌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계곡을 따라 오르려는데, 신기하게도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온도계를 확인해보니 기온이 25도로 뚝 떨어져 있었다.

동행했던 밀양시 문화해설사 최해화(59)씨는 “아직 감탄하기 이르다”며 산 중턱에 다다르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추운 바람을 쐴 수 있다고 말했다. 천천히 골짜기를 오르는데, 산책로 옆 계곡에 물이 콸콸 흘렀다. 수많은 피서객이 계곡 옆 널찍한 바위에 돗자리를 펴고 산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계곡에서 첨벙첨벙 수영하는 사람도, 심지어 발을 담그는 사람도 없었다. 얼음골 계곡을 오르며 계곡물에 살짝 손을 대보고 이유를 알았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에 손을 1분도 담그고 있기 어려웠다. 발을 댔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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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정도 산길을 오르니 너덜겅이 펼쳐졌다. 너덜겅 중간에 사람의 접근을 막고자 펜스를 두른 장소가 드러났는데 ‘결빙지’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이곳이 바로 얼음골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장소다. 4월 중순부터 6월 장마철이 닥칠 때까지 바위 사이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는 신비한 장관이 펼쳐진다. 8월 초여서 얼음골 명물이라는 고드름을 볼 수는 없었지만, 결빙지 주변에는 시원함을 넘어서 냉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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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얼음이 남아있어요. 진작 녹았어야 했을 시점인데.”

결빙지에서 조사하던 얼음골관리사무소 박재흥 소장이 짐승 아가리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바위틈을 가리켰다. 너비 40㎝, 깊이 10㎝ 정도의 얼음이 뚜렷하게 보였다. 온도계는 0도까지 떨어졌다. 사상 최악의 폭염에도 녹지 않고 남아있는 얼음이 신비로웠다. 덕분에 결빙지 주변에는 15도 정도의 ‘얼음 바람’이 불었다. 눈으로 보고도, 몸으로 느끼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박재흥 소장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될 올해, 얼음골의 얼음이 가장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993년부터 얼음골 결빙지 해빙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평년에는 6월 말에서 7월 초 얼음이 모두 녹아 없어졌다는 것이다. 2007년에는 6월 1일 얼음이 모두 소실됐고, 지난해는 7월 3일까지 얼음을 관측할 수 있었다. 얼음이 가장 오래 남았던 해는 2010년으로, 그 해 8월 14일 얼음이 사라졌다. 박 소장은 “얼음골 얼음은 한겨울이 아니라 3~4월에 얼기 시작해 기온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녹다가 장마철이 지나면 없어진다. 올해는 장마다운 큰비가 없었기 때문에 8월 말까지 얼음 관측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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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수차례 지질조사가 실시됐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이 밝혀진 바는 없다. 최해화 해설사는 “밀양 사람들은 예부터 깊은 산속 얼음골의 존재를 알았고, 여름에는 얼음골 고드름을 따다 냉국을 만들어 먹었다”며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반대로 겨울에는 계곡물에서 김이 날 정도로 따뜻한 얼음골의 신비가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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