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RM이 '애정하는' 그 작가의 전시

PKM갤러리 '윤형근 1989-1999'

베니스, 뉴욕 전시 후 국내 전시

김환기 사위이자 제자인 작가

마음 속 울분 정제된 표현으로

RM의 안목이 팬들까지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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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RM(김남준)이 이번 전시는 언제 보러 올까?"


최근 개막한 미술품 전시에서 많은 기자가 한결같이 궁금해하며 던진 질문이다. 이날 자리에선 "언젠가 작품을 보러 오지 않겠느냐" 조심스러운 추측부터 "반드시 온다"는 확신 어린 예측까지 나왔다. RM이 언제 전시를 보러 올지는 몰라도 이번 전시가 RM이 '아끼는 작가'의 전시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 듯했다.


23일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개막한 윤형근(1928-2007)의 작품전 '윤형근 1989-1999' 얘기다. 이번 전시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지난해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린 뒤 국내에서 열리는 새로운 전시다.


말하자면 윤형근 전시가 열리는 곳에 늘 RM이 있었다. RM은 지난해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까지 찾아가 윤형근 전시를 직접 보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까지 찍어 SNS에 공개했다. 또 윤형근 뉴욕 전시가 지난 1월 17일부터 3월 7일까지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열렸을 때 일정을 쪼개 전시를 챙겨보고 인증샷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다. 윤형근 작가를 가리켜 'RM이 픽(pick)한 작가'라 말하는 이유다.



'남준이가 애정하는' 윤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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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은 한국 단색화의 거목(巨木)이라 불린다. 지난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팔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낸 한국 추상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사위이기도 하다. 그의 대형 화폭에 담긴 색면은 극도로 단순해 보이지만, 갈색 면포나 마포의 표면에 독특하게 번진 흑색이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삶을 살펴보면 윤형근은 혼란스러운 시대의 한가운데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삭여야 했던 예술가였다. 서울대 미대 1회 입학생이었으나 미군정이 주도한 ‘국립 서울대 설립안’(일명 국대안)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했고, 한국전쟁 중엔 피란 가지 않고 서울서 강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1956년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했다. 또 1973년 숙명여고 미술 교사로 일하던 중 중앙정보부장이 개입한 부정입학 학생의 비리를 따졌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었다. '옥살이' '울분'과 독기' 등의 키워드로 요약되는 시절이었다.



군더더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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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나무 빛깔'을 담은 그의 작품은 그가 보낸 이런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음속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듯이 그는 일체의 기교를 배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압축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료에 따르면 윤형근의 초기 작품은 푸른색 계열의 서정적인 추상화였으나 이후 색은 어두워지고 무거워졌다.


실제로 윤형근은 “1973년부터 내 그림이 확 달라진 것은 서대문교도소에서 나와 홧김에 한 것이 계기였다”면서 "색채가 싫어졌고 화려한 것이 싫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그는 1973년 고등학교 강단을 떠나 마흔다섯 살에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독자적인 세계가 구축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흑색 기둥은 무엇일까. 그의 많은 작품 중 1980년 5월 광주 소식을 듣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렸다는 그림('다색')을 보면 그 답이 보이는 듯하다. 커다란 천 위에 비스듬히 쓰러지는 흑색 큰 기둥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는데 마치 기둥들은 검은 피를 흘리는 듯하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땅-사람'이란 말로 요약해 설명한 바 있다.



작가의 원숙한 시기를 조명하다


2018년 대규모의 회고전을 통해 소개됐지만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윤형근의 작품 20여 점은 또 새로워 보인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들은 1989년~1999년 시기의 작품들로 대부분이 기존에 소개되지 않았던 그림들이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이 시기 윤형근의 작품은 수묵화 같은 번짐 기법과 기둥 형상이 더욱 대담한 형태로 진화했다"면서 "작가가 작품 세계의 고유의 본질은 지키면서도 형식적 원숙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엔 추사 김정희의 서예작품과 미국 미니멀 아트의 대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이 '찬조 출연'한다. 추사 글씨는 갤러리가 익명의 소장가로부터 대여해온 작품으로 관람객이 윤형근과 추사 미학의 관계를 가늠해보게 한다. 윤형근이 1990년대 초반 저드와 교류하면서 회화 작업에서 자신이 고민하던 '현대성'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음을 엿보게 하는 단서다.



RM의 안목과 영향력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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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3일 방탄소년단 트위터에 '달 떴다'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 호암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여정'에 출품된 김환기 점화를 감상하는 RM 뒷모습으로 추정된다. [방탄소년단 트위터 이미지 캡쳐]

이미 미술계에서 RM은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로 소문나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최대 아트 마켓인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에도 다녀갔고, 앞서 6월에는 팬 미팅 차 부산을 찾았다가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을 찾았다. 당시 그가 방명록에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라고 쓴 글은 두고두고 미술계의 화제였다. 힘을 뺀 듯하면서도 역동적인 붓질이 화면에 그득한 '바람' 연작은 이우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이 연작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밖에도 RM은 틈만 나면 북서울미술관, 원주 뮤지엄 산, 용인 호암미술관. 서울 삼청로 금호미술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등에 출몰해 전시를 보았다. 그의 이런 행보는 그의 국내외 팬들에게 한국 미술과 작가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RM이 방문한 미술관을 찾거나 그가 소개한 작가들을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방탄소년단의 팬들에게 부산 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이 '순례지'가 되는 식이다. RM이 '애정하는 작가'들로 윤형근과 이우환 외에도 김환기, 김종학 등이 거론된다.


RM을 직접 만나본 미술 관계자들은 "그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고 전한다. 한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RM은 전시를 맡은 큐레이터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미술에 대해 매우 진지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가 개막하자 벌써 팬들이 윤형근 전시를 찾고 있다. 최근 한 팬은 자신의 트위터에 "좋아하는 동네에서 오랜만의 전시라 더 좋았다"면서 "내 문화생활의 8할은 다 김남준(RM)덕"이라고 썼다. RM이 방탄소년단 팬들에게 끼치고 있는 '예술적 영향력'이다. 전시는 6월 20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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