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세] 열대어 성형, 1억 6천만원 버섯…'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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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앞둔 신부는 친구들을 전용기에 태우고 가족 소유의 리조트가 있는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떠납니다. ‘브라이덜 샤워’를 하려는 거죠. 신랑의 친구들은 공해에 떠 있는 유조선을 통째로 빌려 ‘총각 파티’를 엽니다. 폭죽 대신 바주카포를 쏘아올리면서요. 제목 그대로 ‘미친 부자들’의 이야기,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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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흥행하면서 작품 속에 그려진 아시아 부자들의 실제 삶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가디언, 파니낸셜타임스(FT) 등 유럽 언론들은 ‘세계의 부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주제의 기획 기사를 내놓는가 하면 일본 아사히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중국계 부자들의 생활상을 직접 취재해 “영화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들의 실제 삶보다 덜 화려하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돈 자랑’이 난무하는 영화가 실제보다 소박하다니, 이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알쓸신세]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사실 뻔하기 그지없는 신데렐라 스토리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교수로 일하는 여주인공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가 남자 친구 닉 영(헨리 골딩)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는데 알고 보니 남친의 가문은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는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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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사히 신문 인터뷰에서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백화점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이틀 간 쇼핑 투어를 했다고 말합니다. 싱가포르 부자들 20여 명이 함께 했는데, 이 쇼핑에서 그가 쓴 돈은 수십억원 대라고 합니다. 주말이면 전세기를 타고 세계 곳곳의 카지노 순례를 다니는 게 일과이고, 연인과의 이벤트를 위해 대형 여객기의 모든 좌석을 구입한 친구도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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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와나는 약 1억 3000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았다고 알려진 고대어의 일종인데,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아로와나는 행운과 부의 상징으로, 색깔과 종류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억원대까지 거래된다고 합니다. 펜트하우스에서 30마리의 아로와나를 키운다는 한 50대 사업가는 “아로와나를 돌보는 데 수억원을 들였다”고 말합니다.
싱가포르의 유명 사교계 인사 제이미 추아(44)는 자신이 경험한 부유층의 생활을 소개하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 중인데요. 20만 싱가포르 달러(약 1억 6000만원)짜리 송로 버섯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 교통체증을 피하려 헬기로만 이동하며, 파티에서 현금을 뿌리며 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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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일부는 영국 식민지 시절 획득한 아편 전매권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동남아시아는 물론, 영국과 호주의 부동산을 사들였죠. 자산 119억 달러(약 13조 4000억 원)로 2017년 싱가포르 최고 부자로 꼽힌 부동산 개발업체 ‘파 이스트 오거나이제이션’의 경영주 로버트&필립 응(Ng) 형제 역시 중국서 온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부동산을 물려받은 케이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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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케빈 콴(45) 역시 증조 할아버지가 싱가포르 은행 설립자에, 삼촌이 ‘호랑이 연고’로 불리는 ‘타이거 밤’의 개발자인 초부유층 자제인데요. 그는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진짜 부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돈을 쓰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주변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편집자에게 ‘사람들이 거짓말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 너무 사치스런 묘사는 자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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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자본친화적인 정책을 폅니다. 2004년 리센룽 총리는 싱가포르를 ‘메트로폴리탄을 위한 도시’로 만들겠다며 카지노를 갖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등을 짓기 시작하죠. 자본소득세·부동산세도 없어졌습니다. 에두아루도 세이버린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등 세계적인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이주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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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홍콩·대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의 중국계 재벌들은 오랜 세월 혼맥(婚脈) 등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고, 상부상조하며 부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중국 후룬(胡潤)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화권 지역 자산 1억 위안(약 163억1500만원) 이상의 자산가는 13만 명에 육박해 1년 사이에 9.9%나 늘어났죠. FT가 “세계의 슈퍼 리치는 동양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 속 ‘재벌 남친’의 가족들도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죠. 서민 집안 출신 여주인공 추 역시 당연히 동남아 중국계 재벌의 자제일 거라 추측한 한 사촌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말레이시안 패키징 그룹의 추인가요? 아니면 타이완 전기 집안의 추? 아니면 중국 라면회사의 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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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부국이지만,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합니다. 2014년 기준으로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이 3만 1000싱가포르달러(약 2500만 원)인 데 비해 하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1700 싱가포르 달러(약 140만 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난데없는 ‘부유층 돈자랑 영화’가 반가울 리 없죠. 야당은 “빈부 격차의 문제가 국가의 단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연일 정부를 비판하고 있고, 리센룽 총리도 국회에서 “축복 받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것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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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흥행에 힘입어 벌써 속편 제작이 결정됐는데요. 2편에선 전통적 부자가 아닌 중국 신흥 부자들의 생활상을 그릴 예정이라고 하네요. 30일 중국에서 어렵사리 개봉하는 이 영화가 과연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집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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