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하와이 정글" 속여도 통할 수목원, 한국에 있다

[여행]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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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겨울, 나무는 앙상하고 산천은 거무튀튀하다. 코로나19가 안겨준 우울한 기운까지 더해져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가라앉은 듯하다. 초록이 그립다. 뭇 생명이 파릇파릇한 여름날이 간절하다. 그래서 생각난 게 온실이다. 세종시로 달려갔다. 마침 국내 최대 온실을 갖춘 수목원이 개장한 까닭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정글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세상을 만나니 모처럼 눈이 환해진 기분이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시대, 잠시나마 열대의 낙원을 다녀온 것 같은 만족감까지 덤으로 누렸다.



맨땅에 일군 도심형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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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종수목원은 지난해 10월 17일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올해 들어 입장료를 받으며 정식 개장했지만 성대한 개장식은 언감생심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다가 연말연시 전국의 관광명소를 폐쇄하는 강력한 방역 조치 때문이었다. 수목원은 하루 입장 인원을 3000명으로 제한하고 온실은 시간당 180명만 받으며 조용히 새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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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수목원은 산림청이 만들었다. 그러나 기존 수목원과 다르다. 이를테면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명품 숲에 들어앉았고, 경북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은 깊은 산자락에 안겨 있다. 반면 세종수목원은 정부기관이 모여 있는 세종시 신도심 한복판에 자리한다. 금강 변, 나무 한 그루 없던 농지에 1518억원을 들여 축구장 90개 크기(65㏊) 수목원을 만들었다. 그래서 ‘도심형 수목원’이라는 컨셉트를 강조한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의 설명이다.


“수목원이 자연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면, 세종수목원은 사람 쪽에 더 가깝습니다. 나무가 자라고 자연이 회복되는 걸 관찰하면서 시민과 함께 수목원을 만들어 가는 거죠. 코로나 시대, 많은 사람이 반려식물을 키우며 위안을 얻고 있는데 정원 문화, 식물 가꾸는 기술도 알리고자 합니다.”



알람브라 궁전 품은 온실


세종수목원은 20개 전시원을 갖췄다. 추운 겨울, 야외 전시원을 둘러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한국전통정원은 제법 인기다. 창덕궁 주합루와 부용정을 실제 크기로 재현한 궁궐 정원, 전남 담양 소쇄원에서 착안한 별서 정원이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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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과 함께 수목원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곳은 ‘사계절 전시 온실’이다. 국내 최대 면적(9815㎡)을 자랑하는 온실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꽃잎 3개로 이뤄진 붓꽃을 형상화했다. 붓꽃은 세종시가 속한 ‘온대 중부 권역’을 대표하는 식생이자 세종수목원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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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온실부터 둘러봤다. 흐드러진 부겐빌레아가 먼저 반겨줬다. 온실 한가운데에는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을 본뜬 정원이 있었다. 각도를 잘 잡아서 사진을 찍으면 스페인에 다녀왔다고 우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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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온실에는 신기한 나무가 많았다.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 줄기가 항아리처럼 생긴 ‘케이바 물병나무’, 시어머니방석이란 별명을 가진 ‘금호선인장’은 이름도 생김새도 흥미로웠다. 이유미 원장은 ‘울레미소나무’를 눈여겨보라고 강조했다. 중생대 백악기 때 살다가 멸종한 줄 알았으나 1994년 호주에서 발견한 귀한 나무다. 국립생태원, 완도수목원에도 있는데 국내 최초로 세종수목원에서 개화했다.



작은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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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온실에 들어가려면 외투를 벗어야 한다. 기온이 30도, 습도는 70도에 육박한다. 열대 온실은 지중해 온실보다 훨씬 농밀한 초록 세상이다. 바닥에는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덮여 있었고, 온갖 종류의 야자나무가 거침없이 자라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아담한 폭포와 수련이 핀 연못도 있다.


열대 온실에는 2층 높이의 데크도 설치돼 있다. 덕분에 훨씬 입체적으로 조경을 관찰할 수 있다. 열대 온실 천장 높이는 32m다. 지중해 온실보다 2m 높다. 열대 온실의 상징인 ‘흑판수’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온 이 거대한 나무는 최대 32m까지 자란단다. 칠판과 연필, 악기 재료로도 쓰이는 요긴한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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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온실에는 무려 437종의 식물이 산다. 파파야, 핑크벨벳바나나 같은 과실도 주렁주렁 열려 있고, 권투 글로브보다 큰 형형색색의 꽃들도 지천으로 피어 있다. 새빨간 ‘하와이무궁화’, 터진 폭죽 같은 ‘연화수’가 특히 눈에 띄었다. 대전에서 온 이지연(24)씨는 “기후대에 따라 전혀 다른 식물이 사는 게 신기하다”며 “5000원을 내고 해외여행을 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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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 온실은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뒤 방문해야 한다. 1시간 단위로 18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권이 매진되지 않았다면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온실을 방문하지 않으면 반값(어른 2500원)만 내면 된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1시간 30분짜리 체험 프로그램도 인터넷에서 예약할 수 있다. 8000원(입장료 포함).


■ 극락조화 활짝 핀 베어트리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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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는 국립세종수목원 말고도 명품 온실이 하나 더 있다. 세종시 북쪽의 수목원 베어트리 파크. 야자수 그득한 열대 온실뿐 아니라 분재·괴목을 전시한 실내 관람시설도 갖췄다.


250평에 달하는 열대식물원에는 잎이 넓적한 야자나무가 그득하다. 새처럼 생긴 극락조화가 만개한 모습과 탐스럽게 영근 폰데로사 레몬도 볼 수 있다. 실내 분재원에서는 백 살이 넘는 분재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분재도 볼 수 있다. 베어트리파크 창업주가 가장 아끼는 공간은 ‘만경비원’이다. 약 500평 규모인 만경비원은 열대 조경과 한국의 산수 조경이 조화를 이룬 이색 실내 정원이다. 희귀한 선인장, 다육 식물도 많고 예술작품 같은 괴목·나무화석도 곳곳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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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실내 양어장을 개방한다. 오색연못과 송파정에 사는 비단잉어 1000여 마리가 겨울을 나는 곳이다. 씨름선수 장단지만한 비단잉어도 볼 수 있다. 3월이면 다시 오색연못으로 돌아간단다. 먹이주기 체험(1000원)도 할 수 있다.


베어트리파크는 곰이 사는 수목원이다. 불곰·반달곰 등 100여 마리 곰이 산다. 야생 곰은 겨울에 먹이를 구할 수 없어 겨울잠을 잔다. 하지만 수목원 곰들은 음식을 챙겨주는 까닭에 겨울에도 말똥말똥한 눈으로 관람객을 향해 손을 흔든다.


세종=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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