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2배 크기 수목원, 세 마리 호랑이 눈빛에 움찔

[여행]by 중앙일보

개장 100일 넘긴 백두대간수목원

아이가 올라타도 끄떡없는 수련

만발한 분홍 털부처꽃에 심쿵

전시원 27개, 크고 작은 계곡 6개

그림 같은 풍경 걷다보면 힐링


중국도 일본도 아니다. 아시아 최대 수목원은 한국에서도 첩첩산중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있다. 지난 5월 4일 정식 개장한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의 면적은 51㎢. 서울 종로구보다 2배 넓다. 개장 100일을 넘긴 수목원은 누적 방문객 11만 명을 넘겼다.


지난 21~22일 방문한 백두대간수목원은 명성대로 거대했고, 볼거리가 방대했다. 27개 전시원은 낱낱이 하나의 수목원이라 할 만큼 규모를 갖췄다. 꼼꼼히 계획한 뒤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다. 수목원 관계자와 함께 꼭 방문해야 할 곳, 현재 가장 풍광이 근사한 곳을 추렸다.






백두대간수목원의 얼굴은 호랑이다. 동물원도 아니면서 호랑이를 내세운 사연이 있다. 김용하(58) 백두대간수목원장은 “100년 전만 해도 호랑이가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을 호령했지만, 일본 강점기에 멸절됐다”며 “수목원은 백두대간 식물뿐 아니라 지구에 200마리가 채 안 되는 백두산 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도 거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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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보려면 호랑이 숲으로 가야 한다. 4.8ha 면적, 그러니까 축구장 7개 크기의 방사장에 서울대공원과 국립수목원에서 두만(17세 수컷)?한청(13세 암컷)?우리(7세 수컷)를 입양했다. 사람 나이로 85세인 두만이는 볼 수 없다. 거동이 불편하고 예민해 방문객 눈길이 안 닿는 방사장 안쪽에서만 지낸다.

방사장은 다른 동물원 우리보다 4~5배 넓지만, 호랑이가 시속 60㎞로 질주하거나 날고기를 우걱우걱 씹는 모습을 볼 순 없다. 호랑이가 원래 야행성인 데다 식사는 저녁 한 끼, 실내 관리동에서 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이 아니라 낮잠만 자는 큰 고양이라며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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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활동적인 모습을 보려면 출퇴근 시간을 노려야 한다. 한청이와 우리는 오전 9시 30분~10시 관리동에서 나와 오후 5시 들어간다. 이때 백두대간 능선을 배경으로 슬렁슬렁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 동물원 생활로 야생성이 마모됐다 해도 두 눈 부릅뜨고 펜스 쪽으로 다가오면 누구나 뒷걸음질을 친다.

수목원 곳곳에는 집채만 한 돌무더기가 있다.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의 무덤 ‘호식총(虎食塚)’이다. 강원도 영월?정선?태백에서만 호식총이 160여 개 발견됐다.



호랑이 구경부터 27개 전시원 관람까지, 볼거리가 너무 많아 막막하다면 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하자. 매일 7차례 진행되는 ‘호랑이 숲으로 가다’가 대표 프로그램이고, ‘습지, 생명을 품다’ ‘수목원 향기여행’ 같은 프로그램도 참여할 만하다. 지난 21일 습지 프로그램을 체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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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수’ 자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 수(睡)인 것 아시나요? 낮엔 꽃을 활짝 피었다가 밤엔 꽃잎을 접고 잠을 자기 때문이죠.”

오후 1시 방문자센터 앞에서 박영래 해설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마침 ‘세계의 수련’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수련 100종 가운데 빅토리아 수련이 눈길을 끌었다. 잎이 얼마나 큰지 몸무게 15㎏ 나가는 아이가 올라타도 튜브처럼 둥둥 떠 있었다. 22일 이른 아침에는 밤새 핀 빅토리아 수련 꽃을 봤다. 꽃 한 송이가 멜론 만했다. 수련 전시는 9월 16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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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객과 함께 호랑이 모양의 트램을 타고 자생식물원으로 이동했다. 작은 연못에서 뜰채로 장구벌레?실잠자리 유충을 건져 관찰했는데, 아이들보다 아빠들이 더 열을 올렸다. 고산습원도 둘러봤다. 자생식물원 연못이 인공 습지라면 이곳은 자연 습지를 활용해 조성했다. 한국 1호 람사르 습지인 대암산 용늪 같은 고층습원과 갈대 나부끼는 저층습원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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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을 찬찬히 둘러보면 꽃과 나무는 물론이고 물도 좋다는 걸 알게 된다. 수목원 입구 쪽에는 운곡천이, 수목원 안에는 두내천이 졸졸 흐른다. 크고 작은 계곡도 6개나 된다. 그러니까 수목원에 들어서기 전에도 천혜의 자연이었다.

호랑이 숲 다음으로 방문객이 많은 곳이 암석원이다. 스키장 초급 슬로프처럼 완만한 기슭에 다양한 크기의 암석을 미학적으로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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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원까지 가는 길은 다양하다. 거울연못에서 야생화언덕을 지나 걸어 올라도 되고, 호랑이 숲을 본 뒤 내리막길을 걸어도 된다. 수목원 관계자들은 만병초원에서 숲을 통과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낙엽송 우거진 숲이 시원하고, 제비동자꽃 같은 희귀식물을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5분만 걸으면 전망대가 나온다. 암석원과 야생화언덕, 자작나무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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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원에서는 돌만 보면 안 된다. 바위와 나무, 꽃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음미해야 한다. 시로미·월귤 같은 관목이 암석과 조화를 이루고 한쪽에선 작은 개울이 흘러 동양적인 멋이 난다. 바위 틈틈이 희귀식물도 많다. 동강 주변 절벽에서나 볼 수 있는 동강할미꽃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박영래 해설사는 “온난화 때문에 개체 수가 급감하는 북방계 고산 식물을 암석원과 만병초원에서 꾸준히 가꿀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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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언덕과 자작나무원도 지나칠 수 없다. 야생화언덕은 지금 화려한 들국화로 뒤덮였다. 김재필(64·서울)씨는“유별난 더위 때문인지 올여름 수도권의 수목원을 가면 실망하기 일쑤였는데 이곳은 세심히 관리한 흔적이 역력하다”며 “암석원과 벌개미취 만발한 야생화언덕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어린 자작나무 650여 그루를 심은 자작나무원은 아직 허술한 편이다. 우람한 자작나무 70만 그루가 사는 인제 원대리를 기대하면 안 된다. 5년 뒤, 10년 뒤를 봐야 할 테다.



수목원에는 무료 트램이 10~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해 가장 안쪽 단풍식물원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트램이 모든 전시원 앞까지 모셔주는 건 아니다. 호랑이 숲·고산습원·암석원 등을 찾아가려면 트램 정류장에서 500m 이상 걸어야 한다. 꽤 가파른 오르막도 있다. 다리 불편한 어른, 유모차 딸린 부모에게는 부담스럽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라. 평지에 가까운 단풍식물원·사계원·돌담정원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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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식물원은 올가을 가장 붐빌 전시원이다. 섬단풍·복자기 등 다양한 단풍나무가 있다. 단풍식물원 가는 길 네군도단풍이 좌우로 도열한 모습도 근사하다. 여느 단풍과 달리 가을에도 연둣빛 이파리가 하늘거린다. 기념사진 장소로 인기다.

사계원은 영국 정원 같다. 온갖 색깔의 꽃이 조화를 이룬 풍경 덕분에 20~30대에게 인기다. 가문 여름의 끝자락이었는데도 샛노란 마타리꽃, 분홍빛 털부처꽃, 보랏빛 솔체꽃, 새하얀 수국이 어우러진 모습에 마음까지 화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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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는 식물 종자 영구 저장시설 ‘시드 볼트(Seed vault)’도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 종자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공간으로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불린다. 영하 20도 저장고에 설앵초·왜솜다리 같은 희귀식물을 포함해 약 3300종 식물의 종자가 보관돼 있다. 27개 전시원에 2000종의 식물이 사는데, 이보다 더 많은 종자가 지하 저장고에서 겨울잠을 자는 셈이다. 연구기관이어서 일반인이 들어갈 순 없다. 대신 방문자센터 2층에 시드 볼트 체험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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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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