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마지막 예기 권명화 "이제야 춤맛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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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기(藝妓) 권명화(85) 명인이 무대에 오른다. 오는 20, 21일 한국문화재재단 주최로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리는 ‘몌별 해어화’ 공연에서 소고춤을 출 예정이다. 권명화는 1950년대 대구의 기생 양성소 ‘대동권번’에서 풍류의 대가 박지홍(1889 ~1961)을 수양 아버지 삼아 가무를 학습했다. 이번 공연은 2013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 ‘해어화’ 공연의 후속편 격으로 마련됐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의 해어화(解語花)는 기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시대 마지막 예기들의 무대’란 부제의 당시 공연에서 그는 군산 소화권번 출신 장금도(1928∼2019), 부산 동래권번 출신 유금선(1931∼2014)과 함께 공연했다. 이후 두 명인이 세상을 떠났고, 올해 공연 제목에는 ‘소매를 잡고 작별한다’는 뜻의 ‘몌별(袂別)’을 붙여 추모의 의미를 담았다. 권명화의 소고춤과 함께 국수호의 승무, 정명희의 민살풀이춤,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 등이 이번 무대를 채운다.


12일 오전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권명화는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온 그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핑크빛 볼 터치 덕이었을까. 생기와 총기가 넘쳐 보였다. 그는 “예술을 하는 사람은 단정해야 한다. 지저분하면 예술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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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구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보유자다. 박지홍류 승무의 계승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 공연에서 소고춤을 추는 이유는 “소고춤의 강한 흥을 전하고 싶어서”다. “키 작은 할마씨가 소고를 들고 나오면 관객들이 깜짝 놀란다”면서 “관객들의 박수가 나올 때 감동을 많이 느낀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더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번에 보여줄 소고춤은 땅다지기, 타작 놀이, 물레 감기, 모심기 등 농사문화와 관련된 동작을 춤사위로 만들어 덧배기 장단에 맞춰 추는 그의 창작 춤이다. 영남 춤의 질박한 멋과 아름다운 여성미가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권번에 들어간 것은 1950년이지만, 그의 예인 인생은 역사가 더 길다. 1934년 그는 경북 김천의 세습 무가에서 태어났다. 굿판을 따라다니며 자란 그에게 춤과 장단은 일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피난 가서 자리 잡은 대구 남산동 집이 마침 대동권번 옆집이었고, 그는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권번의 풍경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반대하는 아버지의 도장과 돈을 훔쳐 가짜 동의서를 꾸민 뒤 권번에 들어간 그는 곧 권번 스승 박지홍의 수양딸이 돼 월사금 걱정 없이 배울 수 있게 됐다. 그의 춤 재간에 탄복한 박지홍이 “아가, 너 내 딸 해라”라고 권하며 아버지에게도 “야는 뛰어난 소질이 있으니 내 딸로 해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박지홍에서 살풀이춤ㆍ승무ㆍ입춤ㆍ검무 등을 배운 그는 금세 남다른 춤꾼으로 명성을 얻었다.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舞童)이었던 명무 김천홍(1909~2007)이 자신의 자서전에 “대구 국립극장 개관 기념공연(1953)에서 승무를 선보였던 권명화양이 기억에 남아있다”고 적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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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리에 힘이 남아있는 한 춤을 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철들어 춤맛을 알고 빛을 보려고 하는데…”라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춤맛’은 소리의 경지와 맞닿아 있다. “음악 반주만으로는 죽어도 춤을 못 추겠다”는 그는 “구음이 없으면 춤이 맛대가리가 없다”고 말했다. 구음은 춤을 반주하는 가사 없는 즉흥 소리인데, ‘구음을 잘하면 헛간의 도리깨도 일어나 춤을 춘다’는 말이 있을 만큼 춤의 흥을 돋우는 효과가 크다. 그는 득음을 위해 권번 시절 똥물까지 마셨다. 스승인 박지홍은 이름난 판소리 명창이었다. “똥물을 마시면 목이 안 쉬고 배에 힘이 생긴다”는 스승의 ‘비법’을 그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는 “똥물이 정말 효과가 있다”며 “지금도 여전히 춤을 가르치면서 구음을 하지만 목이 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제자 양성에 열심이다. 1960년부터 대구에서 무용학원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쳤고, 1998년 제1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명무초청공연’ 등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뒤로는 서울에서도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서울에 올라와 목요일밤 대구로 내려간다”는 생활이 올해로 17년째다. 서울ㆍ대구를 오가느라 피곤할 법한데도 그는 “제자들이 학원 문 열고 ‘선생님’하며 들어오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전통춤을 배우고 나서 ‘창작’이라며 다 뜯어고치는 세태는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또 “이런 말 하면 남들은 ‘케케묵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우리 문화의 뿌리를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공연을 1주일 남짓 앞둔 그에게 연습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연습을 많이 하면 춤이 재미없어진다”는 예상 밖 답이 돌아왔다. “기계적인 동작 연습이 춤을 ‘매스 게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소고춤은 그날 기분과 관객과의 교감, 악사와의 호흡 등에 따라 달라지는 즉흥춤”이라는 그의 목소리에서 설렘과 기대가 읽혔다. 춤 인생 70년의 자신감이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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