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 나이 잊은 김혜수…그녀가 청룡서 드레스 거꾸로 입은 사연

[핫이슈]by 중앙일보


‘청룡 여신’ 김혜수 드레스 패션 30년

“지금까지 청룡영화상 김혜수였습니다.”


지난달 24일 여의도 KBS홀에서 생방송으로 치러진 제44회 청룡영화상 마무리 멘트는 여느 때와 느낌이 달랐다. 30년간 MC를 맡아온 배우 김혜수가 이번을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993년 스물셋의 김혜수는 이덕화와 함께 청룡영화상 첫 진행을 맡았다. 그 후 30년 동안 매해 겨울이면 그는 어김없이 청룡영화상 무대에 섰다. 스스로 “가끔은 청룡영화상을 제가 주최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고 할 만큼 진심과 애정으로 쌓아온 시간이었다.


여우주연상 세 번, 연기·패션 균형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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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대에 오른 수상자와 시상자 모두 ‘청룡의 안주인’ ‘청룡의 여신’ 김혜수에 대한 존경을 표했고, MC 김혜수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김혜수를 청룡영화상에서 떠나보내는 건 오랜 연인을 떠나보내는 심정과 같이 느껴진다. 그녀가 함께한 청룡영화상의 30년은 청룡영화상이 곧 김혜수이고 김혜수가 곧 청룡영화상인 시간이었다.” 이날 정우성은 모든 영화인들의 마음을 담은 연서와 함께 김혜수에게 트로피를 전달했고, 거기에는 ‘1993년~2023년 청룡영화상 김혜수’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도 받은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트로피다.


“30주년 드레스니까 진짜 여신처럼, 골드 트로피처럼 보이게 금빛 드레스를 준비했죠.” 지금까지 20여 년 넘게 김혜수의 청룡영화상 드레스를 책임졌던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인트렌드 대표)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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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느낌의 핑크색 리본 드레스부터 가슴골이 깊이 빠진 섹시한 디자인까지 정말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죠. 카멜레온처럼 어떤 옷도 자신에게 어울리도록 소화할 줄 알고, 또 새로운 시도를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에요. 파격적인 디자인도 우아하고 멋지게 연출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죠. 한 번은 등 부분 디자인이 더 예쁘다고 드레스 앞뒤를 돌려 입고 나간 적도 있는데 그만큼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면도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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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청룡영화상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김혜수의 드레스였다. 올해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김혜수의 드레스 차림은 늘 파격적이고 또 아름다웠다. 물론 김혜수도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다. 거대한 사자머리가 무거워 보일 때도 있었고, 라인을 지나치게 강조한 입술이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당당하고 우아하게 빛나는 레드카펫 드레스의 정석을 보여줬다. 2016년엔 ‘여배우는 드레스’라는 공식을 깨고 바지 수트를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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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레드카펫을 즐길 줄 모르는 여배우들이 많다. 이슈를 위해 과한 노출을 선택하거나, 보기 민망할 만큼 촌스럽거나. 그런 이들에게 김혜수의 드레스는 대한민국 레드카펫 패션의 교과서가 됐고, 한편으로 배우가 품격 있게 나이 들어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멋진 선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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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글래머러스한 드레스를 더욱 빛나게 하는, 해가 갈수록 더욱 완벽해지는 몸매를 보면서 김혜수라는 여배우가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철저하게 스스로를 관리하고 가꾸어 왔는지 그 프로페셔널리즘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자주 접하지 못하는 매우 특별한 드레스 차림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답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매우 정교하고 세심하게 스스로를 가꾸는 노력을 통해 드레스에 압도당하지 않아야 한다. 김혜수는 자신의 오라로 드레스를 제압하며 드레스와 하나가 되어 어떤 포즈와 제스처가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더욱 놀랍다. 체형상 우아하고 당당한 어깨라인과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드레스 디자인을 주로 선택해 왔는데, 특히 어깨에서 시작해 손끝으로 이어지는 팔의 라인과 적당히 날렵하게 긴장한 근육은 바라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매료시킨다.”


정우성 “오랜 연인 떠나보내는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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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절친인 배우 송윤아의 유튜브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혜수는 “한때 배우로서가 아니라 드레스로만 화제가 되는 게 속상했었다”고 털어놨다. 아마도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혜수씨, 드레스만으로 당신의 청룡 무대를 기억하는 건 아니에요.


김혜수는 14회 ‘첫사랑’, 16회 ‘닥터 봉’, 27회 ‘타짜’로 총 세 번의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34회에선 ‘관상’으로 여주조연상을 수상했고 25회 ‘얼굴 없는 미녀’, 32회 ‘이층의 악당’, 36회 ‘차이나타운’, 37회 ‘굿바이 싱글’, 40회 ‘국가부도의 날’, 42회 ‘내가 죽던 날’까지 총 여섯 번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연기와 패션, 그녀만큼 양쪽의 균형감각을 잘 갖춘 여배우(남자배우 중에는 이정재가 있으니까)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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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가 하나를 더했다. “기품 있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너무 인간적이고 따뜻한 배우에요.” 언젠가 정 대표가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입원을 한 적이 있다. 하필 청룡영화상이 열릴 때였고, 정 대표는 병실 침대에서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현장을 지휘했다. “그때부터 혜수씨가 매일 아침 문자로 건강 상식을 보내줘요. 죽염이 좋은 이유,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 등등. 어느 배우가 스태프 건강을 365일 챙기겠어요.”


MC 김혜수가 청룡 무대에서 동료·선후배들을 위해 했던 수많은 축하와 위로의 멘트들을 떠올려보면 그녀의 인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진심으로 함께 눈물 흘렸고, 진심으로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하 교수는 “오라가 있는 진정한 패션 아이콘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패션 애티튜드”라며 “여기서 애티튜드란 단순히 태도를 일컫는 의미를 넘어서 고유한 개성과 자신감을 기반으로 얻어진다”고 했다. 김혜수씨, 당신의 드레스는 늘 멋졌어요. 왜냐하면 정말 멋진 배우가 입었으니까요. 앞으로도 늘 품격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기를 응원합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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